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족한 일본생활

서울여자 도쿄여자 #13

by 김민정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얼마전 아이와 함께 주토피아를 보고 왔습니다. 작가님도 보셨나요?


초식동물도 육식동물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하는 주토피아. 저는 주토피아가 답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디즈니식 식민지 방식이란 생각이 없지 않아요. 디즈니랜드에 가면, 황금광 시절도 너무나 낭만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정글탐험도 너무나 인간의 입장에서만 그려진 것 같아 조금 마음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저는 왜 늘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분석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스몰 월드 아시죠? 귀여운 얼굴의 인형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여기는 스몰 월드, 우리는 하나, 우리는 모두 친구라고 노래하는 그곳이요. 어릴 때 가장 좋아하는 놀이기구였습니다. 화려한 의상 신나는 노래, 그리고 '우리는 하나'라는 메시지까지. 고교시절엔, 저녁 8시가 넘으면 스몰 월드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서너번 반복해서 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스몰월드에 갔다가 갑자기 뒷골이 송연해졌어요. 의상과 언어가 다를 뿐, 똑같은 얼굴을 한 인형들이 똑같은 목표를 부르쳐댑니다. "우리는 하나"라고요. 은연 중에 "너도 하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미국식 마인드를 가져야겠지요. 미국의 판단에 동의하고 미국의 목표를 함께 따르는. 점점 우경화로 달려가는 요즘의 일본처럼요. '우리는 하나' '너와 나는 친구'라는 개념은 문명사회의 기본적 가치입니다. 하지만, 하나가 되기 위한 가치가 강자의 가치일 때, 그건 공포심을 조장합니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어우러져 살고, 용기와 노력을 통해 꿈을 실현하는 나라. 그렇게 포장된 미국에서, 그렇지 못한 존재는 가볍게는 카운셀링을 받게 되겠고, 무거우면 수용되고 거세 당하겠지요. 그리고 미국을 따르지 않는 나라는 '우리는 하나'를 포기하거나 거부한 사회로 손가락질 받고, 심하면 공격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유토피아로 포장된 사회와 그 사회가 가진 동일한 가치를 생각하며, 주토피아를 보며 마냥 기뻐할 순 없었습니다.


이야기가 또 산으로 갔군요. 저는 일본에 벌써 25년째 살고 있어요. 제가 한국에 살았던 날들보다 일본에 살아온 날들이 더 길어졌습니다. 한국에서 오는 친구들이 물어요. "뭐가 필요해?"라고요. 1순위는 언제나 책입니다. 한국어로 쓰인 책이요. 2순위는 건어물입니다. 마른 오징어, 마른 문어, 그리고 쥐포. 섬나라에 살고 있으니, 마른 오징어나 문어 따위 손쉽게 구입할 수 있을 것 같죠?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일본에선 마른 오징어와 마른 문어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끔 마른 오징어를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주 가끔이요. 그치만 가격이 어마어마해서 손이 닿지 않습니다. 마른 문어는 제가 25년을 살면서 한 번도 마트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쥐포도 없습니다. 일본에도 오징어와 문어가 있는데, 유독 건어물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네, 일본사람들은 딱딱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씹는 맛을 모르나 봐요. 한국 영화관에는 있는, 오징어가 여기 영화관에는 없어요. 일본 영화관의 주요 메뉴는 팝콘과 핫도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오징어는 눈을 씻고 봐도 없어요. 저는 일을 하거나 영화를 볼 때, 오래 씹을 수 있는 것들이 좋아요. 씹으면 두뇌회전이 더 잘 되는 느낌이거든요. 일본에서만 크는 아이에겐 영화관=팝콘이지만, 일본에 25년을 살아도 저에게는 영화관=오징어입니다.


