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앙 기고①] 사회복무요원 제도가 당장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
강경화 전 외교부장관이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강 전 장관은 1차 투표를 통과했으나(4표 득표에 그쳤다) 2차 투표에서 단 2표를 받아 낙선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기대했으나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간 정부는 강 전 장관 당선을 위해 고용노동부, 외교부 등이 참여하는 범정부 TF를 구성해 선거를 물심양면 지원해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ILO가 반드시 비준할 것을 권고하는 ILO 핵심협약(Fundamental Conventions) 8개에 대한 비준조차 완료하지 않은 나라다. 현재 해당 협약들을 모두 비준한 국가는 147개국에 이른다. 특히 한국이 아직 비준하지 않은 강제노동에 관한 ILO 105호 협약은 OECD(경제개발협력 기구) 38개 회원국 중 한국과 일본만 비준하지 않았다. 현재 일본은 105호 협약 비준을 위한 입법 절차를 완료한 상황이다. 일본이 협약 비준을 완료하면, 대한민국은 OECD 38개국 중 유일하게 ILO 105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로 남는다.
나는 이번 강 전 장관의 ILO 사무총장 선거 소식을 듣고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었던 2019년 10월을 떠올렸다. 당시 나는 사회복무요원(옛 공익근무요원) 신분으로 광주 북구에 위치한 제31보병사단 훈련소에서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훈련을 함께 받던 동료 훈련병들 상당수는 연약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몸무게가 150kg에 가까운 이가 있었고, 대조적으로 40kg에 가까운 이도 있었다. 특정 장기가 일부만 남아있거나 기능하지 못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각종 기저질환으로 보행, 호흡 등 일상생활에 심대한 지장을 받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신체 멀쩡히 산업기능요원으로 군사훈련을 받으러 온 이들은 “저 친구들에게 4주간의 군사훈련과 강제 복무를 시키는 건 너무 잔인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화생방, 각개전투 등 어려운 훈련에서 열외 되어도 이 청년들은 하나같이 가쁜 숨을 내쉬며 힘겨워했다. 기본적 제식훈련조차 그들에게는 고문이었다. 매일, 의무실 문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대한민국은 그들이 ‘정상’으로 규정한 신체등급 1~3급 청년들에게 현역 복무를 부과한 후, 건강하지 못한 신체를 안고 있던 이들에게 강제노동을 강요했다.
2021년도 병무청 신체검사자 통계에 따르면, 최저 몸무게를 기록한 청년의 몸무게는 26.4kg이었다. 최고 몸무게는 202.9kg이었다. 이것으로 그들을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를 대략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면제가 아닌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고 4주간의 훈련을 포함한 1년 9개월간의 강제노동에 동원됐다.
강제노동 금지 협약(29호)은 국가권력이 시민에게 노동을 강제할 수 없음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ILO는 국가가 시민에게 노동을 강제하는 징용제를 명백한 강제노동으로 본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이 협약을 근거로 일본제국의 강제징용 문제를 비판해왔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6만 명의 청년들을 끌어내 관공서 등에서의 강제노동을 강요하는 대한민국에게는 일본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그간 대한민국은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이유로 ILO의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29호·105호) 비준을 거부해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추진했다. 나는 당시 문재인 정부가 오랫동안 이어진 국가폭력의 역사를 종식시키고, 강제로 끌려온 청년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것으로 기대했다. 헛된 기대였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복무를 ‘강요된 노동’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을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기막힌 논리를 개발해 법률을 고쳤다. 4급 사회복무 판정을 받은 청년들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4급 판정을 받은 청년들에게 군 입대와 사회복무 중 원하는 복무 형태를 고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정부는 선택권을 부여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4급 판정을 받은 청년들에게 현역 입대와 사회복무 중 원하는 복무 형태를 선택할 권리를 주었으니, 이것은 강제가 아닌 개인의 선택입니다”
정부는 실제로 이 논리에 입각해 병역법을 개정했다. 그리곤 ILO 29호 협약을 비준했다. 이제 병무청은 몸무게가 30kg이거나 150kg인 청년, 특정 장기의 대부분을 절제했거나 극심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청년들에게 “현역으로 군대 갈래? 아니면 사회복무 할래?”라는 질문을 던진다. 해당 청년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사회복무하겠다고 답하면 이 비열한 국가폭력의 실행자들은 “네가 선택한 거니까, 이건 강제가 아님”을 명확히 한다.
강경화 전 외교부장관이 ‘감히‘ ILO 사무총장 선거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놀랐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정부는 국가적 성과를 위해 범정부 TF까지 만들어 전직 장관 한 사람의 선거를 도왔다. 잔인하고 무도한 국가폭력을 조금도 개선하지 않고 기만적인 방식으로 협약을 비준한 이들에게, 마지막 양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강경화 전 장관이 받은 2표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 인식에 대한 국제사회의 정확한 평가다.
이번 일은 ‘나중에’를 이유로 언제나 개혁을 미뤄온 문재인 정권의 본질과 일맥상통한다. 그들은 줄곧 진정한 개혁은 외면하고 보여주기식 성과에만 천착해왔다. ILO 핵심협약들이 추구하는 방향을 위해서는 조금도 노력하지 않으면서, ILO 사무총장은 만들고자 했다. 힘겨운 근무지에서 눈물을 흘리며 일상적 국가폭력에 시름하는 청년들을 생각해 볼 때, 참으로 파렴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사회복무요원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여론을 결집해 국민의힘 원희룡 전 윤석열 캠프 정책본부장에게 사회복무요원 제도 폐지를 요구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은 임기는 42일이며,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의석 수는 172석이다. 나는 그가 부디 남은 임기 기간 내에 국가폭력 가해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