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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부림 사건 '중학생 진압' 아닌 '고독 해소' 필요

<얼룩소> 작성 글 아카이브④

by 김동규 Jan 07. 2025
출처 : UNSPLASH출처 : UNSPLASH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사회를 떨게 한 칼부림 사건 직후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소재 부용천에서 사복경찰 2명이 중학교 3학년 학생에게 불심검문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시민에게는 이 같은 불심검문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이는, 현행 법률에 명시돼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 제7항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은) 형사소송에 관한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신체를 구속당하지 아니하며, 그 의사에 반하여 답변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만약, 경찰관이 신분증을 요구할 경우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신분증을 보여주거나 혹은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거부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길이다.


그러나 피해자 측 주장에 따르면 사복경찰 2명은 다짜고짜 "너 이리와"라는 위협적인 말을 하며 중학생에게 다가갔다. 중학생은 겁이 나 반대 방향으로 뛰었고 이내 계단에 걸려 넘어졌다. 경찰관들은 중학생을 제압한 후 수갑을 채웠다.


이 과정에서 중학생은 전치 3주에 해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으며, 그의 부상 상태는 온라인을 통해 공개됐다. 이번 일에 대해 경찰은 "신고를 받은 뒤 비슷한 인상착의를 가진 남성을 목격해 불심검문을 시도하자 바로 달아나는 과정에서 스스로 넘어져 다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저항이 너무 심해 안전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잠깐 수갑을 채웠지만, 흉기가 없는 걸 확인한 뒤 현장에서 바로 풀어줬다"고 했다.


경찰관임을 알 수 있는 복장도 아닌 사복을 입은 2명이 다짜고짜 중학생을 위협한 후, 도망치는 그를 쫓아가 수갑까지 채워 부상을 입힌 일에 대한 경찰의 해명은 참 가벼웠다.


피해자 측은 이 사건을 폭로한 글에서 "무자비하고 강압적인 검거로 미성년자 피해자까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다"고 했다.


이번 일은 경찰이 신림역과 서현역에서 발생한 '칼부림 사건' 직후 견지해 온 치안 강화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칼부림 사건' 직후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한 경찰은 전국에 경찰병력을 배치하며, "이들은 검문검색 매뉴얼에 따라 (시민들의) 태도나 대화 내용, 소지품 등으로 정황을 판단해 검문검색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명백히, 선을 넘은 대응책이다. 지금은 1986년이 아닌 2023년이기 때문이다. 법률에 거부권이 명시돼 있는 행위를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것, 그리고 무고한 중학생을 제압해 부상을 입히고 수갑까지 채운 것은 대한민국이 그동안 합의해 둔 수많은 가치에 대한 반역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일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까?


tvN <알쓸범잡>에서 지난 2007년 발생한 조승희의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적이 있었다.


조승희는 지난 2007년 버지니아 공대에 총기를 난사해 32명을 살해했다.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조씨는 학창 시절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며, 사회로부터 깊이 고립돼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 후, 범죄심리학자인 박지선 교수와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박지선 : 범죄를 저지르는 데 있어서 고립의 영향이 굉장히 커요. 묻지마 범죄자들의 공통적인 특성을 보면 혼자 고립돼 있었던 기간들이 굉장히 길어요. 다들 몇 개월 이상 돼요.

권일용 : 다 같은 일을 겪고 있지만, 맥주도 한잔 마시면서 서로 울분을 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해소가 되는데, 그것이 고립돼 있는 자들이에요. 정신질환 이야기도 나오는데, 치료받고 있는 정신질환은 조금도 위험하지 않아요. 가족이 포기하고, 약을 끊고 치료를 중단하고 3개월을 넘기면 이때부터 위험해지는 거예요.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요.

박지선 : 범죄자들이 사실 말을 잘 안 할 거 같지만, 평소에 자기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던 경우가 많아서 면담 때 사실 말을 굉장히 많이 하는 경우가 많아요.

권일용 : 많이 합니다. 많이 하고, 쭉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어봤을 때 "평생 내 이야기를 이렇게 집중해서 들어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다"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요. 사실 이 사람들은 자기 의사표현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에도 상대방이 나를 무시한다고 추상해서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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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부쩍 늘고 있는 묻지마 범죄를 해결할 단서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고립을 줄여야 한다. 영국처럼 '고독부'를 신설해 고독 문제를 사회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범죄가 발생했음을 이유로, 경찰력을 총동원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실효성 없는 '처벌 강화'를 논하는 건 이번 사안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두려움에 근거한 억압적 정책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동료 시민들을 억압하는 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것은 단기적 미봉책에 불과하다. '고독부 신설' 등 사회적 고립 해소를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의 연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지금의 '은둔형 외톨이' 관련 정책도 범정부적으로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 지난 2019년 '은둔형 외톨이 지원조례'를 제정한 광주광역시는 지난 2022년, 전국 최초의 '은둔형 외톨이 지원센터'를 개소했다.

지금 보건복지부는 고립·은둔 청년 지원 정책 개발을 위한 기초 자료 생산을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철저히 신경써야 할 사업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정신질환도, 공권력의 연약함도 아닌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사회적 고독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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