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좋은 경험은 아니었지만
내가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다지 거창하지 않았다. 봉사활동이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결과적으로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한 게 아니었다. 그 당시에 나는 그저 자퇴하며 남는 시간을 어떻게든 의미 있게 쓰고 싶었고, 그래서 알바를 구하려다가 못 구해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렇게 집에만 있자니 옛날 학창 시절과 같은 나쁜 기억들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최대한 나쁜 생각을 잊을 일을 하되, 이왕이면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고, 결국 그렇게 하게 된 게 봉사활동이었다.
그렇게 봉사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난생처음 1365 봉사포털에 가입도 해보고, 거기서 생애 첫 봉사로 무슨 봉사를 할지 고민하느라 애도 써봤다. 곧 주말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주말에 할 봉사를 구하지 못하면 주말 동안 또 방구석에 처박혀 우울한 생각이나 하고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난생처음 하는 봉사라 너무 신중하게 고르려 했던 탓일까, 그 주 금요일 저녁까지 봉사를 구하지 못한 나는 어쩔 수 없이 급하게 내일 바로 할 수 있는 봉사를 신청하게 된다. 그건 바로 "주간 노인보호센터 어르신 활동 보조 봉사"였다.
대전 지역에서만 그런 건지는 몰라도, 이러한 노인보호센터나 요양원에서 봉사자를 구하는 모집 글은 굉장히 흔히 볼 수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노인보호센터를 고른 거였다. 물론, 노인보호센터에서 어르신들을 보조한다는 게 그다지 호락호락하진 않아 보였지만, 적어도 주말에 집에 있으면서 우울한 생각을 하는 것보단 백만 배는 낫다는 게 그 당시 내 생각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그 주간 노인보호센터로 향했다. 아빠께서 출근하시는 데 태워주신다고 하셔서 아빠 차를 타고 간 기억이 난다.
그렇게 도착한 그 센터는 내 예상보다 훨씬 작았다.
나는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로 3층을 누르고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요양보호사로 보이는 한 직원이 나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봉사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그 직원은 오늘 봉사하러 사람이 올 거라는 연락을 못 받았다고 했다. 순간 나는 정말 당황했으나, 직원 분께서 일단 들어오라고 하셔서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창고로 보이는 방 한편에 앉아서 기다렸다. 시간이 좀 지나자 직원 한분이 들어오셔서 일단 어르신들 말동무를 해 드리라고 하셨다. 아마 내가 오늘 봉사하러 온 사람이라고 확인이 된 모양이었다.
나는 어르신들 말동무를 해드리러 어르신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어르신들 말동무를 해드리자니 어떻게 말동무를 해드려야 하는지 몰라서 적잖이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방에 계시던 모든 어르신들이 무표정으로 TV 뉴스만 보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내 내성적인 성격을 이기고 어르신들께 먼저 말을 걸어보려 애를 썼지만, 입이 쉽사리 벌려지지 않았다. 결국 나도 그 어르신들처럼 무표정하게 TV를 쳐다보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갑자기 직원 한분이 나한테 따라오라고 하셨고, 나는 직원분을 따라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량에서 어르신이 내리시고 계셨는데, 직원분은 그 어르신을 휠체어로 옮겨 달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어르신을 들고 휠체어에 옮겨본 경험이 없었고, 계속 어버버 하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 직원 한분이 되게 짜증스럽다는 목소리로 나한테 비키라고 한 뒤 어르신을 손쉽게 휠체어에 앉혔다. 뭔가 내가 짐이 된 거 같아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센터로 돌아와 방에 앉아 계속 TV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요양보호사분들이 방에 오셔서 아침 체조를 한다며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트로트에 맞춰서 채조하는 영상을 틀어주시며 같이 따라 하라고 하셨다. 나도 얼떨결에 따라 하였지만, 어르신들만큼 동작을 잘 따라 하진 못했다.
그렇게 아침 체조 시간이 끝난 뒤, 어르신들은 그림 그리기를 하셨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그려진 그림에 색칠을 하는 일종의 색칠 공부 시간 같아 보였다.
