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앙 기고⑩] 류호정 정의당 의원 강연은 징계 사유가 될 수 없다
지난 3월 15일, 전남대학교 1학생회관 3층 소강당에서 3.8여성의 날 기념 류호정 정의당 의원 초청 강연회가 열렸다. 이 행사는 전남대 페미니즘 동아리 F;ACT(Feminist Action/아래 팩트)와 청년정의당 광주광역시당이 공동주관했다.
그런데 행사 직후부터 전남대 총동아리연합회 내부에서 페미니즘 동아리 팩트에 대한 징계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후 전남대 중앙동아리 20곳이 연서를 작성해 팩트에 대한 징계안을 발의했다. 이는 지난 6월 1일 열린 전남대 총동연 전체동아리대표자회의(전동대회)에 회부됐다. 전남대 전동대회는 전남대 총동연의 최고의결기구다.
이번 징계안의 핵심은 팩트가 ‘전남대 교육시설물 사용 규정상 학술활동의 범위를 벗어나는 정치행사’를 했다는 데 있었다.
나는 이번 일에 대한 소식을 듣고, 지난 2019년의 일을 떠올렸다. 지난 2019년 당시 전남대는 광주인권회의가 추진한 홍콩 활동가 초청 강연회에 대해 ‘대관 취소’ 처분을 내렸다. 당시 전남대 측은 주 광주 중국 총영사 측 항의를 받고 이같이 결정했다. 이는 지난 역사를 생각할 때,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직후 광주인권회의는 전남대 측 ‘대관 취소’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교육시설 이용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국가인권위법에 따르면 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교육시설 이용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 배제, 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건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라며 “전남대 측은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교육시설 이용 차별을 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전남대 측에게 “향후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교육시설 대관을 불허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번 전남대 전동대회에 회부된 징계안을 볼 때, 이 같은 권고는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특정 정당 소속 정치인을 불러 강연회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특정 동아리의 행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고 징계가 추진된다면, 앞으로 그 누구도 “전남대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교육시설 이용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6월 1일, 전남대 전동대회에서 팩트 징계안이 논의됐다. 팩트 측은 이번 징계안에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남대 총동연 회칙에 따르면 전동대회에 특정 동아리에 대한 징계안이 회부되기 위해서는 총동연 운영위 의결을 거쳐야 한다. 팩트 측은 중앙동아리 20곳이 연서로 발의한 징계안은 총동연 운영위 의결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전동대회에 회부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정 안건이 절차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의장은 해당 안건에 대해 향후 요건을 갖춰 재발의할 것을 요청해야 한다. 그러나 전남대 전동대회 의장은 전동대회를 잠시 정회한 후 임시 운영위를 개최해 징계안 회부 절차를 충족시키자고 했다. 의장은 팩트 측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직후 전동대회는 정회됐고 전동대회 쉬는 시간에 열린 임시 운영위에서 팩트 징계안을 의결해 전동대회에 상정했다.
팩트 징계안에는 제적 대의원 70여 명 중 61명이 찬성했다. 이후 징계 수위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제적 대의원 74명이 징계 수위에 대한 표결을 진행한 결과, 제명(27표), 강등(31표), 경고(12표), 주의(1표), 기권(2표), 무효(1표)로써, 팩트에 대한 강등 중징계가 결정됐다. 강등된 동아리는 3학기 동안 가동아리로써 활동한 후 전동대회 의결을 거쳐야만 중앙동아리로 복귀할 수 있다. 팩트 징계안에 대한 총동연 내부 여론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사실상의 제명 징계라 할 것이다.
