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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나 Jul 06. 2020

나는 ‘직반인(직장인+대학원생)’으로 살기로 했다

01. 존버와 퇴사의 사이, 대학원

 

직장과 대학원, 둘 다 다 해낼 수 있을까?”      

    

2018년 여름, 대학원에 합격했을 때, 기쁨보다 불안이 앞섰다. 주말에 수업을 하기 때문에 근무에는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앞으로 2년간 주말에 쉴 수 없다는 점은 심적으로 큰 압박이었다.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공부하는 바른 생활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아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O”를 외쳤던 건 직장생활과 거리 두는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입사 이후 집과 회사만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반복했다. 무기력증이 왔다. 주말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널브러져 있어도, 머릿속에선 지난 주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 복기됐다.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한숨처럼 새어나왔을 때 “이거 조금 위험한데”라는 생각이 들었.       





내 삶을 통제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시간의 대부분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데 할애돼 있었다. 상사의 허락을 기다리고, 퇴근을 기다리고, 주말을 기다리며  끝없이 유예하는 삶. 온전히 내 삶을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라는 답 없는 질문이 떠오르는 날이면 밤잠을 설쳤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짜 삶’처럼 느껴졌다. 취미 생활에서 보람을 찾으려고 발버둥 쳐보기도 했지만(심지어 발레도 함) 그렇기엔 내 삶의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회사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너무 아픈 존버존버가 아니었음을          


나에게 필요한 건 ‘통제감’이었다.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끌고 있다는 지휘감각이 그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회사에서 내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들은 많지 않다. 직장인 절대 다수는 통제하는 쪽이 아니라 통제 당하는 쪽이다. 작은 결정부터 큰 결단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남이 정해주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어쩌면 회사생활에 익숙해진다는 건 체념이 습관화되는 과정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이, 내 커리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도록 지휘권을 넘겨준다는 의미에서다. 남의 돈을 버는 일이란 게 다 그렇다지만, 회사에서 터득한 처세가 인생 전체를 장악하게 둬서는 곤란하다.           


‘대학원생’이라는 정체성이 탐났던 건 그래서다. ‘직장생활’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대학원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흔히들 직장생활(회사생활)과 사회생활을 혼용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둘은 좀 다르다. 직장은 사회의 부분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회사가 세상의 일부인 것처럼, 직장생활 역시 사회생활의 한 부분일 뿐이다. 직장 생활에서 이룰 수 없었던 ‘자아실현의 욕구’와 취미 생활에서 채울 수 없었던 ‘자기 계발의 욕망’을, 대학원이라는 가보지 않은 길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직장생활의 여집합, 대학원으로          


지도교수님과 주고받은 이메일. 반복되는 RE에서 약간의 광기가 감지된다.



내가 입학한 곳은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이다. 나는 이곳에서 과학저널리즘과 인공지능·나노기술과 같은 최신 과학 기술의 개론적인 내용을 공부했다. 대학원 생활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가장 빡셌던 건 논문이었다. “귀무가설이 어떻고 영가설이 어쨌다고?” 연구방법론 자체가 이해가 안됐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신종코로나바이러스19가 유행하면서 교수님직접적인 논지도받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이래저래 운이 좋아 학회 컨퍼런스에서 우수 논문상을 받고 졸업을 앞두고 있다. 6~7개월 동안 논문을 준비하며 ‘존버’한 썰들, 그 과정에서 느낀 소소하지만 확실한 깨달음들을 시리즈로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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