나는 어르신들이 그림을 그리실 때 필요한 색연필을 나르고, 어르신들을 도와드리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했다. 어르신들이 그림을 다 색칠하고 나서 뒷정리도 나의 몫이었다.
그 뒤로도 내 할 일은 많았다. 센터 발코니에 쌓인 낙엽을 치우고, 어르신들 드실 물을 떠 나르고, 센터 바닥 대걸래질을 한 것도 나였다. 그런데 그렇게 일을 할 때마다 직원분들은 한숨이나 쉬면서 빈정대는 말투로 나한테 일관했고, 나는 아이러니하면서도, 봉사 온 나를 하대하는 거 같다는 생각보단 직원분들이 내가 일을 잘 못해서 한숨을 쉬시는 거 같아 죄송하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중 점심시간이 되었다.
봉사자에게 점심시간에 점심을 제공해 준다는 말은 없었기에, 나는 어르신들께 테이블마다 식사를 나르고 드신 잔반을 치우고 나서 밖에서 대충 때우고 오려고 했다. 그런데 직원분들이 나도 밥을 먹으라고 하셨고, 나는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며 직원분들과 밥을 먹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있었는데, 직원분들이 갑자기 나한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한테 자신을 이 노인보호센터 센터장이라고 소개한 센터장님은 내 나이가 고 2인 거에 놀라워하며 학교를 어디 다니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거짓말을 칠까 사실을 말할까 고민했지만, 끝내 진실을 말하기로 했다.
"저 자퇴했습니다"
그러자 센터장님은 더 놀란 듯 별안간 내 엄마 아빠의 직업을 물어보셨다. 나는 왜 갑자기 우리 엄마 아빠의 직업을 물어보시는지 의아했지만, 그래도 말씀해 드렸다. 그러자 센터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 아빠는 그런데 왜 너는 이 모양이니?"
나는 이 대답을 듣자마자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되었음을 인지하였으나, 첫 봉사여서 잔뜩 긴장한 데다, 나 스스로 오늘 봉사 와서 일을 잘 못한 거 같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웃으면서 넘기게 되었다. 그러자 그 센터장님은 내가 자퇴한 게 "안타깝다"며, 원래는 이런 이야기 쉽게 잘 안 해준다면서 나한테 충고랍시고 인생 훈수를 두기 시작했고, 나는 밥을 먹는 동안 그걸 다 웃으면서 들었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나서, 나는 센터장님께 원래 봉사가 끝나는 시간보다 더 일찍 가야겠다며 적당히 이유를 둘러댔다. 사실 그때까진 내가 그런 말들을 듣고 기분이 나쁜 줄도 몰랐다. 오히려 오늘 봉사를 와놓곤 일을 더럽게 못했다면서 직원분들이 나를 욕할 거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그때 봉사를 이렇게 끝까지 못한 걸 보면 그 와중에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 상황 자체가 너무 불편했었던 거 같다.
그 후 나는 한 직원분께 여기 계시는 직원 수가 어떻게 되냐고 여쭤보았고, 밖으로 나가 센터 바로 앞 카페에서 4,500원짜리 아메리카노 8잔을 사 와 직원분들께 돌렸다. 봉사 와서 일을 잘 못한 거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서였다.
나는 센터장님을 포함한 직원분들이 아메리카노를 드시는 모습을 보고 시간이 되어서 가야겠다며 밖으로 나와 마침 퇴근길이셨던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와서도, 나는 내 마음이 꺼림칙한 게 이번 봉사에서 내가 일을 잘 못해서 직원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게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땐 정말이지 화가 났다.
결국, 이번 봉사는 내가 봉사를 "골라서 가게"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어감이 좀 이상하지만, 사실 내가 생각해도 그 센터에서 원했던 봉사자는 나처럼 덩치 큰 자퇴한 남자 고등학생은 아니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인 점은, 첫 봉사치곤 정말 나쁜 경험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더 이상 봉사를 가는 걸 포기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그때 포기했으면 정말 아쉬웠을 것이다.
그렇게 생애 첫 봉사를 마친 나는 한동안 바빠져서 봉사를 안 하다가, 아빠께서 참가하시는 수영대회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우연히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