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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Oct 05. 2021

도박중독, 오징어게임, 무엇이 널 이렇게 만들었을까.

인간은 왜 도박중독에 빠질까

# 본 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인간에 대해 고민한다. 최근 고민중인 주제는 '중독'이다. 중독에는 인간의 아픔이 담겨있다. 가난과 폭력이 스며들어 있다. 불행하기 때문에 중독에 빠지고, 무언가에 중독된 인간은 필연적으로 불행해진다. 어린 시절 겪은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에서 알콜 의존증과 헤비한 스모킹이 연원한다. 일부는 마약 중독, 도박 중독과 같은 극단의 상황에 내몰린다.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기훈이 겪은 쌍용차 투쟁과 같은 강렬한 폭력의 경험에서 비롯된 트라우마 역시 이 같은 중독의 자양분이 된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은 날카롭다. 주인공 기훈은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도 엄마의 돈을 훔쳐 경마를 한다. 문제는 가끔 따는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맛보게 된 극단의 쾌락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진다. 그날 기훈에게 한 남성이 접근해 유혹의 말을 던진다. 그는 "선생님께 기회를 드리고자 한다"고 했다. 마치 경마장이나 온라인 도박 사이트가 한 캐릭터로 온전히 은유된 듯 했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다. 유능감을 만끽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실감하고 싶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30년 전인 1990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9.9%였다. 이는 약 7.2년이면 전체 경제규모가 2배로 성장함을 뜻한다. 그러나,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2020년대 한국 사회는 이미 그 역동성의 상당 부분을 상실했다.


 더 이상 화려한 계층 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성실히 일해도, 임금 노동만으로는 평생을 보낼 집 한 채 마련하는 것도 어렵다. 가재, 붕어, 개구리의 입장에서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통제하지 못함을 절감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아님을 깨달은 인간에게는 몇몇 선택지가 있다. 그 극단이 자살이고, 중도의 방침 중 하나가 중독이다.


 중독의 핵심은 '즉각적인 보상'이다. 인간의 뇌는 즉각적인 보상에 취약하다. 술을 마시면 기분 좋음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중독의 대상들은 인간에게 무엇이든 보상을 준다. 물론 가장 강렬한 보상은 뇌에 전달되는 쾌감일 것이다. 역동성을 상실하고 억압과 패배감에 갇혀있던 삶에 단기적이지만 강렬한 쾌감과 해방감이 나타난다. 특정 행위를 하면 반드시 특정 질량의 쾌감과 만나게 된다.


 그렇게 통제할 수 없던 삶의 늪에서 일시적으로 해방된다. 도박을 하면, 마약을 하면, 게임만 하면.


 <오징어 게임>을 보고, 도박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다녔다.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들을 섭렵했고, 디시인사이드 도박갤러리와 도박치료갤러리에서 이용자들이 작성한 글을 읽어봤다.


 그들은 모두 다른 상황에 놓여있었지만, 그들이 도박 중독에 이른 레파토리는 대부분 비슷했다. 대부분의 중독자들이 일상에 희노애락이 없고, 자극될 만한 일이 없는 상황에서 도박을 접했다. 승부의 짜릿함을 대신할 만한 건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도박센터


 그들 중 상당수가 '초심자의 행운'을 경험했다. 어떤 고등학생은 7만원으로 700만원을 만들기도 했고, 심지어 작은 판돈으로 8000만원을 벌었던 이도 있었다. 삶이 뒤바뀌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그 돈에 만족하고 도박을 중단하지 않았다. 몇 판의 게임이 뇌 구조에 치명적인 변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때 경험한 쾌감을 이렇게 묘사했다.


 "(도박이) 재발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목 뒤 혈관 쪽부터 식도 쪽까지 느껴지는 뜨거움. 그러나 점점 불쾌한 두근거림이 느껴지고 돈을 다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절대 끊어내지 못하는 그 감정. 도박을 하고 나서는 맛있는 음식, 사고 싶었던 물건, 취미생활, 친구 만나기, 술, 담배와 같은 것들에도 흥미가 사라진다." 


 초심자의 행운에서 비롯된 강렬한 경험은 한 인간으로 하여금 자아 안정성과 자기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한다. 게임을 마친 이후에도 한동안 일상에 흥미를 잃고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온라인 도박 사이트의 경우에는 1분 단위로 계속해서 돈을 걸 수 있기 때문에 잠도 자지 않고, 모든 것을 잃을 때까지 온 종일 게임을 반복한다. 무서운 건, 돈을 다 잃어도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출' 때문이다. 그렇게 대부업에 손을 뻗게 되고, 어느새 모든 것을 잃은 자신을 발견한다.


 '분노벳'이라는 것도 있다. 스스로의 통제력을 신뢰하며 일정한 금액을 걸어온 이가 연속적인 패배 상황에 놓인다. 지금까지의 패배를 한 순간에 만회하고 싶어하는 게 인간이다. 분노벳으로 거금을 건다. 그러나, 패배하게 되고 강렬한 감정에 휩쌓인다. 다음날 대출받아온 돈까지 잃고, 삶의 벼랑 끝에 선다. 가족이 일정 채무를 변제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가족이 건넨 돈을 또 다시 베팅에 사용하여 더 큰 위기에 처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단도(도박을 끊는 것)'는 불가능으로 여겨진다. 도박을 잊기 위해 열심히 몸을 쓰는 일을 하고,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결국 다시 도박 사이트에 10충(10만원 충전)하고, 베팅을 건다. 도박은 뇌기능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도록 만드는 명백한 질병이다. 도박의 유일한 해결책은 지속적인 치료 뿐이다. 당신은 결코 도박으로 돈을 벌 수 없다. 초심자의 행운 따위를 겪지 않고, 작은 승리도 경험하지 못하는 것, 진정 하늘이 내려주는 행운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운좋은 상황에 놓이게 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당신의 삶은 큰 고통에 직면할 것이다.


 최근 사회 전반에 중독의 마수가 확산되고 있다. 스스로 삶을 통제하지 못함을 느끼는 것은, 부족함 없이 무절제의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도 SK그룹과 현대그룹의 3세들은 마약 중독에 빠졌다. 모든 것을 자유롭게 누리고 아쉬움 없이 재화를 선점함은 실은 또 다른 삶의 감각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말을 따라 정해진 삶을 살아온 이들 역시 중독에 취약했다.


 <오징어 게임>의 마지막 부분, 게임의 설계자 오일남이 기훈에게 말한다.


 "자네,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뭔 줄 아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야. 돈이 너무 많으면 아무리 뭘 사고 먹고 마셔도 결국 다 시시해져 버려. 언제부터인가 내 고객들이 하나둘씩 나한테 그러는 거야. 살면서 더 이상 즐거운 게 없다고. 그래서 다들 모여서 고민을 좀 해봤지. 뭘 하면 좀 재미가 있을까."


 분노한 기훈에게 오일남은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자네가 잊은 것 같군. 나는 아무에게도 게임을 강요한 적이 없어"


 온라인 도박 사이트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결코 중독자들에게 게임을 강요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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