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 헌법소원에 참여했습니다
2020년 10월 8일 오전 11시 사단법인 두루와 사단법인 오픈넷이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위헌 결정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관련 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내용의 '헌법소원 심판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나는 이 '헌법소원 심판'에 청구인으로 참여했다.
'헌법소원'이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받은 사람이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는 심판을 뜻한다. 헌법소원은 크게 권리구제형과 위헌심사형으로 나뉜다.
이번에 본인이 청구한 헌법소원은 위헌심사형으로, 형법 제307조 1항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헌법 제21조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 등에 위반된다는 것을 확인해달라는 내용이다.
이번 일을 진행해주신 사단법인 두루, 사단법인 오픈넷 관계자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본인의 역할은 사례를 제공하고 발언문을 보내드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헌법소원에는 5명의 '명예훼손 사건 당사자'가 참여했다.
헌법소원 청구인 A는 가정폭력 사건의 피해자다. 그는 2002년 이혼을 택했다. 남편 Z가 아이의 친권자 및 양육권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혼 직후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찾아와서는 "아이를 잠시만 맡아달라"고 했다. 남편은 그 직후 잠적했다. 이후 A는 양육비를 요구하는 소송 등을 진행하여 승소했지만, 그의 전 남편 Z는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법원에서 이행명령, 지급명령, 감치 등의 처분을 내렸음에도 양육비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A는 2020년 3월 6일 전 남편의 집 앞에서 '18년간 밀린 양육비를 조속히 지급하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그러자 전 남편 Z는 A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당시 Z의 고소장에는 "본인은 18년간 양육비를 미지급한 사실이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다. Z는 이어 "Z(본인)가 양육비를 미지급하였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며 "A를 처벌해달라"라고 요청했다. 이 사건은 현재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에서 수사 중에 있다.
헌법소원 청구인 B 역시 가정폭력 사건 피해자다. B의 전 남편 Y는 B를 주먹으로 때리거나, 머리채를 잡고 집안 이곳저곳으로 끌고 다녔다. 결국 B는 아이와 함께 집에서 도망쳐 나왔고, Y는 가정폭력 관련 상해 혐의로 피소되었다. Y는 상해죄로 기소되어 법정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Y에게 매달 60만 원의 양육비를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Y는 8년째 양육비 지급 관련 명령들을 거부하고 있다.
B는 이행명령, 지급명령, 감치, 채권추심 등 법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절차를 진행했다. 그러나 Y는 양육비 지급을 끝끝내 거부한다. 이에 B는 '배드파더스'에 Y의 사례를 제보했다. '배드파더스'는 Y처럼 양육비 지급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다. Y는 '배드파더스' 활동가를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그러나 해당 활동가는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국민 배심원 전원이 '무죄' 판결을 내리는 게 맞다는 의견을 내었다. 이후 B는 Y를 찾아가 여러 차례 항의했고, 이로 인해 Y의 어머니에게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했으나, 역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헌법소원 청구인 C는 진실탐사 그룹 셜록의 기자다. 그는 지난해 논산에 위치한 백제종합병원의 각종 비리를 취재하던 중 병원 측에 의해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했다. 병원 측은 이미 밝혀진 사실조차 허위사실이라고 우기며, 소송을 통한 '괴롭힘' 전략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헌법소원 청구인 D는 대학 내 성폭력 피해자다. 그는 사건 직후 피해 사실을 수사기관 및 학내 인권센터에 알렸다. 그러나 학교 측은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공간 분리를 호소하자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 중 한 사람은 "같이 수업 듣는 게 왜 힘든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여자라 그런가 보다"라고 발언했다. 그는 학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 불러놓고 '공개토론회'를 진행하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했다. 결국 여러 언론사들이 이를 보도했다. 그러자 해당 교수는 '명예훼손죄'로 D를 고발했다. D는 이제 곧 경찰에 출석해야 한다.
헌법소원 청구인 E는 본인이다.
지난 8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진행되었던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발언문으로 청구인 E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갈음한다.
- 발언문 -
저는 현재 광주 지역의 한 사립학교 재단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 학교는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 부정채용 의혹 등의 비리에 지속적으로 연루되어 왔습니다. 지난 2017년에는 학교재단의 전직 이사장이 학교 교사 채용 과정에서 1차 시험을 통과한 지원자를 찾아갔습니다. 이사장은 지원자에게 “교사로 채용시켜 줄 테니 5천만 원을 달라”고 금품을 요구했습니다. 지원자는 이사장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다행히 지원자는 '금품 요구'를 거절하고도 시험을 통과하여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장은 이때의 금품요구가 발각되어 구속되었습니다.
올해 5월 이사장의 금품 요구를 거절하고도 채용되었던 교사가 갑작스러운 해임 징계 처분을 받았습니다. 확정될 경우 3년간 임용시험에 응시조차 할 수 없어 생계가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이것이 중대한 공익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동료시민 900명이 3년간 중등교육을 받는 곳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현수막을 게시했습니다. 학교 학생들도 학내 집회를 개최했습니다. 여러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을 비롯한 사회 주체들도 해임된 교사와 연대했습니다.
그러자 학교 측은 본인들을 비판한 모든 사회 주체들을 명예훼손을 이유로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지금까지 학교 측에 의해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한 사람은 청구인 E, 해임된 교사, 시민단체 대표, 노동조합 위원장, 언론사 기자 4명, 해당 학교 재학생 3명 졸업생 1명, 타 고등학교 재학생 1명 등 13명입니다. 이들에게 걸린 고소는 모두 18건에 달합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을 교육한다는 스스로의 책무마저 망각하고 학생들까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사건을 접수한 광주 광산경찰서 수사관들마저 이것은 도의가 아니지 않느냐며 혀를 찼습니다. 너무나도 큰 사회적 충격에 MBC 스트레이트를 비롯한 중앙 언론사들도 이 사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학교 이사장은 이번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소환되었습니다.
학교 측이 뻔히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왜 고소했겠습니까. 학교 측은 사회 주체들이 정당한 목소리를 내고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을 억압하기 위해서 시민들을 고소했습니다. 학교 측은 사회 주체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서 명예훼손죄를 활용했습니다. 권력 집단이 비판을 목소리를 가로막기 위해 이용하는 것, 이것이 바로 명예훼손죄의 본질입니다!
형법 제307조 1항은 존재 자체로 모든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이야기 함에도 공익성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표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억제되고 있습니다. 이것의 결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엄청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임금체불과 폭행을 당하는 동료시민, 사립학교에서 부당한 사유로 해임된 동료시민, 성희롱,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동료 시민들을 지키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임금체불, 폭행, 성희롱, 성폭력, 부당 해고 그리고 모든 잘못되고 불의한 것들을 마주한 누군가는 정의로운 발화를 참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금 이 순간에도 명예훼손죄를 이유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정의를 억압하는 진실유포죄를 지금 당장 폐지하는 것뿐입니다.
결론.
결국 형법 제307조 제1항, 형법 제310조는 명확성의 원칙, 비례원칙에 위배되어 청구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할 것이므로, 위 각 조항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 형법 제310조는 형법 제307조 1항에 관한 예외 규정으로 특정 요건이 충족될 경우 위법성이 사라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