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만에 복직

by 키다리쌤

십 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 옛말이 있다.

성남에 10년전 살았었는데 그때는 허름한 주택가였다. 우연히 최근 살던 동네에 가 보니 그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4명의 아이를 낳고 키우며 십 년을 휴직했다. (첫째 낳고 둘째를 임신하고 스위스에 갔었고 스위스에서 둘째를 출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셋째와 넷째 쌍둥이 자매를 낳았다.) 한 아이당 3년을 쉴 수 있다는 초등학교 교사의 휴직 규정에 의하면 네 아이를 낳은 나는 12년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한두 해를 남겨두고 복직을 했다. 그 이유는 더 이상 망설이다가는 복직을 못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코로나가 온 세계를 들썩들썩 흔들어 대는 그 시기에 복직을 했다.


십 년이 흐르는 동안 초등학교는 어떻게 변해 있었을까? 아이들은 과거에 비해 선생님께 많이 버릇없어져 있었다. 예를 들어 40대 선생님인 나에게 할머니라고 부르는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잘못했다는 인식도 못하는 것이 슬펐다. 이렇게 부르면 안 된다는 것도 가르쳐야 하다니...


더 중요한 것은 학부모님들이 선생님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접한 소식에 의하면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교육하다가 그 과정을 오해한 학부모로 인해 선생님이 고소를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니 이게 그럴 일인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서서히 진행된 흐름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놀라울 뿐이었다.


사실 교육과정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나 학교의 한 해 행사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하듯이 아이들과 학부모님의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십년 만에 복직이라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십 년 전 마인드로 가르치며 좌충우돌하며 적응해 나가는 기록을 책에 담고자 했다.


또한 오랜만의 복직으로 아이들에게도 학부모님들에게도 동료 선생님들에게도 실수 많은 교사로 민폐가 많았다. 그러나 아이 넷을 키우며 학부모회장을 한 내공으로 퉁 치기로 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학교에서 아이가 따돌림당하기도 하고 나도 학부모회장으로 엄마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이가 들면서 아픔의 경험도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지경이 넓어지는 귀한 경험임을 고백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넓어진 마음은 덤이다. ) 그런 경험들을 통해 선생님으로 반에서 일어나는 문제로 인한 아이들의 고통과 엄마들의 슬픔이 느껴졌고 도울 수 있는 부분은 힘껏 도와 나갔다.


역시 세월이 지나도 '나'라는 사람이 아이들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아 있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나를 일으키고 우리 반 아이들은 나에게 책을 손에 쥐게 했다. 더 나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열망! 여전히 나를 이끄는 커다란 원동력이다. 아이들이 내 곁에 있는 동안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품어주고 싶고 나의 곁을 떠난다 해도 추억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오랜만의 복직으로 우리 반 아이들을 볼 수 있어 즐겁고 행복하다.


그리고 며칠전 등하굣길 우연히 만난 학부모님이 “아이가 선생님을 만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해요. 꼭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말을 해 주셨다. 부족한 선생님인 나를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조용한 응원!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는 사실!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