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 13년 만에 남편이 다림질을 하다

by 진주

결혼 만 13년 차를 지나고 있다. 남편 입장에서는 마누라가 이유 없이 투닥이는 경우가 많기에 요 근래 남편을 향한 내 불만을 그는 또 지나가는 바람처럼 느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만족보다는 불만족이고 기대보다는 제발 실망만 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보는 것보다 안보는 것이 차라리 마누라인 내 입장에서는 심신이 안정된다.


이번 주말도 남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물론 일련의 사건이 있었고 믿음과 신뢰의 문제였던지라 그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남편이 못마땅했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이 아니라고 해도 주말에만 보는 남편이 주말 내 소파와 핸드폰으로 합체되어 있는 꼴(?)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마누라는 거의 없다고 본다.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해야 하니 언제나처럼 남방을 다려달라고 한다. 하나는 가져간다며 두 개를 꺼내 놓는다. 평상시에 육퇴 후 다림질을 하고 식탁에 걸어두는데 그날따라 남편이 채근을 한다. 아침에 단추 잠그는 시간을 줄이려 먼저 잠가놓으려고 한다면서 볼멘소리를 하길래 '그럼 그냥 가' 그랬더니 '그러기냐?'라며 탓을 나에게 또 돌린다. '단추 잠가 놓는다길래 그러라 한 건데 내가 왜?' 해버렸다. 평상시 같으면 그러더라도 마누라인 나의 체면과 남편의 꼬장함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싫은 내 마음에 밤에 해두고 걸어뒀을 거다. 우렁각시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러기 싫었다. 그냥 그 책임감을 나에게 돌리기 싫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리미가 꺼내져 있다. 뭐지? 설마? 남편은 그날따라 잠이 안 온다며 밤새 들락날락거렸다. 남편이 아침에 전화하더니 다리미 치웠냐고 슬쩍 물어본다. 사실 난 그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내가 아침에 다리미를 치워뒀는지도 기억이 가물했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일이 나를 헷갈리게 한 것이다.


남편은 결혼 13년간 단 한 번도 다리미를 꺼내본 적도 다려본 적도 없다. 옷매무시가 매우 중요한 마누라를 만난 덕에 난 청바지도 다려서 준다. 그런 아내가 다림질을 안 해주니 다리미 근처도 안 가본 사람이 다림질을 한다. 그전날 남편 때문에 골치 아파서 혼자 산책을 하며 혼자 되뇐 말이 '책임, 권리, 통제'였다. 책임을 내려놓으니 권리도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그로 인한 통제에서도 벗어나는 논리라니...(내 일생은 책임감 하나로 설명이 될 만큼 책임감 하나로 똘똘 뭉친 1인이다. 그로 인해 주변이 누리는 것이 많지만 정작 나는 그 책임감에 둘러싸여 그 무게에 눌리며 살았다는 걸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이야기하도록 하자.)


갖은 책임감이라는 십자가를 진 사람 마냥 혼자 질질 끌고 가는 마누라가 있으니 남편은 자신의 존재의 필요성도 권리도 없이 집안에서 아주 안락한 편함을 누렸던 거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그 꼴이 보기 싫어 남편에게 항상 우거지 상을 내민 꼴인 거다. 근본 있는 우거지 상인 거다. 그 근본을 내려놓으니 남편이 우거지 상이 되어 자신에게로 책임을 돌린다. 참 오래 걸렸다. 이렇게 권리를 넘기기까지 말이다.



부부라는 이미지에 갇혀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살아온 세월이 깊다. 그저 참고 이해하고 넘어가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살면 살수록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부부라고 하지만 부부마다 성격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에 보편적일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주변 흔히 보이는 부부의 모습만이 전부인 줄 알고 그 모습에 끼워 맞추며 그 기준에 맞지 않은 우리 부부가 잘못된 거라 여기며 정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갖추려 갖은 애를 썼다. 어쩌면 밖에서 보기에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인 남편, 현모양처스러운 아내로 비쳤을지도 모를 모습을 밖에서는 그러고 다녔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 진짜 부부가 될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내로서 결혼13년간 애쓰고 노력한 결과로 내린 결론은 이거다. 서로 이해하고 노력하며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부부는 흔치 않고 어느 한쪽이 인내를 감수하거나 어느 한쪽이 기대가 없어야 함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 사이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결국 아내인 나 스스로 상처를 덜 받도록 단단해지는 것, 그리고 나를 지키는 힘을 키우는 것, 결국은 그것이 우리 부부 사이를 원만하게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건 두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다. 그저 스스로 자신을 모르고 그러기에 상대를 알 수 없음에 그저 행복해 보이는 부부 모습에 비춰 좋고 나쁨을 가늠하며 살뿐이다. 내가 남편에게 우거지상을 쓰고 있었다고 불행한 결혼 생활이 결코 아니다. 남편 역시 마누라가 우거지상만 쓴다고 해서 본인의 잘못으로 여기지도 않을뿐더러 마누라의 불행이라 여겨 마누라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는다. 그저 그와 나 사이에는 이렇게 투닥였다 어르고 달랬다 웃었다 찡그렸다 할 뿐이다. 그저 우리 부부는 그렇게 살뿐이다. 그게 우리 부부의 모습이고 말이다.


길다가 다정해 보이는 부부가 있으면 매번 신기하게 바라보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며 괜히 흉내내려 남편의 팔짱을 껴보기도 하고 지그시 바라봐 보기도 했다. 물론 바로 고개를 도리도리 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내 머릿속에 박힌 부부의 고정된 이미지에 우리 부부를 끼워 맞추려 했던 거 같다. 물론 나도 서로 지그시 바라보며 다정한 말투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이고 싶다. 노력을 아직도 아끼지 않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 남편은 지금 이대로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이고 그 부부들에게 눈길이 안 가니 나 혼자 다정한 척 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엄마 같은 마누라가 갑자기 애인 같은 마누라가 되어버리면 남편 입장에서 당황스럽지 않을까?


이렇게 남편에 대해서 또 우리 부부에 대해서 이해의 시간을 건너며 단단해진다. 결혼 생활이 그저 유지되는 게 아니다. 하루하루 그와 나의 사유가 쌓이고 쌓이며 더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며 단단해질 뿐이다. 틈이 나면 메우는 시간이 올 것이고 메우고 또 벌어지는 것이 부부 사이이다. 그 간격의 차이가 커지면 그제야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 부부문제로 골치가 아프다면 두사람의 행복이 내 손끝에 이미 닿아 있는데 너무 저만치 있는 행복에 머물러 있는건 아닐까?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별들을 가질 수 있는데 왜 달을 향해 손을 뻗나요?
-영화 <가라,항해자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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