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지만 그게 나쁜 하루였단 말은 아니다
아빠께선 수영을 정말 좋아하신다. 몸이 힘들어서 매번 수영장에 안 나가고 싶다고 하시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주무시는 시간까지 아껴가시며 출근 전 일찍 수영장에 가시는 걸 보면 수영은 아빠 인생의 몇 안 되는 낙임에 틀림없는 거 같다. 그렇게 열심히 수영을 하시던 아빠는 작년에 대전에서 수영 대회가 다시 열리자 어김없이 이번에도 수영 대회에 나가겠다고 우리 가족에게 밝혔다.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이번에도 수영 대회를 나가시는 아빠를 위해 같이 따라가서 응원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아빠가 수영 대회에 나가신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어느 날 1365에서 봉사 모집 글을 재미 삼아 보고 있었던 나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봉사 모집 글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전광역시 수영대회 안전관리 보조 업무"
나는 그 새로운 구인글을 보자마자 아빠께서 수영 대회를 나가신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안방에 쉬고 계시던 아빠한테 여쭤보러 당장 달려갔다.
"아빠, 이 글에서 말하는 수영대회가 아빠께서 나가시는 수영대회에요?"
"응, 맞아."
"저 아빠 따라가서 봉사해도 돼요?"
아빠께선 내 설명을 듣고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어차피 온 가족이 다 수영대회에 갈 예정이기도 했고, 그 봉사를 하면 봉사하면서 일석이조로 수영대회에서 아빠를 응원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정말 기뻤다.
그렇게 어느덧 시간이 흘러 토요일 아침, 대회 당일이 되었을 때. 나는 아빠 차를 타고 아침 일찍 수영 대회가 열리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아침이어서 길이 안 막혀 수영장에 예상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차에서 내려 같이 수영장 내부를 이곳저곳 둘러보다 서로 갈 길을 가기 위해 헤어졌다. 아빠는 재작년처럼 수영장 동호회 사람들이랑 같이 대회에 참가한 거였기에, 동호회 사람들이랑 인사를 하느라 바빴고, 물론 나도 봉사를 하기 위해 운영본부가 어디 있는지 찾느라 바빴다.
조금 헤매던 나는 수영장 내부 깊숙이 있는 운영본부를 찾아냈다. 재작년에 봉사를 왔더라면 바로 찾았을 텐데, 그때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봉사 할 형편이 안 됐다. 수영장 풀이 국제 규격으로 지어졌다는 이 수영장은 언제 봐도 내가 그동안 본 웬만한 수영장보단 확실히 커 보였다. 곧이어 운영본부에 들어간 나는 직원들에게 봉사를 왔다고 밝혔다.
직원들은 나에게 "안전 관리" 업무를 배정해 주며 형광 조끼를 줬는데, 문제는 내가 너무 뚱뚱한 바람에 그 형광 조끼가 안 닫힌다는 거였다. 그때 몸에 겨우 들어가는 형광조끼를 입은 내 얼빠진 모습을 본 사람들은 웃음을 참느라 애썼을 것이다.
직원들이 나에게 맡긴 업무는 간단했다. 그 수영장은 관객석과 옥상이 부분적으로 연결돼 있는 터라 옥상에 인원이 많이 몰릴 텐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에게 들어가라고 권고하는 게 내 업무였다.
나는 일단 옥상에 올라갔다. 이른 시간이었기에 사람은 아직 없었다.
금방 지루해진 나는 핸드폰을 보며 사람들이 올라오는지 감시했다. 어느덧 시간이 좀 지나자 한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 올라왔다. 나는 그 사람에게 옥상에 올라오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조용히 아래로 내려갔다.
좀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옥상에 한두 명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옥상에 올라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게 위험하다며 옥상에 올라오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들 중 한 명이 언제부터 그런 법이 있었냐며 나한테 따지듯 물어봤다. 당황한 나는 나도 일개 자원봉사자고, 방금 그런 지침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그 사람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물러났지만, 나는 여기서부터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때 무렵부터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옥상에 올라와서 더 이상 통제가 되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때 즈음에 아빠께서 오셨다. 내가 봉사를 잘하고 있는지 구경하러 오신 아빠는 내 자초지종을 듣자 원래 사람들이 옥상에 많이 올라온다며 이렇게 제재만 하다가 욕만 얻어먹을 거니까 옥상 난간 옆에서 위험한 짓을 하는 사람들만 제재하라고 충고해 주셨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옥상은 난관이 높게 쳐져 있었고, 딱히 위험할 게 없었다. 나도 왜 운영본부 직원들이 나한테 옥상에 올라오는 모든 사람에게 올라오지 말라고 말하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이 올라와 담배를 피우던 옥상은 얼마 안 가 비가 와 다시 적막해졌고, 따로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우산을 쓰고 지루함을 견디며 옥상을 순찰하듯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중간에 나처럼 자원봉사를 온, 나보다 5살 정도 많아 보이는 젊은 청년분이 나한테 말을 걸었는데, 자신은 봉사를 처음 와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미화 업무를 맡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나한테 혹시 아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안전 관리 업무라 잘 모르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지루하게 보낸 나는 점심시간이 되어 아빠 동호회 팀이 모여있는 자리로 향했다. 동호회 분들은 친절하시게도 내가 아빠의 아들이란 걸 알자 반가워하며 간식들을 주셨다. 나는 운영본부에서 준 도시락과 동호회 분들이 주신 간식을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다시 업무 시간이 된 나는 옥상에 올라갔다. 점심을 먹고 나니 비가 그쳤고, 옥상은 오전보다 더욱 북적이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딱히 위험한 짓을 하지 않았고, 나는 오전처럼 순찰하는 것도 지쳐 그냥 앉아서 핸드폰으로 딴짓이나 했다.
그러다가 문득 양심에 찔린 나는 일어나서 최대한 할 걸 찾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옥상에 사람들이 몰리니 온갖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나뒹굴기 시작했다는 걸 안 나는 옥상 한편에 처박혀 있었던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그것들을 직접 치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만큼은 할 일이 생겨서 좋았다.
곧이어 옥상에는 쓰레기가 사라졌고, 나는 보람을 느끼며 운영본부로 갔다. 봉사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끼를 반납하며 운영본부 직원에게 "옥상이 너무 더러워서 제가 좀 치웠다"라고 말했다. 원래 이런 말은 굳이 안 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시키지 않은 걸 했으니까 칭찬을 받고 싶었던 추한 사심이 들어 고민고민하다가 말한 거였다. 직원분은 나한테 감사하다고 말해주셨고, 나는 기쁘게 봉사를 마쳤다.
봉사를 마치고 나니 엄마와 여동생이 와 있었다. 아빠 경기가 그때 즈음에 시작되었고, 우리는 같이 영상을 찍으며 응원했다. 아쉽게도, 아빠는 메달을 따진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와 치킨을 시켜 먹었다. 정말 좋은 한때였다. 물론 봉사는 조금 지루했지만, 그래도 나름 할 일을 찾아서 했으니 받은 도시락 값은 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차라리 지루하기라도 한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를 알게 되었으니, 그게 바로 0시 축제에서 봉사할 때 느낀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