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떻게 사이비 종교에 사로잡히는가.
이 글은 독후감이다. 일본의 정신분석학자 사이토 다마키의 <폐인과 동인녀의 정신분석> 3장을 토대로 한다. 해당 책은 일본 히키코모리 문제 해석의 시금석으로 평가받는다.
이 글은, '컬트 집단 구성원'과 '히키코모리'라는 두 특이점이 온 인간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막연하게 형성된 세계관에 정확한 언어를 얻게 된 느낌이다. 이 책의 저자 사이토 다마키는 의학박사로 정신분석 전문가다. 그는 여러 히키코모리들을 만나왔고, 컬트(사교) 집단에도 조예가 깊다. 그는 이 책에서 두 집단의 인간들을 비교·분석했다. 그는 우선 컬트적 성격이 짙은 '야마기시회'의 사례를 자세히 설명한다.
일본에는 '야마기시회'라는 마을 공동체가 있다. 1953년 발족한 야마기시회는 양계장을 운영하던 야마기시 미요조의 사상에 따라 '마을 공동체'를 조직하여 집단생활을 해왔다. 세상에는 자연과 마을에 대한 비이성적인 예찬을 신앙처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야마기시회는 그 극단에 해당할 것이다. 석양은 여전히 아름답고 숲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은 언제나 산뜻한 마음을 만들어주지만, 이는 과학과 근대성을 간단히 부정하려는 태도와는 별개의 영역에 있다.
야마기시회 입회를 위해서는 전 재산을 야마기시회에 헌납하고, 7박 8일간 야마기시회의 기본적 사상을 배우는 특강을 수강해야 한다. 이때 헌납한 재산은 추후 '회'를 탈퇴하더라도 돌려받을 수 없다. 마을의 수익은 주로 농업과 축산업에서 나온다. 마을은 또한 공동 육아를 통해 아이들을 교육한다.
야마기시 마을 사람들은 오전 일찍 일어나서 고강도 노동에 종사한다. 미국의 인민사원과 한국의 신천지 구성원들에게 강제되었던 '다른 생각을 잊게 할 정도의 노동'을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에 대한 이해에는 넷플릭스 '익스플레인: 세계의 해설하다'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믿음의 함정'편이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다. 사교는 몇몇 법칙만 확립되면 자연스럽게 굴러간다.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존재, 일종의 세뇌 프로그램 (마인드 컨트롤), 구성원에 대한 착취, 적대 세력의 존재 등이 그것이다.
신천지는 정식 입회 직전까지 7개월간 이어지는 교육에서 "세상 생각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입회 이후에는 오전 일찍부터 저녁까지 일거리를 준다. 다른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다. 918명의 집단 자살로 막을 내린 인민사원 역시 남아메리카 가이아나에 '존스타운'을 건설한 후 구성원들에게 극단적인 수준의 노동을 강제했다. 자아를 통제하고 한 인간의 온전함을 축소시키는 것, 사교 집단의 원동력이다.
야마기시회는 일본의 사교 옴진리교가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사건을 일으킨 1995년부터 날카로운 사회적 감시를 받아왔다. 이후 일본 언론인 요나모토 가즈히로에 의해 야마시기회의 실체가 낱낱이 폭로됐다. 이 여파로 야마기시회 구성원은 전 세계의 마을 공동체 중 가장 많았던 3천 명에서 500명 수준으로 줄었다.
언론인 요나모토 가즈히로가 본인의 저서 '세뇌의 낙원'을 통해 밝혀낸 이들의 '세뇌 수법'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정신과 의사인 사이토 다마키조차 그런 수법을 견딜 정도로 자아 안정성에 자신 있지 않다고 했다.
야마기시회는 7박 8일간의 특강에서 '분노의 연찬'과 '무소유의 연찬'을 통해 인간의 자아에 간섭한다. 분노의 연찬에서는 살면서 가장 화가 났던 순간을 묻고, "왜 그것에 그렇게 화가 났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이들은 참가자가 질문에 답해도, 다시 한번 똑같은 물음을 반복한다. 이후 같은 질문을 수십 번 되풀이한다. 반복적인 질문을 통해 참가자를 정서적으로 동요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아집'을 버릴 것을 주문한다. 사실과 생각을 분리하라고 명령한다.
정신의학 전문가인 사이토 다마키는 이를 "의식을 해리(분열)시키는 시도"로 해석한다. 의식의 분열을 통해 의도적인 해리 상태를 야기하여, 마인드 컨트롤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자아 안정성의 훼손은 결국 조종당하기 쉬운 상태로 이어진다.
