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의 미국은 격동의 시대를 보내고 있었다. 민권운동이 폭발함에 따라 분노에 찬 청년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마침내 인종분리를 선언한 짐 크로법이 폐지되었고, 연방민권법이 제정되었다. 셀마에서 몽고메리로 이어진 평등주의자들의 행진은 영원히 잊혀질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암살된 마틴 루터킹 목사의 생일은 연방 공휴일이 되었다. 이상주의와 공동체주의로 무장한 히피들이 평등을 부르짖으며 거리를 누비던, 그리울 시절이었다.
그러나, 곧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968년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청년들이 민주당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경찰과 충돌했고, 민주당은 재집권에 실패했다. 0.4% 차이로 간신히 집권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그의 적은 좌익 운동권과 흑인이었다. 그가 선포한 전쟁의 실상은 전국가적 공안정국 형성이었다.
경제도 달라졌다. 전후 베이비 붐과 함께 전성기를 누리던 미국 경제는 1970년대 들어 위기를 맞았다. 오일쇼크가 들이닥쳤고, 1970년대 말엽에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전후 복구를 완료한 유럽 국가들과 일본이 미국과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하면서 무역 수지도 악화되었다. 그렇게 치기 어린 평등주의자들의 시절은 갔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이 집권했다. 그즈음, 미국에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히피에 빚대어 '여피'라고 불렸지만 히피들과는 매우 다른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었다.
여피는 대도시에 거주하는 젊은 전문직들을 뜻했다. 그들은 매우 자유주의적인 사람들이었다. 시장을 극도로 신뢰했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선 안된다고 믿었다. 그들이 볼 때 세상의 본질은 오직 경쟁에 있었다. 세상의 룰에 따라 성공했기에, 나는 강자이며, 고로 같은 룰을 제공받았음에도 패배한 약자들에게 연민을 느낄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가 그들을 지원하는 것은 되려 그들의 생존 본능을 약화시킬 뿐이라고 믿었다.
여피들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함에 있어 거리낌이 없었다. 이는 아무리 부유해도, 평범한 중산층들처럼 도시 외곽의 전원주택에 거주하던 이전 세대의 부유층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이 세계의 룰에 따라 위로 올라왔으니, 구태여 나의 부를 숨기지 않겠다는 자세, 여피들은 마치 전후에도 나치에게 수여받은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숨기지 않고 조국의 법률에 따라 의무를 다했음을 주장하는 전직 나치군 장교들처럼 당당했다. 그렇게 그들은 대도시에 새로운 바람을 형성했다. 평등의 시대가 지나고, 도래한 자유의 시대였다.
1980년대의 한국 역시 격동의 시대를 보냈다. 청년들이 일어섰다. 대학에서 노동현장 구석까지 이어진 청년들의 움직임에 따라 한국은 완전히 새로운 나라가 되었다. 586세대는 마치 히피들처럼, 이상주의와 공동체주의를 마음 안에 품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가 도래하면서 그들에게도 위기가 닥쳤다. 3당 합당으로 권력을 다진 노태우가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전국가적 공안 정국을 형성했다. 뒤이어 집권한 김영삼은 사회운동 세력에게 강력한 제동을 걸었으며, 1990년대 말 한국은 경제위기의 수렁에 빠져 전국가적 구조조정에 나서야 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표현은 아니나, 2021년의 한국에는 MZ세대라고 불리는 새로운 청년들이 있다. 이들의 삶의 자세는 미래에 대한 낙관과는 거리가 멀다. 거리를 누볐던 히피들과 586들의 자유로움과 해방감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이미 바닥을 기고 있는 경제 성장률과 거대한 장벽과도 같은 집값, 완전히 소멸한 계급 이동의 사다리 탓이다. 그 누구도 쉽게 이상주의자가 되거나, 공동체주의자가 될 수 없게 되었다. 돈과 권력을 얻지 못했음에도 이들의 세계관은 여피들과 비슷해 보인다. 우리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세상은 약육강식의 전쟁터이기에 나보다 쉽게 정규직이 된 이들을 용서할 수 없다. 내가 만약 위로 올라간다면 그것은 나의 능력과 탁월함의 소산이기에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할 이유 따위는 없다. 패배한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으며, 인간은 오직 공정한 경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진정한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시대를 맞이하며, 우리는 분명 20년 뒤 빛바랜 786세대를 그리워하게 될 것 임을 확신한다. 낭만의 시대를 달려온 이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