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는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공간이다
한국사회의 입시 제도는 '스, 카, 이, 서, 성, 한, 중, 경, 외, 시'로 불리는 서울지역 명문대학 입학을 목적으로 운영된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해당 경쟁에서 거의 완전히 밀려난 상태에서 중학교를 졸업하는 이들이다. 광주에 있는 13개 특성화고에서 노동인권 수업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 반에 학생 30명이 있으면 그중 7~9명은 학교에 출석하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도 썩 내 수업을 열심히 들어주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수업에 집중해 주지 않는 학생들에게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한 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부끄러워졌다. 그는 나에게 한 반에 학생 30명이 있으면 그중 절반이 생계급여 수급요건(중위소득의 30% 미만)을 충족하는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혹자는 성실히 버스를 타고 이른 출근길에 나서고 있었고, 혹자는 통곡의 벽을 쌓고 생계급여 만으로 삶을 영위했다. 그 틈을 타고 스며든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은 이미 그들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교사들은 학교폭력 위원회에 익숙해졌다. 가난은 인간에게 다양한 상흔을 남긴다. 잘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나가는 이들도 있지만, 처음부터 큰 꿈을 가지지 못하고 많은 걱정을 안고 시작하는 이들도 있다.
이것은 분명한 불평등이다. 부모의 학력, 경제력, 권력을 비롯한 사회적 자원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녀의 삶의 상당 부분을 결정한다. 누군가는 공부를 잘해 시험을 잘 친 이들이 정직하고 공정한 노력을 통해 그 자리에 이르렀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정직한 노력'에도 각자의 환경에 따른 격차가 있음을 냉정히 성찰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일찍 취업하고 싶다"는 이유로 특성화고에 진학하는 이들이 있다. 나름의 판단을 통해 삶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그들이 멋지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배경을 생각해 보면 씁쓸해진다.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취업은 절실한 삶의 문제다. 그래서 특성화고 3학년 학생들을 현장에 보내는 '현장실습' 제도가 있다. 독일의 마이스터(장인) 제도에서 착안하여 현장에서 실습을 통해 좋은 기술자가 될 학생들을 육성하는 것이 이 제도의 목표다. 그러나, 현장실습 제도는 말로만 실습일 뿐, 실제로는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사전 취업'하는 제도로 운영된다. 한국은 독일이 아니며, 따라서 실습을 통해 기술을 배우는 멋진 마이스터 제도는 이 땅에서 재현될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열악한 현장으로 간 학생들은 수많은 사고에 노출되었다. 2011년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주 최대 72시간에 달하는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종사했던 영광실고 김민재는 뇌출혈로 쓰러져 아직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친구들에게 너무 어지럽다는 말을 남겼다. 2017년 1월에는 현장실습생으로 콜센터에서 일한 A씨가 "아빠 콜수 못 채웠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해 11월 제주도 생수공장에 현장실습생으로 취업한 이민호는 5일 만에 홀로 기계를 조작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세 번이나 사고에 노출되었고, 세 번째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진 뒤, 세상을 떠났다.
2016년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 사고로 사망한 김군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으로 그곳에 취업했던 비정규직이었다. 추모벽이 만들어졌고, 다음날이었던 그의 생일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생일 케이크를 가져다 두었다. 어떤 포스트잇에는 "비정규직은 혼자 와서 죽었고, 정규직은 셋이 와서 포스트잇을 뗀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같은 사고가 반복되자, 전교조 직업위원회를 필두로 한 일련의 활동가들이 현장실습 폐지를 요구했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주장이었다. 물론 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늦게 찾아갈 비슷한 현장의 안전은 그 이전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임에도. 그러나 당사자들은 당장 먹고 살 길이 팍팍했다. 1년이라도 빨리 취업해서 몇 백만 원이라도 더 벌어야 했다. 지금의 어두운 현실에서 벗어나 적어도 최소한의 자유를 쟁취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1년간의 안전과 1년 더 빠른 자유가 나름의 세계 속에서 대결을 이어갔다.
교육부가 '학습중심 현장실습'이라는 궤변을 사고에 대한 대책으로 내놓자, 현장실습 폐지를 주장해온 활동가들은 반발했다. 그들은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현장실습 제도를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특성화고 학생들은 현장실습 제도를 폐지하지 말라며 '학습중심 현장실습'을 다른 이유로 반대했다. 개인적으로는, 현장실습 제도의 부실한 운영 실태와 조기 취업적 성격을 생각할 때 폐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이야기와 상황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특성화고 계급 문제를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공정'이다. 최근 한국 사회를 떠돌고 있는 이 두 글자 단어에는, 특성화고에 다니는 이들의 삶이 배제되어 있다. 애초부터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는 고려되지 않는 공론장의 담론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공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며 확신한다. 그들이 말하는 공정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 처음부터 성공의 찬스와 마주칠 수 없었던 이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평등'이 아님을. 고려대학교와 중앙대학교에 대해 어떻게 들어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왜 '특성화고'에 갔는지에 대해 이야기될 때, 진정한 '공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특성화고는 총체적인 계급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