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엄마는 불안을 떠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엄마가 눈 감는 순간까지도 장성한 자식 걱정을 하는 것이 엄마 마음일까?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엄마는 불안과 가장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보통 친정은 사랑이라며 대부분의 딸들이 친정 예찬론을 펼치지만 딸로서 나는 전혀 친정이 편치 않다. 살갑지 않지만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라 친정엄마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유 일터다.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라는 건 비단 성인 전에만 해당사항이 아니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해서 내 아이를 낳고 키우며 엄마라는 같은 입장의 처지가 되어도 여전히 딸들은 엄마의 감정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친정엄마는 치매 초기를 오래 앓고 계신 외할머니를 모시고 있고 그에 못지않게 알콜성 치매를 겪고 있는 친정아빠까지 모시게 되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외관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내일모레가 칠순이라 여겨지지 않을 만큼의 에너지가 넘치는 친정엄마는 한마디로 두 노인을 모시고 사는 거나 다름없는 셈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친정에 갈 때마다 엄마는 우거지상이고 아빠 없는 틈을 타 아빠흉을 보기 바쁘다.
평생 아빠에게 눈만 흘기는 엄마를 보고 자란지라 대수롭지 않기도 하지만 결혼생활 43년이 넘도록 저렇게 미운 정만 쌓고 사는 게 사실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처음으로 엄마의 이 문제는 아빠가 눈 감아야지만 끝나겠구나 싶었다. 이건 진심이다.
아빠 흉을 보다 아빠가 들어오니 간밤에 꾼 꿈을 이야기하신다. 남동생이 꿈에서 그렇게 울더란다. 한밤중이라 전화도 못하고 아침에 전화를 하니 역시나 살갑지 않은 남동생은 아들 걱정은 말고 엄마나 잘 살라며 걱정 말라고 했단다. (참고로 남동생은 올해 마흔으로 진작에 비혼을 선언하고 욜로족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러더니 난 그놈 걱정은 안 한다고 내 걱정은 오로지 너 하나라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신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애가 셋이나 돼서 어찌 살란지 내가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온다 하시네.
애가 셋이라... 애가 셋이라...
엄마 보기에 집도 없어서 걱정이고 애가 셋이라 돈도 많이 들어서 걱정이고 애셋은 언제 키우나 싶은 게 온통 딸이 애가 셋이라 내가 걱정도 세배란 소리로 밖에 안 들린다. 정작 애셋을 키우는 난 큰 걱정이 없는데 말이다.
애셋은 다행히 내가 심고 뿌린 거 그 이상으로 거둘 만큼 여러모로 잘 자라고 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으니 뭘 더 바라겠나? 거기에 초등학교 6학년인 큰아이는 예상외로 공부를 잘해서 오히려 엄마인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다. 여러모로 늦은 감이 있던 둘째 딸은 4학년이 되더니 부쩍 스스로 준비물도 챙기고 공부에 대한 의욕을 보이며 작년부터 자기 주도 학습이 될 만큼 공부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 거기에 책을 좋아하고 글도 잘 써서 엄마인 나도 놀랄 정도이고 미술 실력도 제법 있는 편이다. 7살 막내는 형, 누나에 치어 도통 학습은 신경은 못 써주는데 코로나로 가정보육이 늘어나면서 하도 심심해해서 한글이랑 수 교재를 사서 몇 장씩 푸는데 수 계산이 남다르다.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셈이 되어서 엄마인 내가 오히려 놀라 정도다. 그거뿐인가? 아이 셋이 엄마인 나를 얼마나 위해주고 아껴주는지 가끔은 황송할 따름이다.
아이 셋 키우며 내 시간이 부족한 거 말고는 난 전혀 아이 셋으로 인한 걱정이나 근심은 덜하다. 그런데 그 짐을 엄마가 대신 지고 있나 보다. 사실 아이 둘일 때만 해도 엄마는 전혀 내 살림이나 육아에 관심이 없으셨다. 가끔 아이를 맡길 일이 생기면 엄마는 아빠한테 항상 떠넘기며 엄마일을 하기 바빴다. 그리고 아이 둘일 때 엄마는 나에게 물질적인 지원이나 그 외 아이들 용돈이나 선물 같은 건 일절 없었던 분이다. 그러던 엄마가 내가 애가 셋이 되고는 달라지셨다.
