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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부림 사건', 공포와 증오 아닌 관용 필요하다

<얼룩소> 작성 글 아카이브③

by 김동규 Jan 07. 2025
출처 : UNSPLASH출처 : UNSPLASH


대한민국의 대표적 사형 폐지론자인 김형태 변호사는 지난 2012년 <한겨레>에 쓴 칼럼에서 지난 2011년 발생한 '노르웨이 연쇄 테러 사건'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해 노르웨이에서 브레이비크라는 인물이 조그만 섬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총을 마구 쏴 대서 무려 77명을 죽였다.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우선 감옥에 있는 사형수들을 즉시 형 집행하자고 나섰을 테고, 테러를 막기 위해 강한 공권력 행사를 주문했을 것이고, 무슨 무슨 특별법을 만들어 철저히 응징하자 했을 것이다. 물론 신문과 텔레비전은 복수와 증오의 말들로 가득 뒤덮였겠지. 미국이나 중국도 평소 모습으로 보아 우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오슬로 광장은 너무 달랐다.


"한 사람의 저렇게 큰 증오보다 우리는 더 큰 사랑을 만들 수 있다"


"복수는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노르웨이는 복수하지 않는다.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관용만이 우리의 대응이다""


그리고, 2023년 신림역과 서현역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비열한 테러 범죄가 연이어 발생했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타인들에 대한 기본적 사회적 신뢰를 위협하는 행위였다.


사건 직후 윤희근 경찰청장은 "국민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 흉악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경찰은 다중밀집지역 등 전국 247개소에 경찰특공대(SWAT)를 비롯한 경찰병력 1만2000명을 배치했다. 배치된 경찰관은 검문검색 매뉴얼에 따라 (시민들의) 태도나 대화 내용, 소지품 등으로 정황을 판단해 검문검색을 진행한다. 이는 이번 사건을 일으킨 범인들의 의도가 그대로 실현된 것과 같다. 그들은 일상의 공간에서 평범한 삶을 영위하던 시민들에게 언제든 지금의 삶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감을 주고자 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주관적 열등감을 해소하고자 했다.


경찰은 총기 사용과 관련해서, "급박한 상황에서는 경고 사격 없이 실탄 사격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서현역 사건 직후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신림역 사건 직후 국회에 출석한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괴물의 경우 영원히 격리시키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건 직후 당정과 경찰이 발표한 대책은 대부분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것들이었다. 이번 사건은 공권력이 약해서, 경찰이 시민을 감시하지 않아서, 경찰이 발포하지 않아서, 흉악범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선고되지 않아서 발생한 사건이라 볼 수 없다. 반복되는 '칼부림 예고'에 강경 대응하고 다중밀집지역을 지키는 일을 제외하고, 정부와 여당이 발표한 모든 대책들은 모두 분노와 증오에서 비롯된 응징의 언어에 닿아 있었다.

사회에 충격을 준 흉악 범죄가 발생하면 보수당은 늘 법과 질서를 이야기한다. 사형 집행에 대한 여론은 80%을 웃돌 정도로 증가한다. 이 같은 흐름을 타고 한층 강화된 공포와 증오의 여론은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범인들의 의도를 실현시키곤 한다. 우리의 본능적 두려움으로써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한다. 서로를 믿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끝내 우리의 관용과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피고인에 대한 가석방 심사를 영구히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서현역 사건에 따른 대책으로 검토되고 있는 이것이, 이성적인 문명국가의 사법제도의 지향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두 번째 문장을 추가하지 않아도, 현재의 무기징역형은 사실상 '종신 자유형'으로써 기능하고 있다. 현재 교도소에 있는 1300명이 조금 넘는 무기수 중, 가석방을 받아 나갈 가능성이 있는 이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법무부는 무기수의 가석방을 매우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설령 나간다고 해도 오랫동안 전자발찌를 찬다. 이춘재를 비롯한 우리가 알고 있는 무기수들은 가석방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현역 사건을 이유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검토하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속 엄벌주의를 토대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약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지난 3월 30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한 항소심 재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사건(부산고등법원 2022노545) 피고인은 피해자의 집에 침입한 후 부엌에서 흉기를 찾아 이를 휴대한 상태에서 절도 행각을 벌였다. 직후 피해자에게 발각되자, 피해자를 흉기로 찔러 살해해 '강도살인죄'로 기소됐다. 피고인은 청소년 시절 강도상해죄로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바 있고, 특수절도 및 야간건조물침입절도로 실형을 포함한 다수의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했다. 그러나, 부산고법은 1심 재판부가 선고한 무기징역형을 파기하고, 피고인을 징역 35년에 처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1심 재판부가 정한 형량은 재량의 합리적 범위를 일탈하였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부산고법은 1심 재판부의 무기징역형 선고가 재량의 범위를 일탈했다고 봤다.


부산고법은 피고인에 대한 제1심을 파기하고, 피고인을 징역 35년에 처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무기징역형은 수형자를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켜 그의 자유를 박탈하는 종신자유형이므로 유기징역형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는 사형 다음의 중한 형이다. 따라서 무기징역형을 선고함에 있어서 범인의 나이, 직업과 경력, 성행, 지능, 교육 정도, 성장 과정, 가족관계, 전과의 유무,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사전계획의 유무, 준비의 정도, 수단과 방법, 잔인하고 포악한 정도, 결과의 중대성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모든 사항을 충분히 심리하여야 하고, 그러한 심리를 거쳐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키는 무기징역형의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히 인정되어야 한다.


이 사건에 돌아와 앞서 언급한 각 양형 조건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여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는 단정하기 어렵다."


이 판결은, 우리 사회가, 우리 사회의 형사사법제도가 추구해야 할 지향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 사람'의 자유를 오랫동안 박탈하는 일에는 무척이나 깊은 고민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제10조 제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가진다. 그리고 인간에는 예외가 없다.


공포와 증오는 이 같은 사회적 합의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사회에 '공포'와 '증오'의 파도가 밀려올 때면, 나는 김형태 변호사가 언급한 노르웨이의 대응을 떠올리곤 한다. '관용'과 '민주주의', 나는 이것들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공포감을 주고 있는 이번 사태를 해결할 진짜 대안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이번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


나는 우리 사회가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포'와 '증오'에 몸을 맡기면 우리들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킬 수 없게 되게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포와 증오가 아닌 관용과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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