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소> 작성 글 아카이브②
2023년 12월 14일,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가 남총련 의장을 지냈던 정의찬씨에 대한 총선 후보자 '적격' 판정을 결정했다. 정씨는 오는 2024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며, 전라남도 해남·완도·진도군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지난 10월 22일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그 주제는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좋은 정치'였다. 당시 출판기념회에는 이재명,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전·현직 대표들의 추천사와 축전이 전달됐고, 민형배 국회의원(광주 광산을)은 현장에 참석했다.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축하영상을 보내왔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끌어 오르는 분노를 참기 어려웠다.
정의찬씨는 1997년 당시 남총련 의장이자 조선대 총학생회장이었다.
그해 4월, 송원대학교를 졸업한 이종권씨가 자신을 '박철민'이라는 가명으로 소개한 후 전남대 문화동아리 '용봉문학회'에 가입하는 일이 있었다. 그는 전남대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가 선배들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동아리 회장 구영민은 이종권씨를 경찰이 보낸 프락치로 보고 총동아리연합회 사무실로 불러 들였다.
이때부터 남총련 간부들은 동아리 사무실에 온 이종권씨를 무참하게 '고문'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경찰의 프락치라는 사실을 자백하라고 했다. 이때 이뤄진 폭행에는 남총련 정의찬 의장, 장형욱 기획위원, 전병모 기획국장, 최석주 전남대 오월대장, 전연진 투쟁국장 등이 가담했다. 이들은 주먹과 쇠파이프를 이용해 이씨를 무자비하게 폭행했고, 이씨는 결국 고문 과정에서 강제로 삼키게 된 소화제가 기도에 걸려 질식으로 사망했다.
이씨가 살해당한 날은 하필, 5월 27일이었다. 정확히 17년 전인 1980년 5월 27일 새벽, 위대했던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의 진압작전에 맞서 최후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했다. 그들은 비어있는 도청을 그대로 계엄군에게 넘겨줄 수 없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광주의 새벽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침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광주항쟁에서 비롯된 학생운동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기념비적인 날, 가장 수치스러운 범죄를 역사에 남겼다. 이씨가 사망하자 남총련 간부들은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그들은 사건을 은폐하기로 결정하고 "전남대 잔디밭에서 우연히 쓰러져있는 이씨를 발견해 응급조치 했으나 그대로 사망했다"고 말을 맞췄다.
그러나 경찰은 사건 당일 이씨의 어머니가 "당신 아들이 전남대생이 맞느냐"는 추궁 전화를 받았던 점을 토대로 수사를 전개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냈다. 이후 살인에 가담한 자들은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고, 정의찬씨는 징역 5년에 자격정지 3년, 벌금 2백만 원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정의찬씨는 저항할 힘이 없는 사람을 납치해 집단으로 폭행해 살해했다. 당시의 현장검증 영상을 보면 그가 사건의 주동자임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는 '살인자'다. 일명 '이종권 구타치사 사건'에 가담했던 이들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위해 활동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 범죄에 가담했다. 광주항쟁은 바로 이러한 폭력에 당당히 맞섰던 사건이었다.
그의 전과는 상해치사이지만 시민들에게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는 법원도 같은 입장이다. 지난 2007년, 안양에서 초등학생 2명을 납치, 살해한 정성현은 수사과정에서 상해치사 여죄가 드러난 바 있다. 그는 2건의 살인 및 상해치사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언론은 그가 3명을 살해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정씨는 상해치사를 살인이라 표현한 언론보도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일반적으로 살해라는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 반드시 고의에 의한 죽임만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며 "언론이 상해치사와 살인을 구별하지 않았다고 해서 허위 보도라 인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즉, 상해치사를 살인이라 표현하는 건 문제 없는 행위인 것이다.
이에 따라 나는 명확히 말한다. 정의찬씨는 살인자다.
