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

by 진주

이 책을 만나게 된 건 유튜브 '김창옥 TV'이다. 즐겨 듣는 김창옥 강사님의 유튜브에서 제목이 자극적일 수 있는 이 책 소개를 듣고 사실 별 감흥은 없었다. 요즘 나오는 여러 책을 보면서 느낀 건 눈길을 끄는 제목치고 내용이 알찬 경우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제목에 낚인 경험이 있다 보니 이 책 역시 그런류에 속하나 싶었다.


그런데 작가를 보니 박우란님이다.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의 작가님이 쓴 책이라니! 그분 책을 처음 접하고 상당히 나와 결이 맞는 사고와 내용으로 한줄한줄 아껴 읽은 기억이 났다. 그 뒤로 그분이 공저한 책까지 접했는데 그분의 신작이 이 책이었던 거다.


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이 책을 영접(?)하고 이 책 역시 가장 집중이 잘 되는 밤 시간에 한줄한줄 아껴 읽었다. 그리고 이후 브런치 글에서도 인용을 하기도 했고 책 내용에서 많은 질문을 얻어 그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대한 답도 찾으며 우리 부부 사이의 변곡점을 찾는 기회로 삼았다. 특히 아내로서 나의 본질적인 위치와 태도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진정한 부부'란 뭘까?라는 이미지에 갇힌 부부의 삶이었다. 어쩌면 내적으로 불행에 가까운 부부 사이라 여겼기에 보이는 부부의 모습에 더 뜨끔하게 된 거 같다. 친정부모님과 우리 부부는 같은 교회를 다니는지라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더욱 보이는 부부 모습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교회에서 반주 사역을 하는 자리에 있다 보니 사람들의 이목에 더 끌리기도 한다. 주일 전날 사이가 안 좋았더라도 혹은 주일날 아침 싸우고 기분이 안 좋을지언정 교회에서 세상 다정한 모습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존칭까지 써 가며 가면을 썼다.


남편은 심성이 온순하고 화가 없는 편이라 우리 부부의 싸움은 나의 일방적인 지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혼 생활 14년 차이지만 남편이 소리를 지르거나 성질을 낸 적은 딱 세 번이다. 두 번에서 끝날걸 마침 며칠 전에 하필 큰아이와 충돌이 있어 남편이 처음으로 큰아이에게 화를 쏟아냈다. 화를 낸 내용을 보면 전혀 앞뒤가 맞지 않게 큰아이에게 오버한 부분이 있지만 남편의 전후 기분이 그다지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는 걸 알기에 아이에게 화를 낸 부분은 그냥 넘어갔다. (사실 아빠를 만만하게 보는 편인 큰아이에게는 좋은 효과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크게 개입하지 않고 그들끼리 풀어가도록 두었다.)


남편 입장에서 보면 아내라는 사람은 남편이 아닌 타인의 반응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남편의 감정보다는 우리를 바라볼 이목에 아내인 나는 더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로서 남편이 이렇게 바뀌면 혹은 남편이 이렇게 해주면 난 더 행복할 거야 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내 기대와 만족만을 남편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책에서 적나라하게 표현한 '충돌'과 '물어뜯음'은 나의 무기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런 기제를 일삼았던 부부관계였기에 그 이상은 생각할 수도 없고 충돌과 물어뜯음이 없이는 부부 존재의 이유가 불명확하기까지 했다.


길가다 다정한 부부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다정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 남편이 잘해주나? 아니면 아내가 순종적인가?라는 지극히 내 주관적인 해석으로 그 답을 찾으려 했다. 이렇게 하면 혹은 이렇게 되면 관계가 회복되는 걸까?라는 접근으로 부부 사이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으려 했기에 노력하면 할수록 더 어긋나기만 하고 내 마음 같지 않은 남편이 여전히 미울 뿐이었다.





어쩌면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원하는 것을 전혀 충족시켜 주지 못한 채 아내에게 해줘야 하는 도구적 존재로만 남편을 바라보지 않았나 싶다. 물론 굳이 이유를 대자면 아이가 셋이라는 것과 주말부부이기에 남편이 평일에 메꾸어주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보상으로 쉬는 날이라도 나의 편의를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 않고 그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라 생각한다. 다만 너무 도구적으로만 남편을 바라봤다는 것은 나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말이다.


남편 이기전에 한 인간, 한 남자로서 그의 존재에 대한 이해와 배려, 존중이 기본 되어야 했는데 결혼하자마자 나는 남편으로서 그리고 출산 이후는 아빠로서 짊어져야 하는 의무감만을 기대했던 거 같다. 물론 친정아빠의 영향이 없을 수 없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그 영역에 대한 의무만을 요구했던 거 같다.


