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은 경계를 허문다

서울 여자, 도쿄 여자 #11

by 김경희

도쿄 여자, 김민정 작가님!


가끔 현실이 더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어두운 극장에서 홀로 빠져 나와 마주친 한낮의 거리 풍경이라던가, 얼핏 낮잠에 든 것 같은데 깨어보니 완벽한 어둠일 때, 그리고 오늘처럼 도쿄에서의 시간들이 아련해지는 순간들이 그렇습니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말이에요. 서울에 있는 지금이 현실인지, 이곳이 신주쿠 한복판의 사거리는 아닌지 자꾸만 헷갈립니다. 날씨 탓이겠지요? 서울은 며칠 째 폭염특보가 내려졌어요. 추위는 그럭저럭 버틸 만 한데 더위는 정말 끔찍이 싫어요, 겨울에 태어난 사람들이 그렇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납니다. 도쿄 날씨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폭염으로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는 뉴스 기사를 본 것 같아요. 그래요. 우리는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제 반가운 전화가 왔습니다. 밥 하지 말자 우리. 그 집 아이들과 우리 아이의 저녁으로 치킨이 어떠냐는 친구(동네 아줌마)의 전화였어요. 쉽게 말하면 치킨으로 저녁을 때우자는 말입니다. 참 신기한 일이에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불온한 공기가 주변을 에워싸고 기분이 다운되어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우리 밥하지 말자’고 전화를 걸어주는 반가운 사람! 일본 주부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동네 주부들끼리 상당히 돈독한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답니다. 물론 거주 형태가 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뀌면서 예전만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요. 아무려나 대부분의 엄마들은 육아동지 한 두 명은 갖고 있게 마련입니다. 저처럼 무리에 잘 섞이지 못하는 경우라 해도 말이죠.


네 그래요 작가님. 고백하건데 저는 동네 아줌마들과 잘 섞이는 편은 못됩니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반모임이다 생일파티다 해서 엄마들이 모일 기회가 많은 것이 사실이에요. 남자아이들의 경우 축구 교실이나 영어클래스의 인원을 그 자리에서 모집하기도 하니 중요한 모임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런 모임자리가 생각처럼 편하지 않았습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죠.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저에게 있더군요. 저는 ‘무리’가 불편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결국 반모임에 자꾸 빠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무리의 엄마들과는 거리가 멀어졌어요. 사실 그럴 때 가장 큰 걱정은 아이 문제입니다. 해가 지도록 돌아다니며 친구와 어울려 놀던 우리 때와는 상황이 다르잖아요.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다고, 다행히 우리 아이까지 챙겨주는 든든한 지원군인 육아동지가 있어 저는 초등 저학년 시기를 운 좋게 잘 넘길 수 있었어요. 작가님의 딸아이도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걸로 기억해요. 그곳 엄마들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지내는지 궁금해지네요. 아마도 서로 쾌적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을까요?


제가 이렇게 정신이 없어요, 맞아요. 반가운 전화 이야기를 하다 말았네요. 가끔 ‘우리 밥하지 말자’라고 전화를 걸어오는 그녀는 저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동네 아줌마에요. 학부모의 세계에 완전히 편입되지 못하는 저 같은 경계인(집단의 경계선상에 있고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사람)에겐 가뭄의 단비처럼 정말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는 사람이죠. 그날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맥주도 한 캔씩 마셨어요. 안주는 언제나처럼 바삭한 치킨이었죠.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을 때, 그러면서도 뭔가 기름진 음식과 차가운 맥주가 떠오를 때, 최고의 궁합을 보여주는 건 거의 치킨이 유일하니까요. 오랜만에 만난 동네 친구와 치킨을 크게 한입 베어 물다가 우리는 재밌는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어요. 우리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질 땐 언제나 치킨이 함께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그게 무슨 닭다리 긁는 소리냐고 하실 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돌이켜 보면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에는 언제나 치킨이 자리하고 있었답니다. ‘날도 더운데 오늘 치킨에 맥주 어때?’ ‘너무 짜증나고 힘든 하루였어. 저녁에 함께 치킨이나 먹을까?’ 우리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바삭한 치킨을 가운데 놓고 우리는 그날의 힘들었던 모든 일을 치킨과 함께 뜯어 먹어 버렸습니다. 그러다보면 모든 경계는 희미하게 사라지고 어쩐지 하나가 된 기분마저 들곤 하거든요. 어릴 때 열심히 치킨을 뜯으며 자란 우리는 이제 육아 노동의 고단함을 달래거나 불투명한 미래를 견디기 위해 지금도 치킨과 함께 합니다.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아무것도 없더라는 삶의 처연함은 치킨이 된 닭의 운명과도 무척 닮은 것 같아요. 치킨은 두꺼운 튀김옷으로 빈약한 몸을 가리기라도 했지요.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어디로 가는지 방향도 목적도 잃어버린 우리는 털 뽑힌 푸르스름한 닭처럼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서울은 오늘도 폭염특보가 내려졌어요. 날씨 때문인지, 한국이 처한 여러 불편한 상황들 때문인지 오늘은 유독 현실이 더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네요. 진퇴양난. 이럴 땐 결국 또 치킨뿐인가요? 기름지고 씹을만한 그 무엇 말이에요. 아무려면 어때요. 아주 오래전 아버지가 종이봉투에 담아온 통닭에 가족들이 모든 시름을 잊었던 것처럼, 오늘의 치킨도 우리의 경계를, 불안을 모두 허물어버릴 테니까요.

치킨.JPG 치킨은 경계를 허문다

서울 여자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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