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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May 23. 2023

'강도치사범' 신창원에 대한 무기징역은 과연 정당했나?

 소위 '신창원 사건'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지난 3월 30일에 부산고등법원에서 확정된 강도살인 사건 판결문을 읽어 봤다. 신창원 사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계기는 당연히 최근 보도된 신씨의 두 번째 자살시도 소식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신창원씨로 인해 비롯됐던 '신드롬'에는 별 관심 없다.


 앞서 언급한 강도살인 사건(부산고등법원 2022노545) 피고인은 피해자의 집에 침입한 후 부엌에서 흉기를 찾아 이를 휴대한 상태에서 절도 행각을 벌였다. 직후 피해자에게 발각되자, 피해자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피고인은 청소년 시절 강도상해죄로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바 있고, 특수절도 및 야간건조물침입절도로 실형을 포함한 다수의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했다. 그러나, 부산고법은 1심 재판부가 선고한 무기징역형을 파기하고, 피고인을 징역 35년에 처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1심 재판부가 정한 형량은 재량의 합리적 범위를 일탈하였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부산고법은 1심 재판부의 무기징역형 선고가 재량의 범위를 일탈했다고 봤다.


 부산고법은 피고인에 대한 제1심을 파기하고, 피고인을 징역 35년에 처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무기징역형은 수형자를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켜 그의 자유를 박탈하는 종신자유형이므로 유기징역형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는 사형 다음의 중한 형이다. 따라서 무기징역형을 선고함에 있어서 범인의 나이, 직업과 경력, 성행, 지능, 교육 정도, 성장 과정, 가족관계, 전과의 유무,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사전계획의 유무, 준비의 정도, 수단과 방법, 잔인하고 포악한 정도, 결과의 중대성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모든 사항을 충분히 심리하여야 하고, 그러한 심리를 거쳐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키는 무기징역형의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히 인정되어야 한다.


 이 사건에 돌아와 앞서 언급한 각 양형 조건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여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는 단정하기 어렵다."


 신창원씨는 지난 1989년 강도치사죄의 공동정범이 됐다. 신씨는 공범들과 함께 '강도범죄(폭력과 협박을 동반한 절도)'를 계획했다. 즉, 신창원에게는 강도죄의 고의가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 강도 행각을 벌이던 중, 공범 중 한 사람이 의도치 않게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법정형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인 강도살인죄는 고의범에게만 적용된다. 그러나, 강도치사죄는 강도죄의 고의만 있어도 적용될 수 있다. 강도치사죄는 결과적 가중범이기 때문에 살인의 고의를 요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 사건 강도치사죄를 저지른 신씨 일당은 피해자의 죽음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해도, 강도죄의 고의를 가지고 범행의 실행 단계에서 본질적인 기능을 분담한 공동정범으로서 강도치사죄로 처벌받았다. 사건 당시 망을 봤다는 이유로 강도치사죄를 적용받는 건, 솔직히 말해 인간으로서 억울함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법리적으로 강도치사죄가 적용되더라도, 무기징역형까지 받을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사건이었다면 강도치사죄가 성립하긴 해도 무기징역형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공동정범 개념은 A씨와 B씨가 공모해 C씨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상황에서, 성폭행은 B씨만 저지른 상황을 생각해 보면 된다. 이 경우, B씨는 물론, 성폭행에는 가담하지 않은 A씨에게도 특수강간죄가 적용된다. 그러나, A씨의 경우와 달리 강도 공모 후 공범이 전혀 예기치 않았던 치사의 범죄를 저질러 강도치사죄를 적용받은 신씨의 사례는 억울할 수 있는 일이다.