실제로 7박 8일간의 반복적이고 공격적인 특강 후 '이인 증상을 갖는 신경증'을 경험한 이들이 있었다. 이인 증상이란 자기 자신과 주변 환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인데 마치 "우주에 떠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수강생들은 특강을 들은 이후 외부 자극에 대한 무관심 상태에 빠진다. 이는 외부 세계(스마트폰, 인터넷, 인간관계)와 단절된 상태에서 7개월간 교리 교육을 받은 신천지 신도들의 경험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이토 다마키는 마인드 컨트롤을 "신체적·심리적 스트레스에 의해 의도적으로 일으킨 해리(분열) 상태를 조작적으로 사용하는 행위 일반"으로 정의한다.
사이토는 <다중 인격 장애>를 일본어로 번역한 나카이 히사오의 말이 본인의 논점을 간접적으로 보강해준다고 했다. 나카이는 본인의 저서에서 "정신 분열증이란 무엇에 대한 방어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마인드 컨트롤에 대한 방어 기제가 아닐까"라고 주장했다. 정신 분열증 환자들은 자신의 자아 단일성에 대한 파괴를 무릅쓰고 자신의 단일 '통합성'을 지켜내려 한다. 그 결과가 바로 정신분열이다.
'야마기시회'는 7박 8일간의 특강에서 참가자의 고유성을 스스로 기술하게 하고, 마침내 스스로 기술한 고유성에 근거가 없음을 스스로 폭로하게 한다. 자아의 기반이 되는 근거들을 하나하나 파괴당한 인간은, 그렇게 집단에 온전히 종속된다.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분노의 연찬'과 '무소유의 연찬'은 모두 자기애를 파괴하려는 시도에 해당한다. 신천지는 장장 7개월간의 교리교육을 통해 자아의 단일 통합성을 공격했고, 자기 생각을 잃고 충격에 빠진 수강생들에게 '메시아'를 제시했다. 신천지는 스스로도 이 행위가 갖는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 스스로 7개월 차에 행해지는 교리 교육을 내부 용어로 '환자 만들기'라고 불렀다. 자아를 흔든 이후, 의존 대상으로서 교주를 제시하는 것이다.
'야마기시회'와 '신천지'의 교육과정을 수료한 인간들은 어딘가 굉장히 행복하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열심히 농사를 짓고 전도 활동을 했다. 그러나 내면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공감성을 상실한 채 집단에 속박된 괴물이 되어 있었다. '야마기시회'의 위험성은 이들이 학교 설립에 나서면서 드러났다. 부모에 의해 강제로 야마기시회에 편입된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외부 세계에 해당하는 '일반 공립학교'에 등교하는 것이 불만이었던 야마기시회는 자체 학교 설립을 시도했다.
이에 대해 교육당국은 야마기시회 소속 초등학생, 중학생 407명에 대한 전수 조사로 맞섰다. 그 결과 보호 담당자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응답이 80%,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는 응답 역시 80% 이상 나왔다. 폭행은 코피 날 때까지 때리기, 벽에 머리 박기, 방망이로 때리기, 콘크리트 벽이 있는 방에 감금 등 심각한 학대에 해당했다.
만성적인 해리 상태에 있었던 회원들은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학대당하는 아동의 고통에 공감이나 배려를 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다. 아이들은 눈물을 잃었다. 한 아이는 발열과 탈수 때문에 링거를 맞는데, 주사 바늘이 들어가지 않아 정맥 절개를 받았음에도 한 마디 반응도 내어놓지 않았다. 이 아이 역시 해리 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렇다. 해리 상태란 아픔을 없애 버린다. 나는 확실히 이야말로 컬트적 위험성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고통이야말로 가장 개인적인 감각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고통은 연대를 낳지 않는다. 고통은 인간을 고독하게 만든다. 그러나 또한 고통은 공감으로 진일보하는 연결선이 되어준다. 우리가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생활하는 건 자신의 아픔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픔의 상실'은 직접적으로 폭력을 가져오고 만다. 갈등과 불안을 면하고 아픔 감각을 없앤 인간은 공감성을 결여한 폭력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작가는 마지막으로 '은둔형 외톨이'들은 컬트 따위로 달려가지 않는다면서 그들의 일견 오만해 보이는 태도가 한편으로는 상쾌하다고 역설한다. 행복한 꿈이 아니라, 추한 현실을 선택했기 때문일까?
"히키코모리들이 컬트에 빠지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해리(분열)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타인과 접촉하는 것, 사회로부터 비판 대상이 되는 것, 그런 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해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은 행동을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이들을 주저앉히는 것은 확실한 자기 생각인 자기애다. 감각이나 행동의 자기 소속감을 잃고 싶지 않다는 강박적 집착이다. 그것은 일종의 미숙함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미숙하다고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자기애적 은둔은 마인드 컨트롤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해리로 도피할 수 없는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은 확실히 아픔을 아는 자들이다. 그렇기에 타자와의 교류 자체를 혐오하기도 하는 그들의 태도에도 한 줌의 윤리성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