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문] 진실유포죄는 폐지되어야 한다
12월 16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김용민, 최혜영, 정필모 의원실과 사단법인 두루, 사단법인 오픈넷이 공동으로 주관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위한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했습니다. 자세한 토론회 스케치는 아래 기사에 담겨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해당 토론회에서 발표한 발언문을 공유합니다.
[발언문]
안녕하세요. 저는 광주에서 활동가로 살고 있는 김동규입니다. 주로 청년세대별 노동조합인 광주청년유니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위한 토론회에 초청해 주신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명예훼손죄로 6차례 수사를 받았습니다. 그중 4건은 광주 광산구에 위치한 사립학교 명진고등학교와 관련된 사건이었습니다. 지난 2017년, 광주 명진고 학교재단 이사장이 교사 채용과정에서 1차 시험을 통과한 응시자 A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사장은 그에게 “교사로 채용시켜 줄 테니, 5천만 원을 달라”며 금품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지원자는 이사장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지원자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더 이상 연락하지 말아 달라. 2차 시험은 떳떳하게 응시하겠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해당 지원자는 금품 제안을 거절했음에도 교사가 되었고, 이사장은 이때의 금품 요구로 배임수재 미수죄로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2020년 5월, 이사장의 금품 요구를 거절했던 교사가 갑작스럽게 해임 징계 처분을 받았습니다. 징계 사유는 그가 작성한 가정통신문에 오류가 있어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는 등, 징계 양정의 적정성에 비추어 결코 해임에 이를 수 없는 것들뿐이었습니다. 교원의 경우 해임 징계가 확정될 경우 직업을 잃는 건 물론이고, 3년간 임용시험에 응시할 수 없게 되어 생계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이 때문에 해당 교사를 좋아했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학교법인의 사학비리를 고발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당시 저는 한 재학생분의 요청을 받고 학교 앞에 현수막을 게시했습니다. 잘못된 징계를 취소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를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학교 측은 현수막을 게시한 저와 이를 요청한 명진고 재학생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했습니다. 학교 재학생이 사학비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학교가 학생을 고소한 것입니다. 이후 저는 오마이뉴스에 명진고 사학비리 사건에 대한 기사를 썼고 3차례 더 고소당했습니다. 명진고 측에게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한 사람은 해임된 교사, 시민단체 대표, 광주교사노동조합 위원장, 언론사 기자 4명, 명진고 재학생 3명 졸업생 1명, 타 고등학교 재학생 1명 등 12명입니다. 이들에게 걸린 고소는 모두 18건에 달합니다.
고소장이 접수될 경우, 수사기관은 의무적으로 수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관련자분들은 모두 경찰서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사건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혹여나 형사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나 스트레스를 많은 분들이 받으셨습니다. 몇 달 뒤에야, 검찰에서 명진고가 고소한 명예훼손 사건 18건을 모두 무혐의 종결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관련자들의 주장이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학교 측이 18건의 고소장을 남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형법 제307조 제1항에 있었습니다. 바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입니다.
학교 측은 저에 대한 고소장에서 우선, 저의 주장이 허위의 사실이라고 단정한 후, 단서 조항을 붙였습니다.
“설령, 김동규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형법 제307조 제1항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는 위법성 조각사유가 존재합니다. 형법 제310조에 나와있듯, 오직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 위법성이 조각되어, 처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가 아닌 저는 어떤 경우에 저의 주장이 법리의 영역에서 공익적인 주장으로 인정받는지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특정 주장이 ‘주로’ 공익적인 경우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시민 96%는 본인의 행위가 법리적으로 '주로' 공익적인 것인지 판단할 사법적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나마, 명진고 사건 당시에는 저의 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워낙 많은 언론에서 사건을 보도했고, 해당 교사분에 대한 징계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취소되었고, 국회 교육위원회가 국정감사에서 이 사건을 다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처음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했던 2016년에는 달랐습니다. 저는 당시 지인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업장에서 심각한 폭행을 당하고 임금을 체불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폭로했습니다. 그 결과 체불임금은 받았지만, 사업주가 저와 저의 지인을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소했습니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비방의 목적’이 필요합니다. 당시 저에게는 비방의 목적이 없음이 명백했습니다. 또, 저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때의 사건 역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법성 조각사유가 적용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경찰서에서 1차 조사를 받은 후, 검찰에서 2차 조사를 받았습니다.
당시 제가 느꼈던 강렬한 감정을 기억합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한 시민들은 대부분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부분 특정 사건이나 피해를 폭로하거나 고발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성폭력을 당했거나, 폭행을 당했거나, 특정 집단의 비리를 폭로한 이들이 경찰서에 불려 가고, 도리어 죄인 취급을 받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습니다. 그 기간 동안, 피고소인들은 이 사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경험을 합니다. “너만 조용히 있으면 되는데”라는, 거대한 사회적 억압을 마주하는 경험을 합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닌데,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와 질서가 나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감정을 마주합니다. 6개월 만에 사건이 무혐의 처분되었다는 검찰의 우편을 받고, 저는 기쁨이 아닌 분노를 느꼈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핵심은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입니다.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에 대한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 등을 예외적으로 금지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모든 사실적시를 금지한 후, 이중 ‘공익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행위 만을 예외적으로 허용해온 법 제도 설계가 수많은 공익제보자들의 발화를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에 심대한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단 한 번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이유로 고소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방의 목적이 없고,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상 저를 향했던 법률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였습니다. 만약, 이 법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저를 고소했던 이들은 무고죄를 두려워하여 고소장을 제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명진고 측은 각 사회 주체들이 정당한 목소리를 내고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을 억압하기 위해서 시민들을 고소했습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비판을 목소리를 가로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소송’에 이용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본질입니다.
진실을 이야기함에도 스스로 공익성 여부를 판단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표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억제되고 있습니다. 이것의 결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엄청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임금체불과 폭행을 당하는 동료 시민, 사립학교에서 부당한 사유로 해임된 동료 시민, 성희롱,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동료 시민들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임금체불, 폭행, 성희롱, 성폭력, 부당해고, 그리고 모든 잘못되고 불의한 것들을 마주한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정의로운 발화를 참지 못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죄를 이유로 수사기관에서 조사받고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의를 억압하는 ‘진실유포죄’를 지금 당장 폐지하는 것뿐입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