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꽃 소년을 만난
화가 많았던 소녀

도서 『눈물꽃 소년』 리뷰| 박노해 지음

by 데미안에너지

단번에, 한 호흡에 읽었다. 다시 앞으로 가서 읽고, 내려놓고 두 호흡에 읽었다. 경험과 기억은 다르다고 작가도 말했지만, 유년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도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도 작가의 소년 시절과 나의 소녀 시절은 다른 방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순수한 정신과 가치관과 인생관을 갖게 되었던 작가의 소년 시절과 달리 나의 소녀 시절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게 많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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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어른을 만난다는 것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기억력도 대단했지만 작가의 어린 시절엔 좋은 어른들이 주변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꼭 부모가 아니더라도 어른다운 어른을 만나면 된다. 작가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다.

어쩌면 나도 좋은 어른을 만났을 테지만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기억하기를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감춰두었던 기억들이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한다. 맥락 없이 문득. 무의식에서 올려보내는 어떤 신호일 것이다.

작가의 소년 시절이 ‘눈물꽃 소년’이었기 때문에 시인이 되었다고 믿는다. 나도 어린 시절에 시를 썼지만 시는 아니었다. 작가는 형의 영향으로 시집을 접하고 자기의 시를 써나갔다. 초등학교 4학년의 시가 눈물 나게 아프고 시렸다.

반대로 나는 살기 위해 푸념을 늘어놓았던 것 같다. 내 속에서 올라오는 용암을, 분노를 글자로 때리고 베고 찔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와 서러움을 시라고 위로하며 써 갈겼던(조금은 과격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이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기억이 있다. 물론 그 글자들은 모두 지워버렸다. 남아 있지 않다. 감정의 쓰레기들이었지 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어린 나이에도 사색을 했고, 나는 감정을 글자로 폭발시키기만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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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지탱해 온 현재의 나


하지만 시의 형태로 나를 지탱해 온 것이 지금의 나다. 시가 될지 사라질 글자가 될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도 이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조금은 넓혀졌다고 믿는다. 나의 분노와 감정들을 더듬어 가면서 시절 인연을 떠올려 본다. 언젠가 시와 나의 인연이 닿으면 좋은 시 한 편쯤 쓸 수 있지 않을까.

눈물이 많았던 소년의 이야기를 읽으며, 불만과 화가 많았던 내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작가처럼 ‘내 어린 날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은. 작가처럼 나이가 더 들어야 하는 것일까? 내가 기억하는 내 어린 날의 이야기라…….

눈물꽃소년2.png “AI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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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연재 – 윤동주 시인 초판본 시에 대한 단상, 브런치북 『나는 지금, 그의 시에 답하려 한다』 여덟 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