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자로 살기까지

도서『82년생 김지영』 리뷰 | 조남주 지음

by 데미안에너지

도서『82년생 김지영』리뷰 내용, 4컷으로 미리보기!

“AI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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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에서 혼자 책을 읽는 이유


『82년생 김지영』은 ‘73년생 이○○’의 삶보다 약하다. 9년이나 차이가 나는데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분노했지만 조금이라도 나아진 방향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김지영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를 먼저 접했고, 뒤에 책으로 읽게 되었다.

내가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를 서점에서 읽다가 크게 웃어서 쫓겨났던 적이 있다. 상황은 슬픈데 문체가 웃겨서 낄낄 대다 그만 쫓겨났다.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다른 서점으로 달려가서 끝까지 읽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책을 구매하긴 했지만. 만약 『82년생 김지영』을 서점에서 읽었다면 아마도 나는 심하게 욕을 해서 쫓겨났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혼자 집에서 읽었으니 망정이지! “물론 이런~XX”를 얼마나 남발하며 읽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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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VS 73년생 이○○


김지영이라는 이름으로 자란 아이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어땠을까?

김지영은 위에 언니, 아래로 남동생이 있다. 삼 남매 중 둘째 딸 김지영. 그리고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집안. 이런 가정환경은 73년생 이○○인 내 삶이 훨씬 더 심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순종적인 딸이었다. 집안일은 당연히 딸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정도의 차별은 아무것도 아니다.

73년생 이○○은 차별을 죽을 만큼 싫어했기에(어린 나이였는데도 그것을 어떻게 알았던 것인지.) 아버지의 말이라면 다 반항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도 않고 아버지의 말은 무조건 틀렸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싸웠다. 누굴 닮아 그랬을까? 늘 싸우고 투덜대는 아이 73년생 이○○. 그래서 나는 애니메이션 《스머프》에서 투덜이 스머프를 좋아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고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그때는 그 방법만이 유년 시절 내가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 같았다. 힘없는 꼬맹이의 저항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투덜이가 습관이 되어버린 나머지 인생이 조금 힘들어지긴 했지만. 아버지도 나 같은 딸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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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82년생 김지영은 대학도 나오고 광고대행사에 취업도 한다. 82년생 김지영은 딸도 교육을 받는 일에 남아선호사상이 크게 작동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73년생 이○○은 강력한 희생을 요구당했으며, 엄청나게 울면서 저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1992년~1993년에 MBC에서 방영한 《아들과 딸》에서 후남이가 내 삶과 더 닮았다. 드라마 속 시절과 73년생 이○○이 살았던 시대보다는 82년생 김지영이 사는 시대가 조금이나마 달라진 것을 나는 느꼈다. 그래도 여전히 가부장제는 존재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직장 내 차별을 겪게 된다. 임신한 선배가 일터에서 불합리하게 퇴사 당하는 것을 목격하며, 결혼을 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82년생 김지영은 순종적이었으니까.

73년생 이○○은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부장적인 체제에 투덜이 모드를 가동했다. 사무실 서랍에 사직서를 써서 놔뒀다. ‘여차하면 때려친다’는 각오로 다녔다. 무슨 힘으로 그런 당당함으로 저항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차별적인 모든 요소에 저항했던 기억이 있다. 나와 같이 근무했던 분들께 죄송하기도 하다. 투덜이 모드로 싸움닭처럼 살았으니까. 좀더 현명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는 그게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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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은 결혼을 하고 육아휴직을 썼지만 돌아갈 곳이 없었다. 아기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쌓일수록 말이 줄고 감정도 메말라갔다. 순종적이었던 82년생 김지영은 속으로 곪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73년생 이○○은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다. 당연히 결혼해야 한다는 프레임과 얼마나 싸워야 했을까. 신기하게도 나는 결혼에 관해서는 싸우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결혼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결혼하게 되면 알려줄게.”라고 말하며 웃어넘겼다. 결혼 하라는 말이나 결혼을 언제 할 것이냐는 말을 듣기 싫다는 것은 본인이 결혼을 하고 싶다는 증거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들에 전혀 스트레스가 없었다. 결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럽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그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신부의 모습이 아름답고 예쁘고 부러워야 하는데 나는 무슨 족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워낙 아웃사이더 같은 성향과 투덜이 모드를 일관해 온 73년생 이○○이니까 놀랄 일도 아니다. 부모님은 속이 많이 상했겠지만 부모를 위해서 결혼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진심으로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지 않는 이상 나는 혼자서 신나게 지낼 것이다. 인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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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적이었던 82년생 김지영은 참고 참던 차별이 빙의라는 증상으로 나타나고 만다. 어려서부터 자기 의견을 강하게 펼치지 못하고 속으로 삭히기만 했던 김지영은 속에서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질환으로 빙의가 생긴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라는 구조가 여자의 삶에 가한 억압과 폭력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82년생 김지영이 소리라도 지르고 욕이라도 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면 좋았을 텐데.

물론 73년생 이○○에게 빙의는 없었지만 가부장제가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일 것이다. 다만 나는 그 가부장제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을 미친 듯이 찾아보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왜 세상이 이따위인가?’
‘차별은 왜 있는 것인가?’
‘평등이란 세상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단어가 된 것인가?’
‘왜 인간은 약자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가?’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내 머릿속은 질문으로 가득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세계사, 역사, 인류사 그리고 철학, 심리학, 뇌 과학서를 읽었다.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나에게는 연구 대상인 인간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여전히 나를 포함한 인간을 개인적으로 연구 중이긴 하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거대 담론에 휩쓸리는 나를 주체자로 서게 만들었던 단 하나는 바로 시詩였다. 나는 시를 쓰면서 위로받았고 시 덕분에 살아남았다. 유전자 중에 아무도 시와 관련이 없는데 혼자 시인이 되고자 했던 내 삶은 늘 체제에 섞이지 못했다. 나는 견뎠다. 죽을 힘을 다해서.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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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자로 살다


인류사에서 여성의 이름이 기록되었던 부분을 찾는 게 어렵다. 남성들이 주류였던 시대가 오래 지속되었고 여성들은 희생으로 밀려 있었다. 하지만 인류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자기 목소리가 약하다고 해서 존재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현 인류는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시대보다 더 나은 세상이 오기를, 평등한 세상이 오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란다. 73년생인 내가 살던 시대보다 82년생인 김지영이 사는 시대가 아주 조금 더 나아진 면이 있을 것이고, 90년생 ○○○이 사는 시대가 더 나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좋아지고 나아지는 모습은 금방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때 삶을 생각하면 지금은 달라진 게 분명하다. 더디고 더디지만 퇴행은 아니라고 믿는(믿고 싶)다.

73년생 이○○은 잘 살고 있다. 73년생으로 던져진 건 내 의지가 아니지만 현재의 나는 내가 선택한 삶에 책임을 다하며 잘살아 가고자 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73년생 이○○을 넘어 본질과 주체적인 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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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연재 – ‘작가 정유정을 읽다’, 첫 번째 도서 『내 심장을 쏴라』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