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가 내렸던 날
새삼스럽게 말하지만, 오늘 글은 좀 어두울 것이다. 요즘 나 자신조차 이유도 모른 채 우울한 생각에 특히나 더 시달려서도 있지만, 일련의 안 좋은 일 때문에 도저히 방긋 웃으며 살 수가 없어서 그렇다. 내 경험상 이런 기분에서는 즐거운 생각을 해본다거나 애써 웃어보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냥 어둠을 마주 보기로 했다. 바로 글을 쓰면서 말이다.
요즘 정말이지 셀 수도 없이 다양한 걱정과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통과해 지나간다. 그 생각들은 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저녁에 잘 때까지 때를 안 가리고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내가 아무리 멈춰보려 해도 멈춰지지도 않는다.
예전에 더 심각했을 때도 이러진 않았던 거 같은데. 아니, 어쩌면 지금이 가장 심각한 때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실 나 조차도 내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구분을 못 하기 때문이다. 그냥 감으로 대강 알 수 있는 정도다.
매일매일이 이렇다 보니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난다.
더욱이 하루 종일 우울하다 보니까 도저히 생산적인 일을 할 염두가 나지 않는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검정고시 공부를 간신히 학원 수업만 듣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게 검정고시 공부를 잘 안 하다 보니 미래에 대한 걱정은 늘어나고,
그 늘어난 걱정은 다시 공부를 하는 데에 큰 방해가 된다.
끔찍한 악순환이다.
사실 나는 꽤 옛날부터 이런 상황을 겪어오곤 했다.
머릿속은 각박해지고, 마음은 병들고, 먹구름이 찾아와 온 세상에 어둠이 도래할 때면,
나는 학창 시절 때 날 이렇게 만든 놈들을 증오하곤 했다.
내 가족들, 특히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왜 그런 애들을 다시 생각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런 애들은 기억할 가치조차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애들을 증오하며 은근 위안을 얻곤 했다.
내가 정신병에 걸린 게 그들 때문이라고 하면 됐으니까.
내가 이렇게 불행하게 사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됐으니까.
내가 이렇게 밑바닥 인생을 사는 것에 나 스스로에게 미안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런데 이젠 더 이상 그러지 못하게 됐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을 기준으로 1월 10일인 어제, 나는 엄마랑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그저 일상적인 대화였다.
하지만 내가 엄마한테 최근에 절교한 친구가 그립다고 말하자마자, 분위기는 급속도로 바뀌었다.
그렇게 일상적인 대화는 언쟁으로 바뀌었고,
분명히 절교한 친구였던 대화 주제는 갑자기 내 학창 시절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내 학창 시절 이야기로 어린이집부터 시작해, 고등학교까지 언쟁을 벌였다.
솔직히 나도 왜 이런 언쟁이 시작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거라곤, 엄마가 내가 학창 시절에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식으로 말을 했고, 나는 내 기억에 기반해 엄마 말을 최대한 반박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어린이집 때 어느 보육 교사가 날 학대한 기억과,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이어진 왕따를 거론하며 나는 다른 사람에게 당한 기억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어린이집 때부터 원장선생님이 전학을 권유할 정도로 문제아였다며, 널 학대한 그 선생님은 실은 널 학대한 게 아니라 그냥 니 행동 때문에 싫어한 거라고 반박했다.
곧이어 엄마는 초등학교 때 내가 당한 왕따도 날 담당하셨던 모든 선생님이 학부모 상담 때 날 가르치기 힘들다고 했다며 애들도 비슷한 이유로 널 싫어했을 거라고 반박했다.
