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망생 시절, 기자가 되고 싶다는 나의 결심은 비장했다.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약한 기자, 진실을 밝히는 기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현직 기자들 앞에서 했다간 비웃음 당하기 쉽다. 열악한 노동환경, 데스크와의 관계 등 지망생 때의 다짐을 지켜나가기엔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한 줄의 기사로 세상을 바꿔 보겠다고 큰소리치던 나도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는 유혹에 마음이 기운다. 그 시절 내가 품었던 결심은 어디로 간 걸까.
이 질문에 답을 주는 영화가 있다. 로랑 캉테의 <폭스파이어>(2012)다. 영화는 1950년대 미국의 가난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강간, 폭력 등에 노출된 소녀들은 ‘폭스파이어’라는 결사대를 조직한다. 영민한 주인공 렉스를 중심으로 결집된 이 조직은 반남성우월주의, 반자본주의를 지향한다. 이들은 성희롱을 일삼는 나쁜 어른들을 응징하고,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도심 속 기물을 파괴하면서 정의를 실현해 나가고자 한다. 하지만 경제적 문제 등 현실에 부딪치면서 조금씩 변질된다. 시시한 범죄 집단으로 추락한다.
<폭스파이어>는 실패한 혁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껏 정의라고 믿어왔던 것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어떻게 살면 좋을까? 영화는 이렇게 응답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비록 순간일지라도, 진실이었다면 그것으로 된 거라고. “불꽃처럼 타오르는 동안에만 진실하면 돼. 때가 되면 꺼진다고 해도.”
얼마 전 언론고시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을 만났다. 모두 현직 기자다. 술자리에선 기자직에 대한 깊은 고민도 나왔다. 무엇이 공정보도인지, 취재원 보호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내가 밀쳐냈던 고민을 구체화하고 있었다. 현실에 안주하려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순간의 진심이라도 괜찮다”는 낙관이 가능했던 것은 한 때의 성장통 정도로 치부되는 고민을 치열하게 붙드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낭만에 가까운 꿈, 조금 어설픈 고민이라도 그것을 끈질기게 이어나가는 건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