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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서사'는 충분히 검토되어야 한다

<얼룩소> 작성 글 아카이브⑤

by 김동규 Jan 07. 2025
출처 : UPSPLASH출처 : UPSPLASH


최근 SNS에서 '가해자의 서사'에 대한 논쟁을 접했다. 그 중심에는 한 문장이 위치했다. 바로,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말은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서사라는 건 부여되는 게 아니라, 부여됨과 별개로 이미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특정 주체가 부여하지 않아도 모든 가해자에게는 '서사'가 있다.


얼마 전, 만취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한 20대가 대전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징역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무척 짧은 기간내에 여러 차례 음주운전을 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람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하고, 그에 대한 제1심 판결을 파기했다. 재판부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피고인은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태어난 직후부터 보육원에서 자랐고 중학생 무렵 보육원을 도망친 이후 보호 시설 등을 전전하며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성인이 된 피고인은 준법의식이 미약하고 특히 교통 관련 법규 위반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것으로 보이지만,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보살펴 줄 가족 등이 없었다는 점에서 비난의 화살을 피고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할 것이다.

이에 선처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지금뿐이라고 생각되며 아직 개선과 교화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피고인(가해자)의 서사를 범죄의 중요한 양형인자로 보고 있으며 가해자에게 이미 존재하는 서사를 검토하는 게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사형이나 무기징역 같은 '거대한 처벌'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사형, 무기징역 등의 선고에 있어서는, 범인의 나이, 직업과 경력, 성행, 지능, 교육 정도, 성장 과정, 가족관계, 전과의 유무,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사전계획의 유무, 준비의 정도, 수단과 방법, 잔인하고 포악한 정도, 결과의 중대성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모든 사항을 충분히 심리하여야 한다고 규정해 뒀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를 거쳐 피고인에 대한 사형 및 무기징역형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히 인정되어야만, 사형이나 무기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해뒀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가해자에게 무거운 벌을 줄 때에는 '가해자의 서사'를 충분히 검토하라고 못 박아둔 것이다.


'가해자는 대체 왜 그 같은 범행에 이르렀나?'라는 질문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질문이다.


가해자의 서사를 검토하지 않고,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배제하는 식의 처벌 일변도 정책을 펼치는 건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범죄에는 사회적 측면이 있다. 인구 10만 명당 500명을 감옥에 가둔 미국의 엄벌주의는 실패했다. 사람들을 그저 가둬두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공범들과 함께 강도 범죄를 저지르던 중, 공범이 피해자를 살해해 사람을 직접 죽이지 않았음에도 강도치사죄의 공동정범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신창원은 그의 서사에도 불구하고 무기징역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그의 서사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신씨는 어린 시절 간암으로 어머니를 잃고, 계모와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초등학교 교사는 신씨에게 "XX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때의 일을 언급하며 신씨는 "그 순간 마음 속에 악마가 생겼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신씨는 성장 과정에서 사회적 유대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었고, 가난과 폭력에서 비롯된 나쁜 마음으로 절도 범죄를 저지르게 됐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신씨를 경찰서에 끌고가 소년원에 넣어달라고 사정했다. 학교에도 적응하지 못했던 신씨는 중학교를 진학 3개월 만에 그만뒀다.


나는 우리 사회가 신씨의 이 같은 삶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흉악범의 공통적 습성을 살펴보면, 어린 시절의 폭행 범죄가 절도, 강도로 이어진 후 성범죄와 살인으로 강화되는 특성이 있다. 가해자의 이 같은 습성을 파악하지 않고 어떻게 그들을 교화시키고, '강도' 단계에서 범행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서사를 면밀히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말은 누군가가 가해자의 서사를 활용해 그의 범행을 정당화하거나 온정주의적 시선으로 바라볼 때에도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확하게, 가해자의 범행을 정당화하거나 온정주의적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말이 나왔으면 좋겠다.


언론이 가해자의 서사를 잘못된 언어로써 보도하면, 그 언어에 대한 정확한 비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왜냐면 가해자의 서사, 즉 범인의 나이, 직업과 경력, 성행, 지능, 교육 정도, 성장 과정, 가족관계, 전과의 유무,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등은 늘 그랬든 면밀히 분석되고 검토되고 양형에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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