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 도쿄여자 #27
도쿄여자 김민정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작가님.
도쿄에서의 번개 만남 이후 이렇게 또 2주가 지나갔네요. 지난 번 동경에서는 정말 즐거웠어요. 한국 사람과 말을 해본지 2주 만이라고 하셨나요? 그날 작가님의 수다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모습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아주 가끔이지만 지난번처럼 일이 있을 때 마다 도쿄에 들러서 작가님의 폭풍 수다를 들어드릴게요. 어쩌면 생각보다 자주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진행하는 다큐멘터리 프로젝트가 잘 된다면 말이죠.
사실, 그날 우리가 골든가에서 주고받은 이야기 중에 가장 좋았던 것은‘일자리’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어쩜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심 놀라고 감탄했거든요. 저는 방송 다큐멘터리를 15년간 만들어 온 나름 전문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15년이 지난 후 지금 제게 남은 것은 ‘앞으로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이런 고민뿐입니다. 그런데 작가님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니 무척 반가웠어요. 저는 지금처럼 방송국이나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서 작가로서 겨우 생명만 연장하는 방식의 일을 더 하고 싶지 않아요. 차라리 적절한 노동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개인 작업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고민하던 참이거든요. 작가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죠. 편의점이든 어디든 잠깐씩 일을 하면서 자기 글을 쓰는 게 낫겠다고요. 사실 우리처럼 자기 작업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정규직은 맞지 않아요. 다만 아쉬운 것은 일본처럼 아르바이트 자리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며칠 전 신문기사를 보니, 일본 정부에서는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관련 입법까지 예고했다고 하던데(아베가 잘해서가 아니라 고령사회인 일본이 노동인력 부족이기 때문이겠지요?) 아무튼 양질의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도 별로 없는 한국의 입장에선 그런 부분마저도 무척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우리는 그날 도쿄에서 마흔이 넘은 여성으로서 두 가지 점에 크게 공감을 했습니다. 하나는 여자도 일이 있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내 작업을 위해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단기 아르바이트가 필요하다. 네, 작가님.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한국에 돌아왔는데, 마침 이케아 코리아 2호점에서 시간제 정규직을 구한다는 공고가 났더군요. 주부들의 육아경험이나 살림 노하우도 이력서에 솔직하게 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어요. 놀라운 것은 이케아 2호점이 무척 가까운 저희 동네(지하철 1정거장) 아줌마들이 대거 이력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높은 임금보다는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과 유연한 일자리를 찾는 시대가 된 거겠죠? 육아 경험과 사회생활의 경력 등을 잘 버무려 쓰면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자신 있었는데, 제 착각이었어요. 이거...경쟁률이 장난이 아니겠어요. (^^;)
한국은 5월에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어요. 여러 후보들이 일자리에 대한 공약을 내걸고 있지만 제게 피부에 와 닿는 건 솔직히 하나도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주부들, 혹은 저와 같은 프리랜서들은 사실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 임금이 높지 않더라도 내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자리, 일이 주는 즐거움과 충족감 정도면 충분한데 말이죠. 4차 산업이니 로봇의 시대니 말들이 많지만 저는 모든 것이 다 허황된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그런 거창한 것들 보다 우리 삶에 가까운 현실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인은 없는 걸까요? 어쩌면 그 말이 더 허황된 건지도 모르겠군요. 정치인에게 휴머니즘을 기대한다는 것.
서울여자 김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