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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May 13. 2022

그림책/웅덩이를 건너는 가장 멋진 방법


오늘은 그림책 한권 소개하려고 해요.


<웅덩이를 건너는 가장 멋진 방법/수산나 이세른 글/마리아 히론 그림>


한소녀 앞에 웅덩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어요. 소녀는 웅덩이를 보고 고민을 한답니다. 웅덩이를 건널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며 말이지요. 신기한건 그 짧은 순간에 소녀는 아홉가지나 되는 방법을 떠올린다는 거에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인생의 웅덩이를 만났을 때, 딱 여러분 앞에 커다란 혹은 곳곳에 크고 작은 웅덩이가 당도했을때 어떤 기분이신가요? 그 웅덩이를 건널 방법을 생각하시나요? 그저 그 웅덩이가 알아서 마르길 기다리시나요? 혹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시나요? 혹은 여러방법을 통해 건널 시도를 하시나요?



저는 매일매일 크고 작은 웅덩이를 마주하는 거 같아요. 마주하게 되는 웅덩이에 불만이 차올라 짜증이 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그 웅덩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머릿속에 마구 굴리지요. 머리는 대책을 간구하고 마음은 종 잡을 수 없는 들뜸을 어떻게든 가라앉혀 보려고 마인드컨트롤을 한답니다. 사실 요즘이 딱 그래요. 제가 판 웅덩이보다는 환경으로 인해서 파헤쳐진 웅덩이가 곳곳에 너무 많거든요.





소녀는 그 웅덩이 넓이를 가늠하고는 폴짝 뛰기도 한답니다. 소녀는 결코 마구잡이로 웅덩이를 뛰어 넘지 않았어요. 스스로 넘을 수 있는 크기인지 확인한 후에 캥커루처럼 폴~짝 뛰어 오른답니다.


저 역시 그래요. 우선 웅덩이를 살핍니다. 내가 감당이 되는지 말이지요. 감당이 되어서 폴짝 뛰는 정도라면 에잇 이정도야 라며 번쩍 넘고 말아버리지요. 아마 이정도는 일상 가운데 마주하는 가벼운 스트레스 정도이지 않을까 싶어요. 스트레스는 병이 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가볍게 뛰어오를 정도는 오히려 긍정적 효과를 누릴수도 있거든요. 소녀가 크기를 가늠한 후 웅덩이를 폴~짝 뛰어 넘었을 때 기분을 상상해 보세요. 저는 상상하는 거 만으로도 가슴이 살짝 콩닥거렸답니다.




소녀는 폴짝 넘어간 후 자신감이 생겼나봐요. 더 큰 웅덩이를 만나도 걱정이 없다며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하네요. 그건 바로 징검다리를 만드는 것이랍니다. 건널 수 없는 큰 웅덩이 곳곳에 돌을 놓아 그 돌을 건너면 되는거지요. 비록 돌을 고르고 옮겨서 웅덩이 사이사이 두어야 하는 문제는 있지만 큰 웅덩이를 건널수만 있다면 이정도쯤이야 감당이 되지 않을까요?



소녀는 그 다음 방법으로는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건너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웅덩이를 만났을때 혼자 짊어지려 하나요? 혹은 누군가와 함께 나눠지시나요?


저는 혼자 짊어지는 것에 너무 익숙한 사람이에요. 한편으로 책임이 너무 강해서 그 책임을 가까운 이와 나눠 질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답니다. 아이셋을 키우면서도 그랬어요. 애는 저 혼자 낳고 혼자 키우는게 아닌데 육아의 모든 짐을 제가 다 책임져야 하는양 떠안고 살았답니다. 혼자 짊어지는 육아는 곧 누군가를 원망하고 탓하는 결과를 낳게 된답니다. 남편말이지요. 제가 혼자 떠안고서는 결국 탓을 하는거죠. 소녀처럼 친구의 자전거를 빌려서 같이 타고 넘어갈수도 있는데 말이죠. 비록 자전거로 건너면서 웅덩이 물이 튀긴 할테지만요. 저 혼자 고고한척 웅덩이물을 단 한방울도 뭍히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고상을 떨었던거죠. 속은 웅덩이물이 들어차는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이제 소녀는 웅덩이 위 그네에 올라 그 웅덩이에 발이 닿지 않게 살며시 들고 그네타기를 즐깁니다. 이건 분명 즐기는거죠. 발을 들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긴 하지만 소녀는 분명 즐기며 그네를 타고 있답니다.



어머나 어느새 소녀는 웅덩이에 '풍덩'하고 말아요. 엉엉엉 울음이 나버립니다. 어쩌죠? 그런데 소녀는 이내 그 웅덩이를 첨벙첨벙 뛰어 오릅니다. 설마 포기한걸까요?



이내 소녀는 물웅덩이를 장난삼아 즐기기 시작합니다. 이왕 빠지게 된거 더 빠지며 온몸으로 웅덩이 물을 받아내는 거죠. 빠진김에 얼마나 더 높게 뛰어 오를 수 있나 시험도 하면서 말이죠.



어쩌면 웅덩이에 푹 빠져봐야 내가 날아오를 수 있는 높이를 감안할 수 있는게 아닌지 몰라요. 웅덩이를 피하거나 웅덩이를 건널 생각만 하면 딱 그 웅덩이 정도에만 나는 머무르는 거에요. 그런데 그 웅덩이에게 정면 돌파하는 거죠. 내가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저는 위험을 감수하기 보다는 감내하며 살았어요. 두려움이 많았거든요. 그 두려움이 용기가 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답니다. 소녀도 그랬을거에요. 웅덩이에 풍덩 빠진 순간 너무 두려워 눈물이 마구 쏟아졌지만 이내 용기를 내게 되잖아요.



우리는 어쩌면 두려움때문에 위험에 맞서기보다는 차라리 그 위험에 대한 변명을 자꾸만 늘어놓으며 나 스스로를 가둬버려요. 그럴수록 내 웅덩이는 더 깊고 넓어진다는 걸 모른채 말이에요.


웅덩이는 피하라고만 있는게 아닌 건너고 푹 빠져보라고 우리 인생 앞에 당도하는지도 몰라요. 전 여전히 위험에 대해 두려움이 앞섭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온전히 받아내기로 했어요. 그 두려움이 용기가 되고 그 용기에 따른 자신감이 생긴다는 걸 조금은 알았으니깐요.




지금 여러분이 마주하고 있는 웅덩이, 어떻게 하실거에요? 우리 한번 용기내어 건너보면 어떨까요? 소녀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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