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 세계의 주인 (윤가은, 2025)

스포 있는 리뷰

by 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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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세계의 주인 (The world of Love)

RT 119분

제작사 : 세모시, 볼미디어

배급사 : 바른손이앤에이

감독 / 각본 : 윤가은

개봉 : 2025년 10월 22일

토론토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한국 영화 최초 초청'



Storyline.


*본 영화는 친족 성폭력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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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 여고생 '이주인'은 낭랑 18세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인싸' 여고생이다. 학급의 반장이자, 여학생 남학생 할 것 없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한없이 밝고 외향적인 성향의 학생이다. 남자친구와 오래 가진 못하는 자칭 연애 '고자'로, 연애도 성에도 관심이 많은 혈기 왕성한 고등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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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학교 방송반에서 주도한 서명운동에 전교생이 동참하는데 오직 주인만 서명운동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며 서명을 거부한다. 서명을 요청한 수호는 그런 주인을 이해할 수 없었고 주인을 설득하려다가 언성이 높아진 둘은 말싸움까지 하게 된다. 화를 견디지 못한 주인은 충격적인 발언을 내뱉어 교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늘 그랬듯 농담이라고 무마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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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발언을 들은 반의 누군가가 주인에게 익명의 쪽지를 남기기 시작한다.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 주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Review. (스포O)


윤가은 감독님의 전작인 <우리들>, <우리집> 모두 재밌게 봤던터라 이번 영화도 큰 기대를 하고 봤다. 큰 기대에 부응하다 못해 넘쳐 흐를 정도로 좋은 영화를 만들어주심에 큰 감동과 감사를 느꼈다. 현 시대에 우리가 영화를 통해 꼭 전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바로 이런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였다.


먼저 감독님의 전작 영제의 흐름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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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 The world of us

우리집 : The house of us

세계의 주인 : The world of Love


이 세상의 전부는 오직 친구와 가족밖에 없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내밀한 감정을 다룬 이야기에서 고등학생 아이가 겪는 사랑과 그 속에서 마주하는 상처와 불안에 대한 이야기로 진화한 점에서 감독님이 세상을 바라보는 다정하고 복잡한 시선이 느껴져서 좋았다.


감독님 인터뷰를 보니, <세계의 주인>은 무려 10년 동안 구상하고 나온 이야기라고 한다. 처음에는 10대 여성의 성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했으나 쓰는 과정에서 그 속의 폭력과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고 지금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홍보 방식에 있어서, 어떠한 사전 정보도 없이 이 영화를 보았으면 좋겠다는 감독님의 부탁이 있었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조금은 의아하게 느껴졌다. 물론 친족성폭력의 트라우마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사전정보없이 영화를 보는 것이 더욱 극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이 영화가 큰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족성폭력을 다룬 영화를 제작해놓고 친족성폭력 생존자에 대해서 다소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조금은 아쉬운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많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큰 위로와 용기가 되는 영화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해서 홍보 방식만으로 이 영화와 제작자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다양한 지점에서 감독님이 고민하고 표현하려고 했던게 느껴져서 좋았던 장면이 많았는데 하나씩 뜯어 리뷰해보고자 한다.




자조 모임


영화의 주인공 주인이는 주기적으로 봉사 모임에 나간다. 주로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고 연령대도 직업도 가지각색이라 초반엔 어떤 모임인지에 대한 가늠이 잘 가지 않도록 설정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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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영화는 자조 모임 (비슷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경험을 공유하고 지지하며 회복하는 자율적 모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삶을 회복하고 중심을 찾기 위해 열정적으로 삶에 도전하는 자조 모임들이 많이 있는데, 감독님은 이러한 자조 모임을 직접 취재하며 영화를 만들어 나갔다고 한다.


자조 모임을 할 때 인물들이 매고 있는 앞치마를 자세히 보면 일본군 '위안부' 기림 뱃지라던가, 세월호 기림 뱃지 등 이 모임이 지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힌트들이 있었다.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의미를 차지하는게 바로 이 자조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의 구성원들은 재판에 함께 출석하여 지지자가 되어주기도 하고, 타인에게는 쉽게 내놓지 못할 자신의 과거를 농담거리로 소비하기도 하며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다. '피해자 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전형적인 피해자의 삶을 답습하지도, 피해자의 경험을 지우지도 않으면서 그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모임인 것이다. 자조 모임의 구성원 중 한 명은 출산을 하는 설정이 있었는데, 성폭력의 피해자는 결혼도, 제대로 된 성생활도 하지 못할 거라는 편견을 깨는 좋은 설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조 모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단연코 '미도(고민시)'였다. 고민시가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전 정보 없이 보았기 때문에 고민시의 등장에 다소 놀랐던 기억이 난다. 미도 역시 친족 성폭력의 생존자로서, 재판을 진행중인 상황이다. 미도가 재판에 출석하여 증인 심문을 받는 과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친족 성폭력에 대해 가시화하는 장면이었는데, 보는 내내 분노스러운 현실에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는지, 왜 성폭력 피해를 당했음에도 밝은 모습이었는지, 자신이 완전무결의 피해자임을 계속 입증해야하는 과정이 영화적 과장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이 서글퍼지기도 했다.




