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열한 살 딸아이와 홈트를 한다. 엄마 닮아 제법 살집이 있는 아이고 정적인 활동을 주로 하기에 코로나 이후 홈트를 종종 하고 있다.
홈트를 하면서 '내일은 살이 빠졌겠지?' 부푼 마음으로 자신이 한 노력에 대한 보상이 응당 주어질 것을 믿는 아직은 순수한 열한 살이다.
오늘도 엄마와 재미나게 홈트를 하는 와중에 일곱 살 막내가 던진 레고 조각이 하필 둘째 아이 발을 관통했다. 순간 '악'소리를 지르며 화가 난 채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둘째.
가족들은 별일 아닌 일에 과하게 화를 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딸은 일련의 사건이 이런 식으로 벌어진다.) 딸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말을 할지 뻔하기에 바로 막내에게 누나에게 가서 사과하라고 한다.
역시나 막내도 항상 뻔한 시츄에이션을 누나로부터 여러 번 겪은지라 '사과해도 안 받아주는데 뭘 해'라며 방문 밖에서 '누나 미안해'소리만 남기고 상황을 종료한다.
역시나 항상 겪는 일이라 괜히 가서 위로한답시고 잔소리만 늘어지고 둘째 행동에 대한 교정만 나불거리는 엄마임을 알기에 그저 둘째 스스로 삭히고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새로운 홈트를 하자며 은근슬쩍 분위기를 바꿔보려 하지만 단단히 화가 났는지 눈물 자국을 보이며 방에서 나온다.
그러고는 동생 때문에 내가 운동도 못하고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 너무 화가 난다며 언제나처럼 비련의 여주인공을 자처한다.
워낙 상상력이 좋고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쓰는 아이인지라 상황을 오버해서 모노드라마를 찍는 게 둘째 화풀이 방법이다.
전에는 아이가 왜 상황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남 탓만 하는지 이성적인 엄마로서 너무도 이해가 되지 않아 아이를 위로한답시며 일장 연설을 구구절절 읊어댔다.
하지만 어느 날 '왜 아이가 보인 반응에 대해서 그대로 수용을 하지 못할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내가 올바른 교정이랍시고 구구절절 맞는 소리를 해도 둘째의 모노드라마는 아가 때부터 지속된 것이기에 차라리 아이 감정을 수용해 주는 편이 빠른 길이었다.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기질이 있는 아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다운 상황에 대한 해석일 수도 있겠구나를 인정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그전까지는 항상 저렇게 상황을 해석하고 곡해하는 아이가 혹여나 부정적 성향으로 자라지 않을까 안 그래도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인데 더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엄마의 불안과 염원을 담아 아이를 타이르기 일쑤였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아이가 겪은 상황에 대한 그저 반응일 뿐인 거다.
오늘은 막내 동생을 탓만 하기보다는 막내로 인해 상황이 이렇게 되어 자기 자신이 운동도 못하고 그 시간을 까먹어버린 것에 대해 후회를 이야기한다. (오잉? 많이 발전했는걸?!)
나름 심리학 공부하는 엄마답게 '상황보다는 그 상황에 대한 해석이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라는 어쭙잖은 멘트를 날린다. (미안하다. 엄마는 전형적인 ESTJ이다.)
상황에 대해서 그 발판의 주역을 탓하고 나무라는 것 이상을 아이는 드디어 느낀 것이다. 항상 이런 상황을 겪을 때마다 엄마의 주옥같은 멘트는 '이러면 너만 손해야.'라는 것이었는데 스스로가 손해일뿐이라는 것을 드디어 깨친 걸까?
오히려 막 달래고 상황을 무마하려 갖은 애를 쓰기보다는 그 아이 스스로 상황에 대해서 돌아볼 시간이 항상 필요했던 거 같다.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쟨 저런 애야. 왜 또 저래?'라는 태도로 아이를 바라본 것이 못내 죄송스럽다.(미안한 마음 그 이상이다.)
둘째를 키우면서는 항상 느끼게 된다. 이 아이는 이 아이만의 때가 있다는 것을. 엄마는 큰아이 혹은 다른 아이의 속도감이 아닌 둘째만의 속도감을 나도 같이 즐겨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 속도감을 지지해줄 때만이 그 아이 스스로 깨고 나오는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오늘 사건을 통해 또 한 번 느낀다.
그리고 상황에 대한 반응 역시 아이마다 혹은 어른마다 다르고 그걸 해석하는 데 있어 결코 맞고 틀림이 아닌 그저 자기 스스로 그것이 맞든 지 틀리던지 박박 우겨보고 나서야 스스로 진실에 가닿는 것도 말이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고 누군가의 조언이나 충고도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되는 풍월일 뿐이다. 오롯하게 그 상황에 스며들고 그로 인한 스스로의 진짜 손해를 알 때 만이 상황을 다르게 보는 사고가 생기고 그로 인한 액션 역시 달라진다.
'얜 이런 얘야'라는 가면을 덧 씌울수록 그 아이는 정말 그런 애가 되어 버린다. 그런 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아이에 대한 해석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