말이 참 통하지 않는 부부라고 생각하기에 대화다운 대화는 하지 않는 편이다. 서로의 세계관이 워낙 다르기도 하고 워낙 투닥임만을 일삼는 부부이기에 맞아도 틀리다 하고 틀려도 맞다고 하며 우격다짐을 하기 때문이다. (쓰면서 참 부끄럽기도 하지만 우리 부부의 실체를 낱낱이 알아가게 되는 통쾌함도 느껴진다.) 동갑 부부인지라 부부 사이가 좀 자유로운 것도 한몫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매일 부딪히며 모난 곳이 깎이고 다듬어져야 부부로서의 모양새가 나기도 할 텐데 주말부부로 10년 이상을 지내다 보니 깎일만하면 헤어지고 다듬을만하면 또 헤어지니 그런 면에서 부부로서 모양새를 다지는데 다른 부부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나 싶다. 그래서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하면 항상 신혼부부 같은 부부다. (이게 장점이 맞나 싶긴 하지만 말이다.)


보이는 대로만 믿는 아내인데 남편은 보이지 않은 속이 더 많다. 그래서 연애와 결혼 생활이 오래됐음에도 아직도 남편을 모르겠는 순간이 많다. 물론 그를 본다고 하는 기준이 내 눈과 귀, 그리고 내 마음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일 테니 진짜 남편을 안다고 할 수 없는 게 맞을 거다. 아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 대한 판단이 가장 맞는 말이다. 나는 남편을 아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판단하고 내 기준으로 그를 재단하고 그를 그라고 하는 걸 테니 말이다. 결혼 생활 8할을 남편을 이해하는데 쏟아부었음에도 여전히 그를 모르겠는 건 그 이해가 지극히 내 주관적인 관점이자 남편에게 남편의 자질과 아빠로서의 의무만을 내세우기 때문이었을까?



내 중심으로 일어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에 의혹을 품어내는 것
그것이 무의식에 주의를 기울이는 첫걸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이유보다는 그래서 사랑하지 않을 이유만을 찾기에 급급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 사람을 허용하고 싶지 않은 내 안의 욕망과 그 사람으로 인해 내 에너지를 잡아먹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나 스스로 집안일과 육아를 감당하는 것에 대한 나만의 룰이 깨지는 것에 대한 반기, 그리고 남편이 끼어들므로 인해 내 영역이나 존재감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거다. 남편의 사랑보다는 차라리 나를 지켜나가는 방편이 내가 주말부부로 남편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이 나와 내 아이들을 지키는 생존이기 때문이다.


쓰고 보니 지금까지 주말부부로서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 차라리 떨어져 지내는 게 나은 부부구나 싶었는데 남편의 사랑과 자리를 내어주지 못하는 데 분명한 이유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생존, 그것이었다. 남편 없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무의식 저 너머 생존에 대한 책임감이 나를 남편에 사랑은 그저 사치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존을 위해 애쓰는 내 무의식이 남편의 철없는 사랑타령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는 것.



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지켜줄 수 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 그동안 그 부분에 대해서 상처가 많았기에 이해가 된다. 생존의 문제를 매일 해결하는 아내이자 엄마인 나에게 남편의 변수나 남편의 철없음은 지켜줄 수 없고 지킬 생각이 없는 것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부부의 문제라기 전에 우리 가정이 처한 환경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책임감이나 의무에 대해서 의식하지 못했구나 싶다. 누구의 잘못이 아닌 처한 환경에서 환경에 따른 부부나 부모로서 재정비가 필요했던 건데 그러지 못하고 평범한 부부와 가정 같기를 바랐던 거다. 한 번도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그저 내가 일주일 동안 짊어진 육아와 집안일에 대한 무게감,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을 뿐, 근본적으로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각자 최적의 액션이 무엇일지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사랑은 남편에 대한 환상이 끝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진정한 회복은 사랑할 수 있는 역량의 회복이라고 말했습니다


여전히 남편에 대한 어떠한 환상을 품거나 나로 인해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남편을 바라보았나 싶다. 그러기에 결국에 남는 건 실망뿐이었지만 말이다. 남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그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인 거 같다.


오늘 미라클 모닝 때 부부 사이에 대한 고민을 하는 중에 '동역자'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 부부에게 지금 필요한 건 동역자로서 서로 손잡고 가는 것, 서로 의지하며 함께 나아가는 그것인 것이다.




글이라는 게 신기하네요.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질문의 결과 사뭇 다르게 글이 써지네요. 이것 역시 글쓰기의 힘이겠죠? 책을 읽으며 떠오른 질문에 내 답을 찾아가고 그것이 진짜 내 질문과 답이 되기 위해 이렇게 글로 풀어내는 과정이 필요한가 봅니다.


특별히 남편에 대한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으신 분께 이 책을 권해 드립니다. 사이좋은 부부라 해서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서로 합을 맞춰가는 부부도 있을 것이고 한쪽이 그 합의 중심을 짊어지고 있을 수도 있어요. 부부로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보이는 이면도 보이지 않은 이면도 어떠한 관계보다도 많은 애씀이 필요한 것이 부부관계구나 싶어요. 싫으면 그만인 것이 쉽게 통하지 않는 관계 역시 부부관계라 봅니다. 그래서 그토록 어렵고 이해가 필요한 관계 역시 부부인거 같아요. 부부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이전 06화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