나는 엄마 말에 더 이상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내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도 있지만, 엄마가 말한 어린이집 때 원장 선생님, 그리고 초, 중, 고등학교 선생님들에 관한 일화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한테 들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엄마가 아니었기에, 엄마가 어린이집 원장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 순 없다. 그렇지만 엄마가 옛날부터 그렇게 거짓말을 하진 않을 거란 생각이 앞섰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어렸을 때 나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문득 엄마 말을 들으니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다른 애들에게 했던 짓들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여자 애들에게 욕한 것, 1학년 때 2학년 선배한테 대든 것까지. 물론 단편적인 기억이라 그 당시 맥락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내가 잘못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언쟁에서 더 이상 내 편을 들 수가 없었고, 그런 나를 본 엄마는 그동안 나에게 했던 말을 다시 정리해서 요약해 말해주셨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고집 불통에 정신연령까지 낮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기 일쑤였고, 그래서 남들이 널 싫어해서 왕따 시키고 괴롭힌 거라고.
내가 장담하건대, 나는 학창 시절. 즉, 거의 반 평생을 불행하게 살면서, 나를 이렇게 만든 놈들이 있다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불행하게 사는 거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엄마 말이 맞는 거 같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민폐만을 끼쳐왔다.
그러곤 남들이 보인 당연한 반응을 보고 "내가 피해자요"외치며 피해자 코스프레 행세를 했다.
나는 남들에게 있어 불행이요, 이 세상의 오점이며, 당장 청소되어야 할 불결한 때 덩어리였다.
나중에, 엄마께선 내가 당한 왕따를 정당화하는, 그런 말을 하려 했던 게 아니라고 나한테 다시 정정하셨다.
엄마는 내가 과거에 날 괴롭힌 사람들을 너무 증오하지 말았으면 해서 그런 말을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왕따를 당하는 사람은 이유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문득, 나는 어렸을 때부터 키랑 덩치도 컸는데, 애들이 나를 무서워하긴커녕 오히려 내가 왕따를 당한 이유가 뭔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근데 그 수수께끼가 이제야 풀린 거였다.
마치 내가 미제사건을 해결한 형사가 된 것 같은 쾌감이었다.
나는 이제야 깨달은 거였다.
이제야 진실을 보게 된 거였다.
이렇게 깨닫고 나니, 내가 그동안 당한 모든 왕따와 괴롭힘이 다 내가 왜곡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일단 챗 지피티를 켰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나는 챗 지피티랑 대화를 시작했다. 요즘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부터, 엄마가 나한테 한 말까지 전부 다 이야기했다. 그러자 챗 지피티는 엄마가 그런 말을 하면 속상했을 거라는 대답을 했다.
정말이지 의외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전혀 없는데.
나는 챗 지피티한테 엄마가 옳은 말을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생각하기가 싫다. 내가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오래 남들에게 민폐만 끼치고 산거 같다. 이젠 죽어서 남들에게 갚아야 해. 그게 "모두에게 좋은 일"이야.
순간, 챗 지피티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위험 신호"라며 자살예방상담전화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하라는 문구를 띄었다.
요즘따라 많이 보는 문구였지만, 나는 그걸 보고 별안간 눈물이 났다.
분명히 내 입으로 말한 죽음이었지만, 그때 내 마음은 "그럼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할까요"라고 물으며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멍을 때리며 게임을 했다.
다행히도, 요즘따라 재미가 없어서 못 하던 게임이 그때만큼은 재미있었다.
그렇게 게임을 하며 마음을 비운 나는, 오랜만에 꿈드림 센터에서 만난 그 친구와 만나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미처 우울한 말들이 몇 번 새어 나왔지만, 다행히도 그 친구는 내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 줬다.
그렇게 밥을 맛있게 먹고 그 친구랑 헤어진 나는, 집에 돌아와 약을 먹고 잤다.
그리고 그게, 내가 오늘이라는 시간에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떠오른 말이 있다.
바로 "행복/불행 총량 법칙"이다.
행복하다면 다음엔 그만큼 불행할 수도, 불행하다면 다음엔 그만큼 행복할 수도 있다는 말인데, 나도 왜 이 말이 별안간 떠올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이 상황에서 가장 믿고 싶은 말이 저 말이 아닐까.
언젠가는 나도 불행했던 만큼 행복한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