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식 여름나기

서울여자 도쿄여자 #12

by 김민정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드디어 도쿄는 여름입니다. 지난번 오셨을 때 느끼셨죠? 섬나라답게 뜨겁도 습도가 높습니다. 하루에서 열두 번은 속옷부터 갈아입고 싶어집니다. 결혼하기 전보다 20킬로 증량된 몸으로 모유수유까지 하고 있으면, 정말이지 하루 열두 번은 아니지만, 서너번은 옷을 갈아입습니다. 씻고 갈아입고, 씻기고 갈아입히고의 연속입니다. 저는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빨래가 바짝 마르는 것이 좋았고, 그 바짝 마른 옷의 까칠한 느낌도 좋았어요. 발등이 보이는 샌달, 어깨가 훤히 파진 티셔츠, 챙이 넓은 모자도 좋았습니다. 태양이 반짝하면 느껴지는 살아있음의 증거와 같은 생기가 좋았습니다. 땀이 나는 것도, 살갗이 뜨거워지는 것도, 그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주부가 되어보니, 여름을 좋아하기가 쉽지 않네요. 엄마가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었습니다. 엄마는 여름을 코앞에 두면 늘 "여름이네. 얘, 벌써부터 짜증난다."라고 말했어요. 저는 엄마가 왜 여름을 좋아하지 않았는지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네, 땡볕에 소매없는 티셔츠를 입고 시부야를 걸으며 시선을 받는 여름을 저는 좋아했어요. 그건 땡볕이 내리쬐는 베란다에서 빨래는 너는 것과는 또다른 여름이었습니다. 더위를 먹지 않기 위해, 저는 삼계탕을 먹는 쪽의 사람이었고, 엄마는 닭을 사와 재료들을 넣어 삼계탕을 끓이는 쪽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저는 삼계탕을 끌여야하는 쪽의 사람이 된 것이지요. 이리 되고 보니, 삼계탕은커녕, 수유만 하고 있어도, 여름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불 앞에 서기 싫단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한국은 치킨이며, 햄버거까지 모든 음식이 배달이 되지만, 일본의 배달음식은 기껏해야 스시(초밥)와 피자입니다. 일본의 미국식 체인 피자점에는 테이블이 없어요. 일본에서 피자헛이며 도미노피자 등은 배달해야만 먹을 수 있는 피자입니다. 참고로, 음식점에서 취급하는 피자는 주로 도우가 얇은 이탈리안식 피자예요. 여하튼 한여름에 초밥도 피자도 저는 땡기지 않습니다.


이 여름을 일본사람들은 어떻게 나고 있을까요? 과연 불 앞에서 어떤 요리를 끓이고 지지고 볶고 있을까요? 그 답이 '마츠리'라 불리는 축제에 있더군요! 유레카!


