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앙 기고③] 광주 명진고,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여기, 정말 특이한 학교가 있다. 지난 2018년 949명이었던 학생 수가 4년 만에 39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인구절벽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이 학교, 명진고등학교는 전국에서 세 번째로 젊은 지자체인 광주 광산구에 위치한다. 명진고에 지원할 수 있는 인근 중학교는 20여 곳에 이른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멀쩡한 학교가 4년 만에 폐교 위기에 처한 것일까?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를 운영해선 안 될 사람이 학교법인 이사장이 됐다. 명진고 최신옥 이사장은 학교를 하나의 사업 모델로 이해한 듯하다. 최씨가 명진고 이사장이 된 직후, 그의 두 딸이 명진고 교사가 되었다. 채용 당시 면접 점수를 매긴 법인 측 모 이사는 50점 만점인 면접전형에서 최씨의 장녀에게 50점 만점을, 차녀에게는 48점을 주었다. 그는 다른 지원자들에게 28~36점을 주는 방식으로 당락을 결정지었다.
최씨는 사실 그의 차녀 김지수(현 명진고 교감)를 ‘의과대학’에 보내고 싶어 했다. 그러던 중 모 잡지사 대표에게 “돈을 주면 딸의 의대 편입과 졸업 후 교수 채용을 보장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잡지사 대표는 모 대학 대학원 관계자까지 동원해 최씨를 속였다. 이 과정에서 최씨는 잡지사 대표 등 3명에게 7차례에 걸쳐 ’44억 원’을 건넸다. 그러나, 해당 의과대학 합격자 명단에는 김지수씨의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최신옥은 잡지사 대표 등 3명에게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최씨가 건넨 돈은 불법 행위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반환 청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최씨는 무엇이든 ‘돈’으로 봤다. 지난 2017년 9월, 최씨가 명진고 교사채용 과정에서 1차 시험에 합격한 A를 강남의 한 일식집으로 불렀다. A는 그 자리에서 뜻밖에 제안을 받았다. “5천만 원을 주면 정규직 교사로 채용시켜 주겠다”는, 불법적인 제안이었다. 최씨는 교사직조차 거래의 대상으로 봤다. 이후 최씨의 제안을 거절한 A는 당당하게 시험에 응했다. A는 면접 직후 명진고 교사로 채용됐다.
이후 최신옥은 이 사건 금품 요구 사실이 발각되어 배임수재 미수죄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A가 수사기관에 공익제보를 했다. 이 일로 A는 2021년 참여연대로부터 올해의 공익제보자상을 받았다. 최신옥의 수형생활이 시작된 2019년부터 학교 측 보복이 시작됐다. 과도한 업무 몰아주기를 비롯한 노골적인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 학교 측은 2020년 5월, A에게 ‘해임’ 처분을 통보했다. 사유로는, A가 발송한 가정통신문에 오류가 있어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 제시됐다. A는 재단 비리를 검찰에서 진술한 일에 대한 보복이라며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해임 취소를 요청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학생들은 분노와 슬픔에 빠졌다. 그 누구보다 학생들을 생각해주던 A 교사였다. 지난 2018년 명진고 스쿨미투 사건을 조사한 광주시교육청은 명진고 측에 스쿨미투 연루 교사 7명에 대한 ‘해임’ 징계를 요청했다. 그러나 사립학교법에 따라 학교 교사 징계권은 재단 측에 있었다. 재단은 해임을 요구받은 교사 7명 중 6명의 징계 수위를 ‘견책’으로 낮췄다. 그들은 스쿨미투 연루 교사들은 철저하게 보호하고, 공익제보 교사는 집요하게 괴롭힌 후 일자리까지 빼앗았다. 분노한 학생들은 행동에 나섰다. 학생들이 주도한 서명운동에는 학교 재학생 376명 등 총 2,040명이 참여했다.
그런데 학교 측이 믿기지 않는 행동을 취했다. A교사 해임 반대 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을 명예훼손죄를 이유로 수사기관에 고소한 것이다. 학교가 학생을 고소한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나는 사건 당시 학생들과 함께 고소당해 수사를 받았다. 그런데, 나를 소환한 광주 광산경찰서 관계자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경찰 관계자조차, “학교가 지들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을 고소했네요. 세상에, 이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얼마 후, 이 소식을 접한 국회 교육위원회가 명진고 김인전 이사장을 국정감사에 소환했다. 김씨는 최신옥 전 이사장의 남편이다. 최씨가 꺼내든 해결책은 역시 돈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윤영덕 의원과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에게 연락해 “후원금을 내겠다”고 제안했다. 두 의원은 해당 제안을 거절했고, 이 사실은 언론에 보도됐다.
그해 말,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학교 측의 A교사 해임에 대해 취소 처분을 내렸다. A는 복직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복직한 A교사를 철저히 배제했다. 학교 측은 A교사를 최 전 이사장의 차녀 김지수씨 앞자리에 앉게 했으며, 교사들이 모여있는 채팅방 초대도 차일피일 미뤘다. 이후 학교 측은 A교사를 아예 명진고가 아닌 다른 학교 2곳을 돌며 순회 근무하도록 했다.
그 사이 학교 측은 최 전 이사장의 차녀인 김지수 교사를 교감으로 임명했다. 김씨는 A교사 해임 반대 운동을 주도한 학생을 ‘교사노조 내통자’로 지칭했던 인물이다. 교감은커녕 교사 자격도 없는 자이다.
지난 2020년부터 광주 명진고등학교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지역 학부모와 학생을 비롯한 광주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2021년 명진고 측이 신입생 226명을 모집했다. 그러나, 120명만 채울 수 있었다. 106명이 미달된 것이다. 인구절벽 때문이 아닌 학생들의 자발적인 ‘지원 거부’ 때문이었다. 2022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지난해보다 더 많은 285명을 모집했음에도 단 51명만 모집됐다. 그 사이 명진고 학생 수는 949명에서 390여 명으로 감소했다.
나는 이 소식을 접하고 사립학교의 폐단에 저항해온 교육운동에 새로운 지평이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사립학교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 왔다. 그 어떤 비판이 제기되어도, 법인 측이 가진 권한에는 흔들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전횡은 사립학교법이 보장했다.
그러나 명진고 사건은 특이점을 노출한 사건이다. 제 아무리 학교법인의 권력이 공고해도, 학생들이 학교 지원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저항하면 그들에게 거대한 타격을 줄 수 있음이 확인됐다. 광주시민들이 승리했다. 나는 이번 일이 이 땅 모든 사립학교들을 일깨우는 사립학교 민주화의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