일본인들은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합니다. 일본사람들이 디저트로 선호하는 푸딩도 그렇습니다. 우유푸딩, 호박푸딩, 딸기푸딩을 비롯해 크고작은 푸딩들이 다양한 제조사로부터 판매됩니다. 처음엔 누가 푸딩을 이렇게 먹을까 싶었는데, 저희 남편을 비롯해 성인 남성들도 푸딩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부드러운 느낌 때문인 것 같아요. 과일도 말랑말랑한 것을 선호합니다. 딱딱한 복숭아는 찾아보기 힘들고, 판매대에는 늘상 부드러운 복숭아만 진열되어 있습니다. 살구도 없습니다. 마른 살구는 건어물 판매점에 가면 살 수 있지만, 생살구는 그 자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국에선 잘 못보던 비파가 일본에선 흔한 과일입니다. 아마 부드러운 식감 때문에 인기가 아닐까요? 일본식 달걀찜은 달걀을 한 번 채에 거르기 때문에 한국식 달걀찜보다 부드럽습니다. 계란말이도 다시를 낸 국물을 넣어 더 부드러운 식감입니다. 떡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멥쌀로 떡을 하지만, 일본은 찹쌀을 사용합니다. 씹는 맛보다 목으로 홀딱 넘어갑니다. 정월에는 찹쌀로 만든 떡 덩어리를 넣어 떡국을 끓여 먹는데, 찹쌀이 쏙 넘어가다가 목에 걸려 사망하는 사고도 매년 속출합니다. 씹을 필요가 없는 떡만 봐도 일본인들이 부드러운 식감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디 그것뿐인가요? 씹어 먹어야 하는 메밀국수(소바)를 먹을 때면 '노도고시'라며 목으로 넘어가는 맛이 좋아야한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씹는 것이 싫으면? 또는 귀찮으면 메밀국수조차 씹지 않고 목으로 넘기려는 것일까요? 여하튼 안 씹고 넘길 수 있는 음식에 일본인은 열광합니다. 일본식 빙수에는 떡이나 다른 토핑이 없고, 오로지 얼음에 설탕시럽만 끼얹은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씹으며 해소하고 일본은 스트레스를 부드러운 식감으로 해소하나 봅니다. 특히나 일본 남자들은 부드러운 무언가에 쌓이고 싶어합니다. 일본 남자들은 푸딩 욕조에 들어가 보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한 티비 방송에서 실제로 재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부드러움에 푹 빠졌기 때문인지 한때 거유 시장(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 가슴 큰 여자 아이돌 전성시대)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가슴이 크다는 이유로 티비에 출연하는 여성은, 어느 면에서 봐도 사회적 반영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식감은 앞서 썼듯 부드러운 것입니다. 더불어 겉은 바삭한데 속은 부드러운 것도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슈크림이 그러합니다. 닭튀김도 그렇죠. 만두도 일본은 구운 만두를 많이 먹습니다. 라면과 구운 만두의 조합이 일본의 일반적인 라멘집의 기본 메뉴예요. 구운 만두는 겉이 바삭하고 속이 부드럽습니다. 물만두는 겉도 부드럽지요. 그래서인지 일본인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습니다. 면도 그래요. 일본인은 파스타는 '알덴테'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얼마전 한 일본 출판사 편집장과 한인 타운에 갔습니다. 짜장면을 먹으러 갔어요. 그는 짜장면을 먹으면서 "면이 알덴테였으면 훨씬 맛있었을 텐데."라며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알덴테란 겉은 익었지만 심이 남아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한 일본 방송에서 이탈리아를 찾아가 취재한 결과, 면의 상태에 신경을 쓰는 이탈리아인은 약 20%였고, 알덴테란 단어를 모르는 이탈리아인이 약 10%였습니다. 일본인들이 그렇게나 신경을 쓰고 선호하는 '알덴테'는 역시나 일본의 식감과 큰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볶음 요리를 먹은 후, 거기 밥을 볶기도 합니다. 낙지 볶음 후에 밥을 볶거나, 감자탕을 먹은 후에 밥을 볶기도 합니다. 그런 볶음밥은 밥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중화요리에서 나오는 볶음밥도 밥알이 하나하나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볶음밥은 밥알 하나 하나가 붙지 않은 상태를 가장 선호합니다. 밥알 한 알 한 알에 기름이 제대로 묻어, 절대로 질은 느낌이 나지 않는 걸 선호하지요.


우리는 복잡하게 섞인 맛의 조화를 즐깁니다. 비빔밥이 그렇고, 가짓수 많은 반찬이 그렇고 한국을 대표하는 오미자차 역시 다섯개의 맛의 조화를 장점으로 여깁니다. 일본은 무엇보다도 식감을 중요시 합니다. 라면, 소바, 만두, 볶음밥, 그리고 푸딩에 이르기까지.


저는 구운 만두보다 찐만두를 선호하고, 푸딩보다는 마른 안주거리를 사랑합니다. 어디서든 찐만두를 살 수 있고 오징어 버터구이를 파는 한국의 영화관도 그립습니다. 도쿄의 생활은 만족스럽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고, 조용하고 나대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저도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도쿄는 저의 유토피아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신주쿠와 하라주쿠 산책을 좋아하고, 제가 사는 동네의 적절한 거리를 두는 이웃사촌들도 마음에 듭니다.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살만 합니다. 그치만 때때로 그리운 것은, 맛입니다. 맛 하나만큼은 제가 아무리 일본에 살아도 견딜 수가 없을 때가 있어요. 김치 떡볶이 짜장면이 그립습니다. 가장 그리운 것은 쥐포와 오징어예요. 그리고 그 쥐포와 오징어를 먹으며,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한국어로 할 수 있는 '친구'도요. 다음에 오실 때는 쥐포를 부탁드려야겠습니다.


도쿄여자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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