『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초판본 - 「십자가」와 「바람이 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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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의 단편소설 <하늘은 맑건만>에서 문기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늘’을 쳐다보지 못한다. ‘양심’이라는 게 종이처럼 얇아서 문기는 두 번의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야 자기의 부끄러움을 털어놓고 하늘을 볼 수 있게 된다.
어느새 현대인들은 하늘을 보는 것도 잊어버린 채 물질만 쫓아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양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십자가를 그리도 높게 올려놓은 것일까? 하늘로 하늘로?
윤동주 시인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그리스도’라는 역설을 말한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기꺼이 들었듯, 예수도 기꺼이 십자가에 못 막혔듯. 화자는 그 속에 역설적 의미로 강한 의지를 숨기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죽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 ‘양심’이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화자는 소란스럽지 않다. ‘조용히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흘리겠다고 말한다. 숨 막힐 정도로 숭고한 희생 의지다. 자기의 내면을 강하게 만들어 종이처럼 얇은 양심을 굳건하게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다. 양심을 자각하면 흔들릴 수 없다. 양심이 마음에 자리 잡는 순간 양심을 배반하고 살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양심을 지켜본 자만 느낄 수 있는 선물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마지막 보루, 양심! 발견하기도 어렵고 지키기는 더욱 어려운 길, 양심을 지켜내는 길이다. 반면 잃어버리기도 쉽고 되찾기는 더욱 힘든 것이 양심이다. 하지만 양심은 모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한다. 지켜낼지 외면할지 또한 자기 책임이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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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바람이 되어 머문다. ‘바람이 부는’ 이유와 자신의 ‘괴로움에 이유가 없는’ 것을 반어적으로 묶어서 분명한 이유를 찾고 있다. 바람이 자꾸 자신의 발을 ‘반석’과 ‘언덕’ 위에 세우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움직이지 않고 괴로워만 하는 화자를 바람은 자꾸 몰아세운다. ‘반석’과 ‘언덕’으로 움직이는 주체가 바로 바람이다. 우리는 마음속에 이는 바람을 잠재우느라 얼마나 힘이 드는가! 마음에서 바람이 일어났다면 움직여야 한다. 바람은 지나가야 한다. 강물도 흘러야 하듯이!
마음에 일어난 바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기의 내면과 관계 맺기를 현명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와 관계 맺기에 서툴다 보니 바람이 힘든 게 아닐까! 바람이 불 때 마주 서서 살갗으로 느끼며 관계를 맺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바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바람은 소식을 전해준다. 그리고 서로 맞닿아 약한 바람에서 강한 바람으로 움직인다. 형태를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인다. 흐르는 강물과 닮았다. ‘바람이 부’는 현상만 있을 뿐 우리는 바람의 형태를 볼 수 없다. 다른 사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바람은 살갗으로 느.끼.는 것이다. 깨달음도 세포로 전달된다. 그러니 깨달음과 바람도 닮았다. 오늘도 나를 깨닫게 하는 바람을 맞으러 가야겠다. 바람이 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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