 당시 강도죄에 대한 국민적 감정은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첫 사형수는 강도살인범이었다. 당시는 시대상과 맞물려 강도 범죄가 만연하던 시절이었고 그만큼 엄벌에 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씨는 청소년 시절에도 동종 범죄를 저지른 바 있었고, 성인이 된 후에도 같은 전과가 있었다. 신씨의 범행은 형사처벌을 받았음에도 교화되지 않고 같은 범행을 지속하는 방법으로 형사사법제도를 경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라 볼 수 있다. 게다가 신씨는 사건 직후 다른 공범들과 달리, 도주에 성공해 약 반년간 검거되지 않았다. 이 역시 재판부 입장에서는 신씨의 죄질을 무척이나 나쁘게 볼 수밖에 없다. 피고인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해 지는 것이다. 결국, 피해자에 대한 치사에는 가담하지 않았음에도(성립은 하지만) 재판부는 신씨의 재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강도치사죄의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재판부는 중요한 양형 조건들을 간과했다. 그것은 피고인 신창원의 연령, 직업과 경력, 성행, 지능, 교육정도, 성장과정을 비롯한 그의 환경이었다. 신씨는 어린 시절 간암으로 어머니를 잃고, 계모와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초등학교 교사는 신씨에게 "XX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때의 일을 언급하며 신씨는 "그 순간 마음 속에 악마가 생겼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신씨는 성장 과정에서 사회적 유대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었고, 가난과 폭력에서 비롯된 나쁜 마음으로 절도 범죄를 저지르게 됐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신씨를 경찰서에 끌고가 소년원에 넣어달라고 사정했다. 학교에도 적응하지 못했던 신씨는 중학교를 진학 3개월 만에 그만뒀다. "사회적 유대관계가 비교적 분명한 점"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양형 조건에 해당한다.


 얼마 전, 만취 상태에서 여러 차례 음주운전을 한 20대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무척 짧은 기간내에 여러 차례 음주운전을 하다가 검거됐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람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피고인은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태어난 직후부터 보육원에서 자랐고 중학생 무렵 보육원을 도망친 이후 보호 시설 등을 전전하며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성인이 된 피고인은 준법의식이 미약하고 특히 교통 관련 법규 위반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것으로 보이지만,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보살펴 줄 가족 등이 없다는 점에서 비난의 화살을 피고인에게만 돌리는 것도 온당치 않다.


 이에 선처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지금뿐이라고 생각되며 아직 개선과 교화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


 신씨는 받을 수 없던 문장이자, 선처였다.


 지난 1977년, 한 강도살인범에 대한 형량을 두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이 열렸다. 전원합의체는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을 때 열린다. 이때 대법관 네 사람이 강도살인죄로 기소된 20살 청년에 대한 '사형' 선고는 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들은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해 교정과 교화를 다 해보자고 주장했다.


 당시 대법원판사 민문기, 임항준, 김윤행, 이일규의 이 사건 형량에 관한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다.


 "이 사건 범죄사실에 있어서의 범행의 횟수나 방법 그리고 그 결과 등에 비추어 피고인에게 어떤 동정을 베풀 생각은 없다. 다만 기록에 의하여 나타난 바에 의하면 피고인은 1956.5.30생으로 겨우 성년에 달한 자인데 본건 범행은 모두 그가 성년에 달하기 이전에 저질러졌고 또 피고인은 어려서 가족들과 헤어져 고아원 등을 전전하면서 떠돌아 다녔고 그 학력 또한 국민학교 4학년을 중퇴한 정도로서 이 사건 범행은 그 지려가 천박했고 국가와 사회나 가정으로부터 제대로의 교육과 선도를 받지 못했던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짐작할 수가 있고 피고인이 현재 전비를 뉘우치고 깊이 회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점이라든지 우리가 지향하는 형벌의 목적이 결코 응보만에 있는 것이 아님을 감안할 때 피고인을 극형에 처하여 아주 도태해 버림은 너무 가혹한 것으로 인정되고 피고인을 무기징역형에 처하여 교정과 교화를 다하여 봄이 마땅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점에서 다수의견과 견해를 달리하는 바이다."


 나는 엄벌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1970년대 당시 이 나라의 대법관들이 낸 이 짧은 반대의견만큼 완벽한 논리를 여태껏 발견하지 못했다.