집에 가전제품을 새로 바꾸거나 할 일이 생기면 '엄마가 사줄게.'라는 말을 입에 달고 하셨고 언젠가부터는 꼬박꼬박 다달이 용돈을 주신다. 이사 때마다 기천만원씩 지원을 해주시니 나로서는 감사하면서도 하필 애가 셋이라 엄마가 날 불쌍히 보나 하는 마음에 아리송한 기분이 든 적도 없지 않다. 그만큼 애가 셋이기 전에 엄마는 나에 대해서 전혀 지원을 할 생각도 필요도 못 느끼시던 분이 애가 셋이 되면서 안 하던 지원을 하시니 나로서는 애가 셋이라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엄마가 확인 사살하듯 애가 셋이라 난 너 걱정뿐이다 하시니 애가 셋인 난 자동적으로 불효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오늘뿐만 아니라 애가 셋이라 부모님이 걱정이 많으시구나는 애가 셋이 되고 종종 느꼈다. 시댁에서도 역시 그런데 시댁은 애가 셋이라는 핑계로 요리조리 빠질 구멍이 많아서 내 나름은 편했던 거고 걱정은 하시지만 지원을 하시는 만큼의 마음까지는 아니시다. 아무래도 시댁은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친정은 바로 옆이니 자주 보기에 현실적인 걱정이 더하시는 거 같긴 하다.
아 하필 왜 애가 셋이라 부모 걱정을 시킬까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고 차라리 친정과 멀리 떨어져 이사를 할까도 생각은 했다. 시댁처럼 거리가 있으면 아무래도 눈에 덜 보이니 걱정도 덜하지 않으실까 싶기도 해서다. 이 와중에 친정아빠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 뭐 그리 걱정이 많냐며 볼멘소리를 하신다.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아빠들보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자식 걱정은 싸매고 하시기는 하는 거 같다. 주변을 봐도 자식 걱정 안 하는 엄마는 보지를 못한 거 같다. 그냥 불현듯 오늘 일을 브런치에 써봐야지 하면서 한편으로 다음에 엄마를 만나면 '엄마 걱정만큼 날 위해 기도를 많이 해 그럼 그 복이 다 나한테 올 거 아냐?'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싶었다. 걱정만 하지 말고 걱정만큼 기도를 하면 내가 얼마나 잘 되겠나?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딸을 위해 손주 셋을 위해 매일 기도하시는 걸 안다. 그저 엄마 걱정 싸매고 불안해하지 말고 그 불안 기도로 떨쳐내라고 그냥 위안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껏 살면서 친정엄마가 불안이 많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건 최근에서야 알았다. 그전까지는 엄마는 자식한테 관심도 없고 엄마하고 싶은 거만 다 해야 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지 자식 걱정에 밤잠 못 이루고 불안 해하시는 건 정말 눈곱만큼도 티를 안 내셨던 분이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워낙 강한 분이라 티를 내고 싶지 않으셨을까? 감정에 대해 배운 적이 없어서 불안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셨던 걸까? 그런 엄마가 연세가 들고 더 이상 자신의 강함이 약이 되지 않는 순간에 딸에게 약함을 드러내기 시작하셨다. 아빠에 대한 엄마의 마음도 그렇고 딸인 나에게 갖는 걱정과 불안도 더 이상 엄마선에서 감당이 되지 않기에 자연스럽게 흘리시는 것이다. 어쩌면 다행이다. 그렇게 엄마의 불안을 흘려보내며 엄마의 불안이 조금은 옅어질수 있기를.
하필 애가 셋이라 엄마 걱정 끼치는 불효를 범하게 됐지만 어린 시절 고팠던 엄마의 정성적 보살핌을 이렇게라도 메우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무턱대고 긍정적인 친정아빠 말처럼 내 딸은 대기만성형이여 하시니 마흔셋인 내가 언제 도대체 대기만성 빛을 보련 지는 모르겠지만 엄마 곧 그리 될 테니 그때는 엄마 걱정 다 날려지길, 내가 더 열심히 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