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초등입학전에 해야할 3가지

서울여자 도쿄여자 #14

by 김민정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저희 첫째가 얼마전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다지 공부는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느긋한 엄마예요. 스무살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 글을 읽을 수 있고, 셈을 하고, 원하는 일을 위한 능력을 조금이마나 갖추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걸 너무 오래 가르치기 보다 기본적인 것을 떼고, 그 후엔 원하는 걸 배우게 하고 싶어요.


일본은 4월에 입학식이 있습니다. 2월의 보호자 모임(학부모 모임이 아니라 보호자 모임이라 불러요. 조부모가 키우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가족이 아닌 사람이 키우는 아이도 있을 테니까요)에서 한 엄마가 이렇게 질문 했어요.

"히라가나는 떼고 입학해야 하나요?"

교사의 답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니요. 그건 학교에서 가르칩니다. 하루에 한 글자씩이요."

하루에 한 글자씩? 저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아니 하루에 한 글자씩 해서 언제 히라가나를 외우나. 히라가나는 총 48자입니다. 게다가 가타카나라는 외래어 표기시에 쓰는 글자가 또 48자 따로 있어요. 그것뿐인가요. 일본은 한자문화권의 영향을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한자야 셀 수 없을만큼 많지요. 그런데, 매일, 하루, 한자씩만 공부를 하겠다니! 놀란 마음이 사그라들자, 그래 천천히 가자란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일본의 아이들은 글자를 떼지 않고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글자를 미리 떼고 가면 학교가 실망스럽겠지요. 하루 한 글자씩만 배우는 곳이니까 말이죠. 알고 가면 알고 가는대로 한 번 더 배울 수 있고, 모르는 아이는 아예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교사는 아이가 미리 집에서 히라가나를 연습하면, 비뚤어진 자세가 되거나 연필 잡는 법이 잘못 길들을 수도 있다며, 집에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교사도 있습니다.


그럼 일본의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무엇을 배울까요? '일본'이라 뭉뚱그려 얘기하고 있지만, 제가 아는 일본 중에서도 도쿄의 한 복판에 사는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교육 과정이야 어느 학교든 히라가나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그 외의 것들은 조금 다를 수도 있다고 미리 말씀 드립니다.


여하튼 초1 입학을 위한 조건 1. 자전거 타기

일본하면 도요타와 혼다 등 자동차 강국입니다. 그렇지만, 도쿄에선 자동차가 그다지 쓸모가 없어요. 길도 막히고, 주차장 찾기가 쉽지 않은데다 주차비가 비싸기 때문입니다. 일본이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인맥이나 지위가 아니라 신용입니다. 즉 약속을 가장 잘 지키는 게 그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항목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지각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래서 승용차보다 전철, 버스보다도 전철을 선호합니다. 도쿄의 복잡한 전철 노선도 보셨죠? 신용을 중요시하는 사회가 만든 복잡하고 어지러운 노선도입니다. 조금 먼 거리는 전철을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이용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 다녀요. 한 집에 한 대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 한 명당 한 대씩 자전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자전거를 배워둡니다. 그래야 입학 후에 친구들끼리 놀러갈 때 탈 수가 있어요. 게다가 미리미리 연습을 해두어야 아이가 자전거 타는 기술을 몸으로 익힐 거란 강한 믿음이 있습니다. 자전거는 한 번 배우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하며, 되도록이며 빨리 배울 수록 안정감 있게 탈 거란 그런 믿음이지요.


초1 입학을 위한 조건 2 철봉.

네 철봉에서 앞으로 넘기를 해서 과연 어디에 쓸까요? 저는 한 번도 철봉을 넘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철봉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디가 어떻게 중요하냐고요? 저도 딱히 해드릴 답이 없습니다. 팔근육이 강화되는 걸까요? 여하튼 아이들은 초1에 입학하기 전에 모두 철봉 앞구르기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딸도 동네 놀이터에서 손에 티눈이 박혀가며 철봉 연습을 했고, 드디어 성공을 했습니다. 시험을 100점 맞은 것보다 더 기쁜(?) 그런 기분입니다.


초1 입학을 위한 조건3. 줄넘기

많이 넘지는 못해도 10-20번쯤은 넘게 뛸 수 있도록 준비해 둡니다. 어린이집에서도 철봉과 줄넘기는 거의 매일 하는 훈련입니다. 아이들에게 많이 열심히 뛰게 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못하는 아이를 지적하거나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여하튼 저희딸은 이제 줄넘기를 20번 넘게 할 수 있게 되었고, 철봉의 기초인 앞구르기도 성공했습니다.


한국은 공부를 많이 가르치는데 일본은 왜 몸 쓰는 걸 이렇게 중요하게 여길까요? 저는 양쪽 모두 그 사회에 맞게 진화한 결과라고 봅니다. 일본은 히라가나를 배우고 싶어도 딱히 배울 곳이 없어요. 저희 동네에 학원은 구몬이 전부입니다. 선행 학습으로 영어를 배우는 아이도 50명 중 1명 있을까 말까 해요. 아예 그런 학원이 없습니다. 찾아보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동네에 있는 게 아니고 시내까지 나가야 해서 많이 불편합니다.


일본 문부과학성 조사로 초6학년생 중 진학을 위한 학원에 다니는 아이는 약 50%입니다. 한편 일본의 한 민간 단체 조사를 보면, 일본에서 학원에 다니는 아이 중 절반은 운동을 배우러 다니며(축구, 야구), 27%는 음악, 18%는 영어를 배운다고 답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과 중국은 1위가 영어였어요. 일본에서는 영어를 배우는 학원이 적을 뿐더러(저희 동네처럼 아예 없는 동네도 있음), 영어가 필수란 인식이 아직 덜합니다.


아이는 이제 자전거를 타고 줄넘기와 철봉을 넘을 때 "엄마 나도 이제 초1이야."라고 너무나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아이의 세상에선 몸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들이 모든 것입니다. 철봉을 잘하는 아이가 멋진 아이가 되고, 줄넘기를 잘 넘으면 모두의 박수를 받습니다. 잘 못하는 아이는 또 다른 아이들이 같이 도와주고 조언해줍니다. 자전거는 저희딸을 비롯해, 어린이집 동창들은 100% 다 타게 되었고요.


이렇게 아이는 일본인으로 자라납니다. 이게 좋은 건지 아닌지를 저는 늘 속으로 생각합니다. 공부에만 매달리는 것보다 몸이 가장 가볍고 잘 움직일 때 다양한 운동과 접해두는 건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죠. 저는 체육 음치예요. 그래서 아이가 어떻게 클지 체육을 싫어하지는 않을지 너무나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철봉을 넘었던 날, 이미 저를 뛰어 넘었고, 아이가 자전거를 혼자 타게 된 날, 이미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유럽의 거리를 자전거로 달리는 날을 꿈꿔봅니다. 한국의 시골 마을을 달리는 모습도요. 그럼 괜히 행복해지고, 마음이 탁 트이는 느낌입니다. 아이가 하나하나 익혀서, 자신만의 세상에서, 자신만의 꿈과 욕심을 향해, 자신만의 발걸음으로 쑥쑥 나아가길, 2016년의 봄에, 엄마가 미리 응원을 보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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