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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Jun 10. 2023

광주지방경찰청에 마약 관련 제보를 했다

마약문제, 엄벌·전쟁 대신 치료가 필요하다

 얼마 전, 광주지방경찰청 범죄첩보팀에 마약 관련 제보를 하나 했다. 나 역시 어떤 분에게 제보받은 사안인데, 전남대 정문에 위치한 어느 건물에 숨겨진 공간이 있다. 거기에 비닐에 쌓인, 최소 60kg 가량 돼 보이는 모 약품이 무더기로 감춰져 있었다. 이 약품은 꽤 오래전에 절판되었는데, 이 약에는 필로폰을 제조할 수 있는 '염산슈도에페드린'이 포함돼 있었다.


 에페드린은 과거 감기약에 흔히 포함되었던 성분이다. 그러나 이 같은 약품을 모아 필로폰을 만드는 사례가 빈번하자, 정부는 관련 약품을 모두 금지했다. 앞서 언급한 약품 역시 10년도 더 전에 절판된 약품이었다.



 수사관은 이 약품은 향정신성의약품이자 전문의약품이라며, 이 사건을 꽤나 심각한 사안으로 보고 광주경찰청 본청 수사관들을 현장에 보냈다. 이후 밝혀낼 건 다 밝혀낸 상황인데, 조사 결과를 알려줄지는 모르겠다. 언론에서 먼저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심증으로는 필로폰 제조를 위해 확보해 둔 원단을 사람들의 통행이 없는 곳에 숨겨둔 것 같다. 하필 그 약물이, 그 은밀한 공간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이 글을 작성한 직후 뉴스1 모 기자님이 연락이 주셔서 관련 정보를 제공해 드렸다. 취재 및 수사 결과 범죄 혐의점은 없었고, 전문 약품 방치는 문제이긴 했기 때문에 연합뉴스, 뉴스1 등에서 기사를 낸 상황이다).


 최근 광주경찰청은 마약범죄 합동단속추진단을 결성해 마약범죄 일망타진에 나섰다. 이후 광주경찰청은 지난 5월 11일까지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57명을 특정해 검찰에 송치했으며, 이중 15명은 구속·송치됐다. 이들은 지금쯤 광주교도소 미결사동에서 기소와 재판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범죄의 일반예방 및 사회 보호의 견지에서 마약을 제조하고 유통하는 일에 연루된 모든 마약사범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 사회의 질서와 안녕, 평범한 시민들의 평온에 심대한 타격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마약을 구매해 투약한 단순 마약사범에 대해서는 엄벌주의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독이란 인간이 스스로 극복하고 이겨낼 수 없기 때문에 중독이다. 뇌의 도파민 작용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인간 움직임을 도출해 낸다. 마약중독과 무척이나 유사한 도박중독의 경우 제 아무리 눈물을 흘리며 결심에 결심을 거듭해도 '재발'이라는 무서운 복병이 나타나는데, 마약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중독에는 인간의 아픔이 담겨있다. 가난과 폭력이 스며들어 있다. 불행하기 때문에 중독에 빠지고, 무언가에 중독된 인간은 필연적으로 불행해진다. 어린 시절 겪은 저항할 수 없었던 폭력의 경험이나 각종 트라우마는 중독의 좋은 자양분이 된다. 최근 마약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기 위해 각종 영상을 보고 글을 읽었다. 거기에는 나쁜 사람들이 아닌, 불쌍한 사람들이 있었다. 삶이 무너져,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오늘(5.29) 페이스북에서 "마약 산업이 돌아가는 구조는 끊임없는 착취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본인 외에는 피해자가 없는 범죄'라는 식으로 윤리적 책임을 지나치게 감경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접했다. 그 분이 주장한 재활과 건강한 사회복귀 등에 대한 견해에는 무척 공감이 갔지만, 앞서 언급한 주장에 대해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마약사범들은 자신이 마주하는 마약이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알 길이 없다. 거대한 범죄 조직이 움직이고 있음을 추정할 수도 있겠으나, 집에서 기른 양귀비를 유통한 이를 통해 마약을 얻는 것 역시 충분히 가능하고 사례도 꽤 있다. 마약사범들이 윤리적 소비를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판 가능하다면, 윤리적 마약 생산, 유통, 소비에 대한 비판이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형사사법제도의 영역에서는 마약의 제조, 유통 과정의 죄책을 단순 투약자에게 묻는 것은 옳지도 않을 뿐더러 위험하다. 유아인씨의 죄책은 마약을 투약했음에 있고, 그에 대한 처벌은 정확히 이를 근거로 이뤄져야 한다.


