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욕구 2
명절 내 꼴보고 싫은 남편이 오늘도 쉰다는 말(하루 전에 말하는 노센스를 가진 남자)에 오늘(2/3)은 기필코 나가리라 아침부터 의지를 불태워본다. 내심 다 같이 나가주길 바라는 마음을 은근슬쩍 내비치는 앙큼함도 발휘했다. 아이들이 원하면 남편도 따를 거 같았지만 하필 오늘따라 둘째 셋째가 집에 있겠다고...(너네 연휴 내내 집에 있었다) 큰아이는 어제부터 외출을 하고 싶어 했는데 꼼짝없는 아빠에게 화를 냈다 자기가 꼬셔보겠다고 하더니 동생들이 안 도와주니 고민만 한다. 엄마 따라가자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불편함은 감수하고 싶지 않은 큰아이는 결국 안 가기로 결정해서 나 혼자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어쩌면 내 마음에 따라 움직여주길 바라는 수동적 태도를 남편에게 갖고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내가 운전을 못하는 것(장롱면허 10년 차)이다. 요즘 여성에 대한 책을 보며 또 1월에 본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라는 책을 통해 능동적 태도라 생각했던 나는 아내로서는 수동적 태도를 상당 내포한 능동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표면적으로 권위를 내세우는 거 같지만 결국엔 남편이라는 그늘에 안정되고 싶은 욕구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면서 가정 내 책임과 안정이라는 욕구는 스스로 쥐고 있다. 물론 주말부부라는 점과 오로지 자신의 몸과 마음만이 우선인 남편 덕이 크다. 이런 환경에서 내 열정과 욕망에 사로잡히면서도 그 책임과 안정이라는 이유로 자꾸 발목이 잡히는 것이다.
들끓는 열망을 실현할 에너지가 있음에도 과감히 그 발목을 나 스스로 끊어내지 못하는 건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자 불안이다. 엄마의 시스템에 최적화되어 있는 우리 아이들은 엄마 의존도가 높고 엄마가 있어야지 안정감을 누린다. 이 부분은 큰아이들이 자주 표현하는 부분이다. 아빠랑 있으면 뭔지 모르게 불안해서 엄마의 외출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그나마 엄마가 없으면 자유롭게 게임도 하고 공부나 숙제를 안 해도 돼서 반기는 면도 없지 않지만 예민한 성격의 큰아이들은 결국에는 마음의 안정을 바란다. 그 마음의 끈을 나 스스로 놓지 못했기에 자꾸만 아이들의 마음에 발목이 잡혔던 거다.
아이들만 생각한다면 당연히 내 열정이나 욕구는 참아내야 하는 게 맞다. 그리고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아이들이 배울 수 있고 키울 수 있는 무언의 환경을 내 책임이라는 영역으로 가로막고 있는 꼴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최후는 내 열정이나 욕구를 자꾸만 묵살하게 되는 환경으로 인해 내면 에너지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바닥난 에너지의 피해는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돌아간다. 최대의 피해자는 아이들이 될 테고 말이다. 마치 성난 얼굴로 아이들을 끌어안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물론 그것을 알기에 최대한 내 감정을 조절하려 애를 쓰긴 하지만 엄마이기 전에 인간이고 한 여자로서 내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 싶진 않다. 그리고 결국에는 나도 남편한테 기생하려고 하는 숨겨진 본심이 참 싫었다. 독립적인 인간이자 여자로 살고자 하는 내가 결국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수동적 잉여인간이 되려고 한다는 극사실을 마주한 꼴이다. 그리고 남편의 영역 아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아내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왜 질투가 나고 괜히 미워지는 이유를 이제야 마주한 것이다. 바로 내가 원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결국엔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싶은 내 욕심도 마주하게 된다. 잉여인간으로 살고 싶기도 하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 되고 싶기도 한 것이었다. 결국 내가 가진 성정이 잉여인간의 형태를 띠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닿을 수 없는 영역이기에 탐해보고 싶었던 거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으로서의 의지를 내고자 가족들을 걷어차고 나온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걷어줬으면 하는 바람도 비췄지만 말이다. 바다가 보고 싶은 마음에 강릉을 갈까 하다 기차 시간이 맞지 않아 집에서 가까운 역에서 출발이 가능한 춘천행을 택했다. 전혀 계획되지 않은 출발에 심박수가 올라갈 만큼 불안도가 올라왔지만 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기차표를 예매하고 기차 안에서 무엇을 할지 어디를 갈지 세세하게 틀을 잡아가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대중교통은 번거로워 과감하게 도보여행을 자처하며 물론 다이어트 중이라 걷기 운동도 겸하고자 꼼수가 더 크지만 말이다.
춘천역에서 가고자 하는 막국수집으로 가는 길에 스카이워크도 들리고 점심 먹고 소양호 주변을 돌며 찾아둔 카페에 가서 디저트도 먹고 남은 시간을 뭘 할까 하다 독립서점을 검색해서 50분을 걸어서 도착했다. 가면서 호기심에 들어가 본 재봉 카페에서 4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앞치마도 샀다. 앞치마라니 뼛속까지 주부인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나를 위한 선물이라 생각하며 곱게 포장해서 스스로에게 건네 본다. 재봉 카페를 지나니 바로 찾던 책방이 나온다.
그곳에서 만난 기적 같은 그림책 한 권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생긴 일' 제목을 보자마자 '아, 이 그림책이 날 여기까지 이끌었구나' 싶었다. 마치 오늘의 여정은 이 그림책을 만나기 위한 하늘의 뜻이라도 되는 듯이 그림책을 보자마다 웃음이 나왔다.
내용을 보기 전에 고양이와 쥐? 내가 고양이일까? 쥐일까? 괜한 호기심을 가져보는데 고양이라 생각한 난 결국 쥐였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씁쓸함을 그림책에서 여실히 본다. 내가 부부 사이에서 의식하고 고민하는 부분이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거다. 그 문제에 대한 의식을 가지느냐 모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난 그림책에서 묘사한 그 의식을 여실이 느끼는 사람이었다. 비로소 모든 의문이 풀리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듯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제야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라는 책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거 같았다. 아내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온전히 정신적인 독립과 주체적 의식을 내세우며 남편과 동일선상에 설 것이다. 표면적인 동일선이 아니다. 인간대 인간으로서 성별을 떠나 주체성을 띈 개인으로서 나를 마주하고 또 남편을 마주할 것이다. 나란히 마주하므로 저절로 해결되는 것들이 참 많아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내가 가는 길이 내 딸이 걸어 나갈 길이 되기도 하기에 나는 거침없이 밟아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