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 도쿄여자 #15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매년 아이 어린이집에선 엔니치 곡코라는 여름 축제가 열려요. 엔니치縁日는 인연이 있는 날인데, 불교와 인연이 있는 날을 엔니치라고 불러요. 곡코는 흉내내기입니다. 아이들 나름대로, 여름 축제를 흉내내며 노는 날이에요.
일본의 여름 축제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봉오도리라 불리우는 춤입니다. 봉은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추석이예요. 양력으로 명절을 지내는 일본에서 추석은 양력 8월 15일입니다. 일본은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아요. 조상의 묘가 있는 절을 찾아가 묘비를 닦고, 스님 말씀을 듣고 오지요. 딱히 음식을 준비하지도 않고요. 대신 밤이 되면 축제에 가서 봉오도리를 춥니다. "조상님, 잘들 들어가세요."란 마음이 봉오도리에는 담겨있어요.
어린이집에 들어간 아이는 매년 봉오도리를 연습합니다. 올해 만 세살이 된 둘째는 집에 오면 "엄마, <달이 아름답다> 노래 틀어줘."라며,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어요. 물론 저도 첫째 딸도 동원되었지요. 한 달을 내리 연습을 했습니다. 엔니치 곡코 당일, 저는 아침에 다려놓은 빨간 진베이(일본 전통 옷)를 입혔어요. 봉오도리는 저녁 6시부터라, 한 시간을 기다리며, 금붕어 잡기, 뽑기 등을 하며 보냈지요.
드디어, 6시! 아이가 그렇게나 연습하던 <달이 아름답다> 노래가 나옵니다. 둘째는 두리번 두리번 거립니다. 같은반 친구들도 있지만, 더 큰 언니 오빠들에, 엄마 아빠들까지 총출동해 둥글게 원을 그리고 봉오도리를 추고 있습니다. 둘째는 그 사이에 들어갔다가 얼음이 되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가만히 춤추는 사람들만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제 얼굴에 시선이 멎습니다. "왜 안 춰?" 아이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안 출 거야?" "응." "나갈래?""응."아이가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서 밟힐까봐 얼른 데리고 나옵니다. 그렇게 한 달을 연습했는데,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은채 시간만 보냈습니다.
아이가 자리를 떠나 어린이집 선생님은 억지로 아이를 붙잡지 않고, 아이를 보고 웃어줍니다. 그러고보면 크리스마스 발표회에서도 그랬어요. 아이는 매일 집에 와서도 발표회에서 부를 노래와 율동을 연습했지요. 어찌나 잘하는지, '내가 딸 하나는 기똥차게 낳았구나.'했지요. 동영상도 찍어서 같이 보고 즐거워 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발표회 당일. 아이는 무대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어린이집 선생님은 그날도, 아이를 억지로 끌어내리거나 아이한테 억지로 율동을 시키지 않았어요. 다 끝난 후 실망한 표정의 저에게 "어머니, 아이가 너무 잘했어요. 무대에 계속 있었던 걸 칭찬해주세요."라고 말했어요. 쓸데없는 위로로 저를 나락에 빠뜨리지도 않고, 잘했다고만 말해주는 어린이집 교사가 그날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저는 아이가 열심히 배운 것을 안 해서, 혹시나 선생님에게 밉보이면 어쩌나가 걱정되었거든요.
일본의 어린이집 교사들은, 열심히 할 수 있는 한도에서 모든 걸 가르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배울 수 있는 한도에서 최대한을 흡수합니다. 하지만, 그 흡수한 것들을 100% 완벽하게 표출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열심히 가르치고 열심히 배운 것, 어린이집 교사들은 마지막 하루 무대 위에서의 순간보다 거기까지의 과정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리고 부모에게도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누누이 이야기 해주고요.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좋은 점은 아이에게 "잘하라"고 윽박지를 필요가 없어요. 꿰다놓은 보릿자루마냥 미동도 하지 않는 아이를, 어린이집 교사들은 "그럴 수도 있다." "아이 나름대로 표현을 하고 있다."고 봐줍니다. 크리스마스 발표회나 운동회에서도 아직까지는 참여하면 100점이라고 칭찬해줍니다. 아이가 대사를 못 읊어도 거기에 당황하거나 재촉하는 어린이집 교사도 없고요. 늘 행사 시작 전에는 관람온 어른들에게 아이들이 실수해도 웃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끝난 후엔 아이에게도 그 부모에게도 무조건 잘 했다고만 말해줍니다.
노력은 물론 해야하지만, '최고'성과를 요구하지 않으며, 아이 나름대로 발휘할 수 있는 '정도껏'을 요구하는 게 부모로선 어찌나 속이 편한지 모르겠어요. 전 욕심 많은 엄마인데, 어린이집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를 어른처럼 만들려는게 얼마나 무모한지에 대해서.
저는 지금 만 세살인 저희 둘째가 언젠가 봉오도리 춤을 출 날이 오리라 믿고 기다려볼까 합니다. 올해 크리스마스 발표회에선 눈이라도 깜빡해주지 않을까요? 아이는 아이의 속도로 자랍니다. 저는 그 속도를 존중해 주고 싶어요. 잘해라, 성공해라, 더 노력해라 라고 말하기 보다 오늘도 잘했다, 내일은 더 잘할 것이다, 너는 대단하다, 너를 사랑한다고만 매일매일 말해주고 싶습니다.
일본에서 김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