일본은 양력 7월 7일이 칠석입니다. 일본도 음력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한국분들이 많은데,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음력을 없앴습니다. 요즘 일본 사람은 음력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합니다. 설날도 칠석도 추석도 생일도 모두 양력으로 쉡니다. 그 7월 칠석을 시작으로 동네 공터에서 매주말 마츠리가 열립니다. 이번주는 우리동네 놀이터자 공원에서 마츠리가 열리고, 다음주에는 옆동네, 다다음주에는 옆옆동네, 또 그 다음주에는 우리동네 초등학교, 그 다음주엔 옆동네 신사, 그 그다음주엔 옆옆동네 절......이런 식으로 돌아가며 크고 작은 마츠리가 열립니다. 마츠리는 축제입니다. 마츠리는 명사고, 마츠루는 동사인데, 마츠루는 기리다, 섬기다, 제사를 지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마츠리는 죽은 영혼들을 위한 모임이기도 하고, 절이나 신사에서 부처와 신에게 건강을 비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여름 마츠리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유카타, 북, 불꽃놀이, 그리고 봉오도리라는 춤이에요. 유카타는, 약식 기모노입니다. 목욕을 하고 잠들기 전에 간단하게 입던 옷이 변해서, 여름 마츠리에 입는 유카타가 되었습니다. 속옷을 입고 위에 걸쳐입기만 하면 됩니다. 오비라는 허리띠를 매기가 어렵지만, 정식으로 갖춰 입어야하는 기모노에 비하면, 간단합니다. 이 유카타를 입고 북소리를 들으며, 봉오도리를 춥니다. "조상님들 안녕히들 돌아가시오."라는 마음을 담아서요. 일본의 추석을 봉이라고 부르는데, 봉오도리는 추석에 추는 춤이지만, 여름 축제에선 어디서든 빠지지 않습니다. 유카타를 입고 불꽃놀이를 보러 가는 것도 여름만의 묘미죠. 그리고 아이들은 유카타를 입고, 북을 치고, 봉오도리를 추며, 일본의 전통을 익히게 됩니다. 매우 자연스럽게요. 일본인들에게 마츠리는 특별한 순간이지만, 일상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지요. 네, 마츠리는 겉으로 보면 전통을 익히고, 조상과 부처와 각양각종의 신에게 안부를 전하고 건강을 비는 축제지만, 그 속내는, 더운 여름을 나는데 있습니다. 네, 저는 주부가 되고 마츠리를 이렇게 달리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마츠리에 가면, 300엔-500엔 선에서 갓 만든 오코노미야키, 다코야키, 새우구이, 오징어구이, 닭튀김, 소시지 구이 등을 살 수 있습니다. 요즘은 김밥이며, 떡볶이, 타이요리까지 다양한 노점이 줄을 섭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일본은 배달음식이 피자와 초밥 밖에 없고, 편의점 도시락은 차가운 걸 데워먹는 음식이라 좀처럼 손이 가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갓구운 소시지, 갓볶은 야키소바, 갓튀긴 닭튀김을 저렴한 가격에 얻을 수 있는 곳은 마츠리 밖에 없습니다. 야키소바로 탄수화물을 채우고, 각종 튀김과 구이로 단백질을 섭취하고, 부족한 채소는 야채주스와 과일꼬치로 대신합니다. 불앞에 서있을 필요가 없고, 설거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혹자들은 "일본의 아이들은 마츠리를 통해 전통을 배운다"며 한국도 전통을 배워야한다고 지적하지만, 일본생활 25년 산전수전 다 겪은 저는 "불쓰기 싫은 계절에 마츠리가 열린다" "마츠리의 흥망성쇠의 열쇠는 주부가 쥐고 있다"고 봅니다. 이 더운 여름날, 기온이 33도가 넘고 습도가 70도가 넘는 상황에서 불 앞에 서서 요리를 하느니, 아이들 앞세워 저녁 바람도 쐴 겸, 마츠리를 찾는 것은 현명한 선택입니다. 매일도 아니고 주말이니, 그 정도쯤 즐겨도 되지 않을까요? 오늘은 우리동네, 다음주는 옆동네.......그렇게 말이죠.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다 있는데 유독 여름에만 마츠리가 이렇게 열리는 것은, 역시나 주부들이 불을 쓰기 가장 힘든 계절이라서가 아닐까 합니다. 저도 아이들이 태어난 후엔, 매주 마츠리에 동참합니다. 동네 놀이터건 신사건 절이건 가리지 않습니다. 주말 저녁, 장을 보기도 귀찮고 딱히 식사를 준비하기가 마땅치 않을 때,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마츠리를 찾습니다. 아이들은 금붕어 잡기도 해보고, 안에 물이 든 풍선잡기도 해보고, 가면을 사서 써보기도 합니다. 일본의 전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서민식 B급 문화의 장입니다. 땀을 흘리고, 탄수화물이 범벅이 된 음식을 먹고, 건강하지 않은 금붕어를 물에 닿자마자 찢어질 것 같은 얇은 종이로 건져 올리는 아슬아슬한 게임을 즐기는. 마츠리는 겉으로 보면, 전통의 일부지만, 속에서 보면, 삶에 지친 서민들을 위한 화려하지 않은 오아시스입니다. 맥주 단 한 잔에 한주간의 스트레스를 씻어보내야 하는 남편(물론 아내도요), 부엌에서 요리하는 걸 포기했지만 여러조건에 의해 훌륭한 레스토랑보다 마츠리를 택한 아내, 플라스틱 장난감에 환호하는 아이. 어찌보며 매우 궁상맞은 장소지만, 일상의 위로가 되는 장소임에 틀림없습니다.


20대 시절 결혼하기 전, 마츠리에 가면 예쁘게 차려입은 또래 여성들만 눈에 들어왔는데, 요즘은 마츠리에 가면, 아이들과 부모만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인지 서너살 된 아이들이 유카타를 입고 봉오도리 춤을 추는 모습에, 마음이 사르르 무너지기도 하고, 닭튀김을 손에 들고 솜사탕 노점상 앞에 줄선 아이들을 보면, 이 무더위에도 꿋꿋하게 기다리는 모습에 기특해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제 제 유카타 무늬를 고르는 것보다 삼형제에게 입힐 유카타를 고를 때 더 신이 나 있습니다. 저는 제가 이럴지 10년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츠리의 의미가 전통을 떠나, 일상의 일부였단 사실도, 일상의 일부기에 이렇게 계속된다는 사실도 그 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내년 여름에는 우리 마츠리에 가서 같이 맥주로 건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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