 마약 산업이 돌아가는 구조는 분명, 끊임없는 착취로 이뤄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마약투약 사범들은 명백히 그 착취 구조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생산, 유통 과정에서 중독에 빠진 이들만이 그나마 예외일 것이다. 마약을 접하기 전부터 마약을 하고 싶다는 범의를 참지 못하다가 마약중독자가 되기를 결의하고 범행에 나선 마약중독자는 단언컨대 한 없이 0명에 수렴할 것이다. 그들 또한 성장 과정에서부터 각종 계기를 만났을 것이며 어울리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라이트한 마약을 접하는 등의 일을 겪었을 것이다.


 결국, 생산 과정의 비윤리성을 이유로 단순 투약자를 비판하는 논리는 마약투약자에게 윤리적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그 이유를 쉽사리 설명하기 어려워 동원한 궁색한 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마약을 구매해 투약하기만 한 일반 사범에 대한 실형 선고에 반대한다. 그것은, 결국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으로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극구 반대한다. 마약 투약으로 구속돼 확정 판결을 받은 이들은 교도소에서 '향방'이라 불리는 곳에 수감된다. 보통, 5~9명이 한 방을 쓴다. 그 방에는 일반 경제사범도 있지만 대부분이 향(마약)으로 감옥에 온 이들이다. 이들은 반성하기 보다는 몇 년간의 짧은 감옥 생활동안 자신들이 잡힌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잡히지 않을지 궁리한다. 특히, 같은 방에 있는 다른 마약사범들의 이야기를 참고해 마약을 구할 다른 길을 배우기도 한다. 교도소는 단어 그대로 죄를 지은 이들을 교정, 교화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곳이지만 그들에게 교도소는 그들이 쓰는 은어처럼 범죄 수법을 배우는 '학교'에 불과하다.


 게다가, 마약투약자들의 변명은 아예 납득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들은 나름의 자기 논리를 가질 수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마약투약이 타인에게 주는 피해는 그다지 가시적이지 않다. 때문에 향방 수감자들은 "피해준 일도 없는데 실형을 받았다"며 억울해 하고 이 같은 생각에서 비롯된 반발 심리로 출소 후 즉시 재범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같은 범죄로 들어온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생각은 더욱 강화된다.


 지난해 국내 마약사범은 1만 8395명으로 마약 통계가 시작된 1989년 이후 3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현재 대한민국의 감옥에는 5만 3000여 명이 수감돼 있다. 이는 이미 수감 정원을 20% 가량 초과한 수치다. 마약사범은 향후 몇 년간 극도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한동훈 장관은 대한민국은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는 마약을 호기심으로 투약만 해도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걸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 투약자에 대한 처벌 역시 강력하게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을 가두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교도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체 사회적 관점에서 교도소를 더 짓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들은 뉴스를 볼 때에는 엄벌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내 동네에 교도소가 신축되는 일에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다. 서울은 물론이고, 전국 어디에서도 교도소 신축은 무척이나 어렵다. 법무부가 화성에 화성여자교도소를 짓겠다고 하자 주민들은 분노했다. '끝까지 반대'를 외쳤다. 법무부가 거창에 교도소를 짓겠다고 하자 거창지역 학부모와 초등생이 등교 거부를 결행하고 국회로 올라와 상경투쟁을 진행했다. 평소에는 엄벌주의를 외치다가도 우리 동네에 교도소를 짓겠다고 하면 분노하는 게 우리 국민이니, 교도소를 늘리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결국 한국의 엄벌주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부동산 문제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제1항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고로 인간의 최소한을 보장하지 않고 사람을 가둬두는 건 잘못됐다. 구속된 이들의 인권 상황은 우리 모두의 인권과 무척이나 밀접한 연관을 갖기 때문이다.


