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는 사람

by 진주

남편과 대화 중에 문득 떠올랐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연애도 짧지 않게 했고 결혼 생활도 만 13년 차 지나고 있는데 남편에 대한 객관화가 이제야 선명해진다. 그동안 객관화시키지 못한 이유는 남편의 행동과 말에 대한 반응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이었기 때문임도 알게 되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선을 넘어 객관적으로 남편을 파악하고 보니 감정의 골이 깊어지진 않아서 참 다행이다. 하지만 결혼 생활 내내 쌓이고 쌓인 묵힌 감정들이 남편의 어떠한 행동이나 말로 인해 툭 건드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난 상처 받아구나 알게 되었고 그 상처를 애도하는 과정을 지나는 중이다.


남편과 나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질이다. 며칠 전 지인들과의 단톡에서 문득 떠올랐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왜 이렇게 건설적이지 않지? 맞다. 딱 내가 남편을 향해 불만인 이유가 지인들과 별거 아닌 대화중에 툭 건드려서 해답이 얻어졌다. 매일의 삶을 건설적으로 꾸려가야지만 활력을 느끼는 나와 활기는커녕 그냥 태어난 김에 사는 거 같은 남편(남편 미안하지만 가끔 그렇게 느껴져)이다. 사실 에너지면에서 남편과 나는 극과 극이긴 하다. 남편의 기질상 나 같은 에너지를 낼 수 없는 사람인 것도 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난 삶을 사랑한다. 하지만 남편은 아직 삶에 대해서 모르는 게 참 안타깝다.


얼마 전에 "헛산거 같다"라며 한숨을 내쉬는 남편을 보며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안타깝기도 했다. 남편이 말하는 기준은 소위 남들이 원하는 그 무엇이었다. 그것을 소유하지 못함에 헛산거 같다고 하는 사람과 만 13년을 생활했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졌다. 내 삶은 결혼과 동시에 폭풍우 휘몰아치는 내적 과정을 겪었을지언정 난 매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며 역동적으로 살아왔기에 오히려 풍성한 삶을 살아냈구나 싶은데 말이다. 거기에 토끼 같은 아이 셋에 크게 빚지고 살진 않고 있으니 타인의 기준에는 부족해 보일 수 있으나 우리 수준에서는 충분히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말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아이 셋이 있다는 거 만으로도 꽉 찬 행복에 만족스러울 텐데 남편은 왜 그러질 못할까?


문득 친정아빠가 떠올랐다. 난 친정아빠와 반대인 사람을 원했기에 술, 담배 안 하고 신앙 있는 남편을 선택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기질은 비슷한 면이 있음을 나만이 아닌 친정엄마도 느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두 사람 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다. 자존심은 하늘만큼 높고 반면 자존감은 그에 비하지 못하기에 그 자존심 하나만으로 삶을 버텨오는 부류인 것이다. (아빠와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있는 사실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이야기한다.)


친정아빠 같은 경우는 연세 드실수록 알량한 자존심만 남으시지라 인생에 대한 후회가 폭풍처럼 몰려와 칠십 이후부터 무기력증에 빠지셨다. 손에 쥘 수 있는 것들을 다 놓치고 나서야 그 자존심 따위가 아무것도 이루게 해 줄 수 없음을 아신 것이다. 그 자존심 하나로 자신을 지탱했을지언정 그 자존심으로 어느 하나 건설적이게 이루어 오진 못하셨다. 물질도 스스로의 내적 상태도 말이다.


자신에 대한 물음은 삶을 살아가는 그때에 맞춰 스스로에게 당도한다. 그 질문들을 외면할수록 자라지 못하고 숫자만 쌓이는 거다. 한마디로 나이만 먹고 노쇠해지는 것이다. 어른이지만 어른이 되지 못하고 어른이 되지 못하므로 불거지는 문제를 떠안고 살게 되는 것이다. 혼자 외딴섬에서 산다면야 평생 어른이 되지 못해도 상관없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란 건 관계 안에 놓여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 관계 안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나에게 당도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살아야만 한다.


삶을 살아가는 건 결국 자신이기에 자기 스스로 깨달아야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마치 왕자가 거지인 줄 알고 살아가는 격이라고 할까? 그래서 남편이 안타깝다. 그래서 자꾸만 잔소리를 하게 되고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게끔 질문을 던져 주기도 한다. 왕자인 자신을 찾으며 살아가라고 말이다. 왕자는 얄량한 자존심따위는 필요없다.


당신은 자신에게 얼마나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고 있는가?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수록 삶은 당신에게 허락 된 많은 것들을 보여줄 것이다. 삶이 공부라고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나에게 오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 그것이 삶이 공부인 것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테이비드 케슬러 <인생수업> 中








친정아빠는 지금 연세에 삶을 관통할만한 큰 사건이 생기지 않고는 아마 지금처럼 무기력증에 삶을 한탄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안타깝지만 살아내지 못한 그간의 삶들은 그렇게 먼지만 날리며 스스로를 괴롭힐 뿐이다. 그리고 그 이상 어쩌지 못하는 건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 이상 벗어나는 삶이라는 건 기대와 희망이 아닌 불안과 두려움이기에 왜 그렇게 밖에 살지 못하시냐 할 수 없다. 그저 그렇게밖에 살아가지 못하는 삶에 대한 애도를 자식으로서 표할 뿐이다.


남편은 스스로 던지지 못하는 질문을 아내인 내가 던져주면서 의식이 깨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거지가 아닌 왕자로서의 태도를 되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직도 남편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살을 맞대고 한 몸처럼 살아가는 부부이기에 남편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기가 쉽지는 않지만 감정이 앞서다가도 불현듯 깨달음이 얻어지니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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