그러나 어제 더불어민주당은 그가 총선 후보로서 '적격'하다는 어이없는 판정을 내렸다. 만약 그가 민주당 공천을 받고 총선 본선에 출마한다면 그의 전과기록에 뚜렷이 새겨져 있는 그날의 잔혹한 만행을 어찌 변명할 요량인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그는 그동안 더불어광주연구원 사무처장, 경기도지사 비서관, 광주 광산구청 열린민원실장, 경기도 산하 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이쯤되면 그를 그대로 방치해둔 더불어민주당도 공범이다. 지역사회는 다른가? 그는 지난 2020년에 조선대학교 민주동우회 이사를 지냈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떳떳하게 얼굴을 들고 '정치'를 하는 모습이 참 기가 막힌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이 사건 범행의 피해자가 느꼈을 끔찍한 고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 판결의 언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그들의 범행 수법은 잔인하고 포악했으며, 피해자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끔찍한 육체적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종권씨가 만약 오늘의 대한민국을 본다면, 제1야당이 자신을 살해한 범인을 총선 후보로서 '적격' 판정하고, 그 당의 구성원들은 줄줄이 그의 출판기념회에 달려가 축하를 나누는 모습을 본다면, 그는 편히 눈 감지 못할 것 같다.
살인자 정의찬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후보자 적격 판정은 취소되어야 한다.
+ (14시 18분 내용 추가)
언론의 포화가 빗발치자 민주당이 '살인 전과' 정의찬씨에 대한 '재검증'에 돌입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재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규정을 잘못 본 업무상 실수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간 정씨가 거쳐온 경력을 살펴보면 이것이 과연 합당한 해명인지 의심스럽다. 정의찬씨는 그간 이재명 경기도지사 비서관,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사무총장, 민주당 이재명 선대위 조직상황실장, 이재명 대전환선대위 조직관리팀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특별보좌역 등을 역임했다. 한 언론에서는 이 대표의 이번 해명을 두고 '황당 해명'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한 번 던져보고, 언론, 여론의 반응이 좋지 않으니 납득할 수 없는 해명을 내놓은 게 아닐까 싶다. 다 떠나서 그동안 지근거리에서 자신을 보좌한 이에 대해 규정상 실수로 적격 판정을 받았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정치란 참으로 비정하고도 무서운 것인 것 같다.
정의찬씨는 오늘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사건 당시 현장에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면서 정씨는 "당시 학생운동권은 총학생회장이나 남총련 의장이 모두 책임져야 하는 문화였다"며 "(이 사건에 대해) 이미 민·형사상 책임을 모두 졌고, 검증위는 시스템을 거쳐 적격 판정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당시 언론보도에는 그가 '현장'검증을 받고 있는 모습이 정확히 나와 있다. 이 사건을 다루는 언론들은 당시나 지금이나 "정의찬씨 등 6인이 폭행에 가담했다"고 보도한다. 학생운동권이라 남총련 의장으로서 책임졌다는 주장 또한 어불성설이다. 이 나라의 법치주의는 그리 우습지 않다.
상해치사죄의 공동정범으로 1심(3명), 항소심(3명), 대법원(4명)까지 판사 10명이 판결한 상황에서 재판관들이 헌법상 자기책임의 원리에 반해 판결했을 가능성은 없다. 이 사건은 정씨가 사건에 연루된 정도에 따라서 상해치사죄의 공동정범으로 징역 5년 실형을 선고한 건에 불과하다.
요새는 정치라는 게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사람이 이리도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싶다. 정씨의 주장대로라면 법원이 상해치사 범죄에 가담하지도 않은 사람을 두고 의장이니까 책임을 지게 했다는 식인데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정씨는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부끄럽지 않은가? 묻고 싶다.
(이날 오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는 "제기된 문제에 대해 다시 회의를 열어 검증한 결과 정의찬씨의 행위가 특별당규 별표1의 예외 없는 부적격 사유에 해당하는 범죄경력에 해당되는 것으로 확인하여 부적격으로 의결했다"고 정정 발표했다. 이로써 정의찬씨는 총선 후보자로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