 게다가 접견 등 과정에서 차별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아예 섬 같은 곳에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마약투약자를 '엄벌'로 다스려 호기심으로조차 감히 투약을 시도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한 장관의 주장은 실질적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우리는 사람들을 가둬두는 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선 안 된다. 한동훈 법무부가 엄청나게 많은 마약사범을 체포한다고 해도, 처벌 강화에는 한계가 있다. 이건 부동산 문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판사들도 이를 잘 알고 있으며, 애당초 엄벌은 결코 문제 해결의 능사가 될 수 없다.


 음주운전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윤창호법'에 대한 일부 위헌을 결정하며, 헌법재판관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는 엄벌 만이 능사가 아니며,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는 주문이었다.


 "반복적인 음주운전에 대한 강한 처벌이 일반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는 면은 있다. 그러나 형사정책적인 면에서 볼 때, 중한 형벌이 일시적으로 범죄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으나 이는 일시적이다. 결국에는 중벌에 대해 면역이 생기고 무감각하게 되어 범죄 예방과 법질서 수호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반복적인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음주 치료와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혈중알코올농도가 일정 수치 이상이 되면 시동 자체가 걸리지 않도록 하는 음주운전 방지장치를 차량에 부착하게 하는 등의 방안도 형벌 강화에 대한 대안으로 충분히 고려할 수 있고, 형벌의 강화에 앞서 일차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수단이다."


 마약투약범에 대해서도 이 같은 견지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무척이나 높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훨씬 증가할 마약투약자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투약자들의 실형 선고 비율을 극도로 늘리는 건 감옥의 정원 문제 때문에라도 불가능하고, 거기 들어가도 되레 재범율만 높아진다. 그렇기에 정부는 유통, 생산세력에 대해서는 엄중히 법을 집행하면서도 단순 투약자에 대해서는 치료와 재활에 집중해야 한다.


 최근 MBC 시사직격이 이 문제와 관련해 중독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닌 불행한 사람들로서 제 스스로도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재활시설에 연락하자 당장 입원할 수 있는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완전히 잘못됐다.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이번 유아인씨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중독에 빠진 사람이며, 대중에게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는 삶을 살며 받았을 스트레스 등 참작할 만한 양형의 조건이 상당한 사람이다. 또한, 중독에 빠진 아픈 사람, 치료받아야 할 사람이기도 하다. 단순히 강력범 낙인을 찍는데 그치지 않고 강력한 재활 치료를 실시하고 주기적으로 관리·감독해야 한다. 그에게 강력범 낙인을 찍는데 집중하는 언론 보도는, 중독자들에게 더 꽁꽁 숨어야겠다는 마음을 줘, 되레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어렵게 한다.


 우리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가둬두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 행성에서 중국을 포함한 그 어떤 국가보다 더 많은 시민을 감옥에 가둔 나라는 미국이다. 닉슨 대통령이 시작한 엄벌을 클린턴 대통령이 받아 21세기로 옮겨 왔지만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악화됐다. 마약투약자에 대한 낙인은 정확히 같은 결과를 초래할 뿐이며 한국의 현실에는 미국처럼 그들을 가둬둘 공간조차 없다. 이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한국사회는 유아인씨 같은 개인에 대한 잔인한 비난을 멈춰야 한다. 마약투약자에 대한 대대적인 재활 치료에 돌입해야 한다. 형사적 제재를 최소화하고, 특별한 페널티 없이 치료를 받는 조건으로 이들에 대한 보호에 나서야 한다.


 나는 이 글을 지난 5월 29일에 썼다. 직후부터 한겨레에서 마약 투약자에게는 엄벌이 아닌 치료가 필요하다는 논조의 기사를 냈다. 특히 마약중독자 출신 치료센터 활동가를 인터뷰해 기사를 냈는데,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차였기 때문에 반가웠고 내용도 알찼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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