주인의 가족


윤가은 감독님의 진가는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아역들의 연기력에서 드러난다. 세계의 주인에서도 주인의 동생 '해인'의 연기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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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은 매일 밤 가족 앞에서 마술을 연습하고 장난끼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연기가 아니라 정말 장난꾸러기인 남동생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촬영한듯한 느낌이 나서 정말 신기했다. 윤가은 감독님의 전작들에서도 주로 아이들이 출연하여 각본없이 상황만 있는 특유의 자연스러운 연출이 드러났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해인의 장면은 그런 연출 방식이 쓰였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가장 좋았던 점은 상처를 거슬러 올라가며 과거를 다시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주인과 주인의 가족들을 보여주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서사를 가늠하도록 열어두었다는 점이었다. 트리거가 될 수 있는 결정적인 장면이나 사건을 보여주지 않고, 그들이 과거의 경험을 어떻게 현재의 삶 일부에 남겨두며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범죄 피해를 다룬 영화와의 차별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많은 눈물을 쏟았던 장면은 해인이가 친족 성폭력의 가해자인 삼촌에게 쓴 편지가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해인이는 아주 장난끼 가득한 막내 아들의 역할을 수행해내면서도 집안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과 그로 인한 가족들의 아픔을 잘 알고 있는 또다른 생존자이다. 어린 나이이지만 나의 가족에게 해를 입힌 사람, 그리고 그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고 마술을 통해 이러한 아픔을 치유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삼촌이 교도소에서 주인에게 보내온 편지들을 몰래 숨기며 자신의 방식대로 주인을 지켜온 것이다. 어린 나이에 느꼈을 가정의 불화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도 밝음을 잃지 않은 해인이가 기특해서 눈물이 쏟아졌다.


세계의 주인의 또다른 주인공을 꼽는다면 주인의 엄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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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보다 더 이 역할을 잘 소화해낼 사람이 있을까 싶었을 정도로, 알맞은 온도로 너무 과하지도 그렇다고 무심하지도 않은 감정을 드러내는 연기가 감탄스러웠다.


특히 주인이 처음으로 감정을 쏟아내는 세차장 장면은 가슴이 찢어질 듯 먹먹하게 눈물이 났다. '한바퀴 더 돌까?'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주인 엄마의 말 한마디로, 그동안 주인과 주인엄마가 감내해왔을 수많은 감정들을 조금이나마 - 온전히 느끼기란 불가능 하다고 생각 한다 - 가늠해볼 수 있었다.




다양한 메타포


사과

끝까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사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설정의 주인. 원인이 자세히 나오진 않았으나 아마 과거의 사건의 트리거가 되는 물건인 듯하다.


태권도 사범님

과거 인주는 가출을 하고 태권도 도장에서 숙식을 하다 벽을 태워먹은 적이 있었다. 사범님은 검게 그을린 벽을 다시 도색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결정을 한다. 이 결정은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관통하는 표현으로, 과거의 사건 - 나를 파괴하거나 상처를 준 사건 - 을 나에게서 도려내거나 지우려는 노력을 구태여 하기보다는 그 사건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메시지를 담아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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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님이 인주와 주인의 과거와 상처를 얼만큼 알고 있는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남아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실제로 감독님도 사범님의 설정을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단단히 붙잡고 지지해주는 좋은 어른이 한명쯤은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려넣었다고 하셨다.


쪽지

주인에게 계속해서 쪽지를 쓴 친구는 결국 누구인지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양한 목소리의 나레이션이 나오는 마지막 장면의 연출이 참 좋았다. 주인을 나무라던 쪽지의 주인은 결국 주인으로부터 용기를 얻었다.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쩌면 따뜻한 결말. 이 영화를 통해 감독님이 하고자하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쓰고 나니 메시지가 참 많다)



총 평

과거의 경험들이 불쑥불쑥 삶에 나타나 나를 가로막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과거에 휘둘리고 침잠되지 않고 현재를 담담히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희망적인 영화. 우리가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는 여러 편견들을 지워내고 인간의 복합성을 다정한 시선에서 담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살아내는 힘은 결국 연대와 사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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