 강도치사죄로 무기수가 된 신창원씨는 교도소를 전전했다. 한국인들은 징역 5년이나 10년이 나와도 너무 약하다며 화를 내곤 하지만, 장기징역형은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무척이나 끔찍한 형벌이다. 무기징역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7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은, 15분에 한 번씩 교도관들이 상태를 확인한다. 소 안에서 자살 우려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주간주임들과 야간주임들이 15분에 한 번씩 상태를 살핀다. 새벽 3시 15분에도, 4시 30분에도 발소리가 들리고 감시자가 등장한다. 당시에는 없었겠지만, 지금은 CCTV 감시도 받는다. 용변을 보는 상황 역시 녹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중요 부위는 자동으로 모자이크 되기 때문에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교도소는 그야말로 인간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한 곳이다. 고 노회찬 의원의 퍼포먼스처럼 신문지 2장 반 정도의 공간에서 계속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자유를 누리는 우리들에게 방문을 열고 바깥 바람을 쐬러 가는 건 자유이지만, 거기서는 방문을 여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 같은 나날들이 하루 이틀을 넘어, 5년, 12년, 25년간 반복된다. 이 때문에, 무기수들은 보통 9년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자아를 잃고 정신을 못차리는 상태가 된다.


 교도관들의 이 같은 엄중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무기수 8명이 자살했다. 강력범들에게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오는 날이 있다. 내가 그날 그 장소(범행 현장)만 안 갔다면, 그날 그 일만 안 했다면 하고 후회감에 빠진다. 이 후회가 몇 년이고 몇 십년이고 반복된다. 그렇게 매일매일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반복되며, 소위 인생의 전성기로 여겨지는 시기를 그곳에서 흘려 보내고 늙게 된다. 미래에 대한 희망 따윈 찾아볼 수 없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 복역한 무기수는 40년째 감옥에 있다.


 신창원은 1989년에 입소해 중간에 탈옥했던 2년가량을 제외한 인생의 모든 날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그는 탈옥한 상태에서도 결코 사람을 다치게 하지는 않음을 신조로 내세웠다. 경찰은 탈옥 후 검거된 신창원이 특수강도강간 범죄를 저질렀다고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는 신빙성 없는 주장이었으므로 법원에 의해 무죄 선고가 났다. 결국 신창원은 강도치사의 공동정범이었을 뿐, 그 누구도 죽이지 않았고 성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단순 강도였음에도 그 어떤 강도도 받지 않은 벌을 받았다.


 현재 대한민국은 모범 수형자에 대한 가석방을 무척이나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OECD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아도 너무 낮은 수준이다. 그 사이 한국의 교도소는 적정 수용 인원을 한참 넘긴 상황이 됐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형제를 폐지한 후, 모든 사형수를 무기수로 감형하고 이로써 도출되는 무기수 1400여 명 중 재범의 우려가 없는 무기수들은 가석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험한 이들에 대해서는 가석방을 지속적으로 불허하면 된다. 무기수의 경우 가석방되어도 10년간 전자발찌를 부착받으며, 법무부에서 재범의 우려가 없는 자들로만 엄선할 게 뻔하다.


 신창원씨는 탈옥 과정에서도 자신이 위험한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길었던 수형생활에 비해 그가 사람에게 직접적 피해를 입힌 건 강도, 절도 등에 국한됐다. 그가 도주죄로 받은 징역 22년 6월형을 사면해 주고, 무기수로서 가석방해 주었으면 한다. 이렇게 되면 신씨는 10년간 전자발찌를 차고 법무부의 감시를 받으며 산다. 이렇게 해도 그는 이미 40년 넘게 영어의 몸으로 산 게 된다. 그가 받은 처벌의 대부분은 그의 '나쁨'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감히' 대한민국의 형사사법제도를 기만했음에서 비롯됐다. 대한민국 교정행정의 권위와 엄중함을 지키기 위해, 그를 엄벌함은 부득이 했으나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다. 그가 붙잡히고도 이미 24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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