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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May 18. 2022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 마음의 온도는 어떠신가요? 따뜻함으로 늘 온기를 담고 있는 순간도 차가움으로 시린 마음의 순간을 지날 때도 메마른 마음때문에 감정 곳곳에 금이 가기도 하는 당신 마음의 적정 온도를 선물 할 책 한권 소개해 드릴께요.



정여울 작가님은 작년 '마흔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어요. 제가 딱 쓰고 싶은 문장력을 정여울 작가님의 책에서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쁘게 작가님 책을 모조리 읽어 나간 기억이 나네요. 얼마전 도서관에서 정여울 작가님의 신작인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았다>이 여봐란듯이 제 눈에 딱 들어와 냉큼 집어와서 읽기 시작했지요.



전체적인 맥락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주축으로 작가님만의 해석을 담은 글이랍니다. 정여울만의 월든이라고 하면 될까요?





*문제 하나에 지나치게 골몰하여 자꾸만 자신을 탓하는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가 그때가 바로 산책이 절실해지는 시간이다
*나의 산책은 나로부터 도망치는 발걸음이다
*때로는 나의 진짜 서재가 책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리의 풍경 속에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그렇게 아주 평범한 산책을 통해서도 서로에게 의미있는 타인으로 거듭난다
*걷기라는 내 일상 속의 작은 여행에서 돌아오면 비로소 더 깊고 더 풍요로워지고 더 향기로운 삶의 주인공인 나를 발견하게 된다


소로는 하루에 네시간을 산책했다고 해요. 그에게 산책은 걷는 행위뿐 아닌 사색의 시간이고 사유의 발걸음이었을 거에요. 자연속에서 자연과 소통하며 오롯이 자연안에서 하나가 되어 살고자 했던 소로에게 자연이야말로 가장 다정하고 따뜻한 친구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도 매일 산책을 하는 편이랍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 산책을 가지 않으면 발에 가시가 돋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물론 반려견인 여름이를 위해 산책을 빼놓지 않고 하려는 것도 이유일 테구요.



저에게 산책의 시작은 나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육아라는 현실에 오로지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내 발로 걷는 것 뿐이었답니다. 첫아이를 낳고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출산으로 인한 자아의 상실감이 스스로 감당하기 벅찼던 거 같아요. 지금 살고 있는 곳곳에 그 방황의 발걸음이 여기저기 묻어 있지요. 그때는 친정에서 같이 아이를 봐주시던 때라 순하디순한 큰아이를 맡기고 정말 정처없이 여기저기 걸어 다녔답니다. 지금도 그 어느 곳에서의 제 모습이 머릿속에 순간처럼 찍혀 있어요. 걷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많이도 다독였던 거 같아요. 이해할 수 없고 이해되지 않은 나의 날 것의 감정들을 정리하는데 바람을 거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통해 모두 털어냈던거죠. 방황의 끝은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해야하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라는 답을 내고 드디어 제자리로 발걸음을 옮긴답니다. 그 이후 방황의 발걸음은 셋째를 낳은 후에 또 한번 겪게 되지만 다행히 내 안의 불순물을 털어내는 과정이었기에 길지 않은 시간에 끝을 낼 수 있었답니다.





소로는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충만히 꾸려 나갔답니다. 자기 삶에 자부심을 가지고 만족하며 사는 삶은 세상안에 있지 않아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자신의 삶을 매일 살아가면서도 자신안에서 자신의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밖에서 그 삶을 완성하려 애쓴답니다. 자신 안에서의 삶과 자신 밖에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셨나요? 자신 밖의 삶은 살수록 충분하다고 느끼기 보다는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상실로 항상 빈구석을 느끼게 한답니다.





어쩌면 내 삶의 가장 큰 방해물은 나 자신이 아닐까 싶어요. 나 스스로를 알지 못한채 나의 삶을 지탱하고 살아간다는 건 나라는 방해물에 자꾸만 넘어질 수밖에 없으니깐요. 나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근력을 기르는 것의 최초는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그 안의 해결되지 못한 무수한 질문에 대한 나의 앎을 찾아가는 것. 그것만이 나에게 충실하고 충만한 삶을 가꾸는 기초가 된답니다.



소로의 문장


소로의 문장


나 스스로를 설명하지 못하는 삶은 타인이 나를 설명하도록 하는 나락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저 역시 나를 설명하지 못한 채 나를 정의하는 그 누군가의 말들로 가슴 아파하며 나를 더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어요. 그러던 어느날부터 내가 설명하지 못한 나를 책에서 말해주더군요. 그렇게 저는 책을 통해 잃어버린 혹은 찾지 못한 나에 대한 설명들을 하나씩 찾아냅니다. 내가 나를 설명할수 있을 때 더 이상 타인의 말은 그저 말뿐이라는 걸 알게 된답니다. 그 사람 역시 자기 스스로는 설명하지 못한 채 남만 설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깐요. 책 속에는 길도 있지만 나를 설명해주는 설명서도 담겨 있답니다. 나를 도통 알지 못할 때 책을 통해 나의 대한 설명서를 찾아내시길... 비로소 말이지요.




내 안의 적정한 온도를 찾아 홀로 떠난 바다



자신만의 적정 온도가 있을 거에요. 그 온도를 유지하며 살고 싶지만 아니 살아내고 있지만 여러가지 환경적인 요인으로 그러지 못할 때도 있잖아요. 저는 육아에 치일때 저만의 온도를 찾지 못하고 뜨거웠다 차가웠다 메말랐다 반복하며 오르락내리락하는 온도에 정신이 나가버리는 순간이 아주 가끔 찾아와요. 그럴땐 저의 적정한 온도를 찾기위해 과감하게 일탈을 합니다. 올초에 부쩍 그랬던거 같아요. 아이들 2개월이 넘은 겨울방학내내 숨쉴틈 없이 돌아가는 육아환경이 미치고팔짝 뛰겠더라구요. 주말엔 온 가족과 함께 지지고볶는게 일상이고 저희 아이들은 워낙 엄마손길에 익숙한 아이들이라 아빠랑만 있으면 불안해해요. 아빠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에 엄마만큼 세심하게 챙겨주지 않으니깐요. 그런면 때문에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긴장감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힘들어도 꾸역꾸역 집안에서 아웅다웅하며 저만의 숨쉴 틈을 찾아 요리조리 동굴을 파기도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발 진짜 동굴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무작정 떠났지요. 한번은 춘천으로 한번은 강릉으로 그렇게 나홀로 도보여행을 갔답니다. 물론 당일치기입니다. 함께하기 위해 홀로 있어야 한다는 것,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많이 요구되는 건 급변하는 시대만큼 우리들 역시 변하길 바라는 것, 변화에 속도에 발맞춰 앞서가면 잘 사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 겁을 주는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세상을 위해 사람이 존재할까요? 사람을 위해 세상이 존재할까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같은 질문이려나요?


그 어느때보다 개인의 주체성이 떨어지는 시대는 맞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때보다 개인의 주체성이 갖춰야 할 때이기도 하구요. 자신을 알지 않고서는 일평생  나침판이나 등대없이 바다에 떠도는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의 주체성을 찾고 구하기 위해 세상이 아닌 오롯이 날것 그대로의 것만을 정직하게 내어주고 받아내는 자연속으로의 산책 어떠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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