전남대 전동대회에 상정된 이번 징계안의 구체적 내용으로는 우선 “팩트 측은 강연장 대관 과정에서 제출한 활동 계획서에 이 행사를 청년정의당 광주시당과 공동주관한다는 핵심적인 내용을 미기재해 총동연과 대학본부의 사무절차를 기만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팩트 측은 행사 진행에 앞선 대관 과정에서 제출한 활동 계획서에 공동주관 단위를 누락하는 내용의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이는 강연 공동주관 단위를 의도적으로 은폐하기 위한 행위는 아니었다. 단순 실수였다. 팩트 측이 제작한 현수막과 포스터, 학교 측 승인을 받은 자료 등에는 공동주관 단위가 명시됐으며, 행사 공동주관 사실은 행사 진행에 앞서 총동아리연합회장에게 구두로도 전달됐다. 결론적으로 팩트 측 잘못은 여러 문서 중 하나에 공동주관 단위를 빠뜨린 것에 불과했다. 이 같은 단순 실수를 ‘강등’ 중징계의 근거로 삼은 것은 징계 양정의 적정성에 비추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징계안에는 또한 “(해당 행사에서)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이 당원 모집 활동을 한 점으로 보아 해당 행사는 학술활동의 범위를 벗어나는 정치행사임에 틀림이 없으며, 팩트 회장은 중앙동아리 회장의 권한과 지위를 남용하여 학칙에서 금지하고 있는 외부 정치단체의 정치행사 개최를 주선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전남대 총동연은 이 두 가지 사유를 근거로 팩트 측 행사는 전남대 교육시설물 사용 규정상 학술활동의 범위를 벗어나는 정치행사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원 가입에 대한 류호정 의원의 언급은 자발적인 것이었으며, 이는 결코 팩트 측 책임으로 귀속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초청한 강사의 모든 발언에 대해 책임질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지난 2012년 당시 전남대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총학생회 선거를 앞두고 한 재학생이 특정 선본에 대한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다. 그는 선본 구성원이 아니었으며, 그의 행위에 해당 선본이 개입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남대 선관위는 이 사안에 대한 징계를 추진했다. 그 결과 해당 선본은 징계 누적을 이유로 후보자 자격을 상실했다.
이후 이 사건은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법원은 “이 같은 징계는 헌법상 자기책임의 원리에 반하는 결정이기 때문에 무효”라며 전남대 선관위의 후보자 자격 박탈 결정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대학 내 자치기구를 비롯한 각종 자치단체에서 보편적 상식에 위배되는 결정을 내린 경우, 법원은 일관적 태도로 이를 취소해 왔다. 판결문에는 늘 비슷한 문장이 담겼다. “자치적인 조직의 결정이라 하더라도 헌법이 정하는 기본적 사회질서 또는 사회상규에 위반되는 행위는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팩트에 대한 강등 중징계가 결정된 지난 1일,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전남대 사회과학대학 별관에서 ‘대한민국의 7대 시대정신’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팩트 징계의 근거가 된 ‘전남대 교육시설물 사용 규정’에 따르면, 전남대 총장은 학술활동의 범위를 벗어나는 정치행사를 위한 교육시설물 대관에 대해서는 사용허가를 취소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안철수 의원의 강연은 류호정 의원의 강연과 달리 학술활동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행사였을까? 나는 우리 중 그 누구도 전남대 규정에 따른 ‘정치적이지 않은 학술활동’의 정확한 범위를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의 강연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정치적 자율권이 보장돼 있는 대학에서는 모든 정치인의 출입을 금지할 요량이 아닌 한, 모든 정치행사에 대한 보편적 허용이 이뤄져야 한다. 고로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담긴 전남대 교육시설물 사용 규정은 위헌적인 발상의 산물이다. 전남대는 국립대학이며, 국립대학의 정치행사 금지는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 징계 결정에서 전남대 총동연은 헌법상 자기책임의 원리를 위배해 팩트 측에게 책임질 수 없는 책임을 지게 했고 그 외의 징계 사유였던 절차상 문제는 도저히 중징계를 줄 수 없는 사안이었다. 이번 징계는 징계양정의 적정성과 합리성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납득될 수 없는 징계였다. 설령 징계를 줄 수 있는 사유가 있었다고 해도, 징계의 근거가 된 규정 자체가 잘못된 상황이다. 전남대 페미니즘 동아리 팩트에 대한 강등 중징계는 철회돼야 한다.
* 저는 오마이뉴스, 레디앙 등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광주지역 활동가 김동규입니다. 이 글은 레디앙에도 기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