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이야기
오랜만에 남편과 산책을 했다. 평소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뿐인 남편이라 건강 차원에서 쉬는 날이면 같이 산책이라도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엉덩이 무거운 남편이고 나 역시 굳이 귀찮게 어르고 달래 가며 산책길을 나서고 싶지 않기에 내가 편한 쪽을 선택한다. 오늘은 웬일인지 남편이 별소리 없이 나선다고 해서 강아지와 함께 걸어서 30분 거리 공원으로 향했다.
워낙 말이 많은 남편이긴 한데 최근에 시부모님이 아프시면서 부쩍 말수가 줄어들긴 했다. 오늘도 별 의미 없는 말을 건네고 나 역시 의미 없이 대꾸할 뿐이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머릿속에 맴도는 말들이 입안으로 삼켜진다. 왜 그럴까? 왜 굳이 말을 삼키며 건네지 못할까?
모든 관계에 어려움이 없지는 않다. 다가서기보다는 삼키는 편이고 상대 쪽에서 다가와도 내 선을 벗어나지 않는다. 다가왔던 이들 중에 이런 태도로 서운해 한 이도 있고 그걸 표현한 이도 있었다. 사실 가까워지고 싶은 관계였다면 내 쪽에서 적극성을 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까지 나 스스로 통과해야 하는 검문소가 너무도 많다. 대부분 그 검문소에 걸려 난 친해지는 걸 중단한다.
가장 큰 이유는 관계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내가 이러니 너도 이랬으면 좋겠다는 주의이고 내가 진실한 만큼 너도 똑같이 나에게 진실했으면 좋겠다는 전제가 기본적으로 합의되어야 한다. 내 선에서 상대에게 그럴만한 여지가 느껴져야지만 나는 한 발자국 다가선다. 하지만 그런 적은 거의 없다. 없을만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그럴만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는 그걸 기준으로 삼는 나이기 때문이다.
남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마음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가 잦다. 그렇게 그 사람을 대해왔기에 그렇게 대해야 한다고 내 안의 목소리가 자꾸만 방해를 한다. 오늘은 반대로 행해보고자 목구멍까지 말이 닿았지만 내 검열에 또 넘어진다.
결혼생활 내내 남편과 친밀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남편 탓이라 여겼다. 남편이 고치면 되는 거고 남편이 바뀌면 다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편이 아닌 나의 문제라는 걸 마주한다. 어쩌면 남편과의 관계조차 겹칠 수 없는 막 하나를 두고 남편을 대하는 것이다. 다행히 남편은 그런 나의 막과는 상관없이 한결같은 사랑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받아주는 입장에서 자꾸만 걷어차 버리니 남편도 딱 그 선이 생겨 버린다. 젊을 때와는 또 다른 사랑이다.
이제는 내 선에서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책임을 양도해야만 한다. 과한 책임감에 둘러싸여 남편의 사랑을 받기보다는 그 사랑을 지켜내거나 혹은 유지하는 데 별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며 살아왔다. 이 역시 남편의 의존 성향으로 인해 나 스스로 짊어진 책임감의 무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의 의존 성향을 증폭시킨 건 내 책임감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 주위에 성인이면서도 홀로 서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과잉 책임감을 가진 이들이 가까이 있을 것이다. 의존적인 사람의 문제는 당사자의 문제인 동시에 과잉 책임감을 가진 가까운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의존과 과잉 책임은 쌍으로 존재한다. (관계를 읽는 시간/문요한)
나 스스로 책임을 전가하고 내 무의식에 응답할 때 나는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불안을 떠안고 있어야지만 안정이 되는 이 감정은 순전히 나 스스로 옭아매는 해석일 뿐이라는 걸 안다. 그 감정을 너무 오래 떠안고 살았던 터라 그것이 나이고 또 내가 느끼는 것이 그임을 사실인양 믿으며 거미줄 쳐진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마흔이 넘은 후에 스스로 외면하거나 하지 못한다 했던 일들을 의도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일은 남편과의 관계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튀어 나가 버리는 관계의 패턴을 벗어버리고 그 반대로 행동하고 말할 것이다. 오랫동안 억눌렸던 것을 이제는 벗어던지고 싶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결국 남은 건 부부만이라는 걸 갈수록 느낀다. 서로에게 외로운 섬이 아닌 기댈 수 있고 비춰줄 수 있는 등대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