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미

by 진주


요즘 몸이 좀 안좋아서 의사선생님이 주말내 절대안정을 취하라고 하셨지만 아이셋 키우는 엄마에게 절대안정은 그저 사치일 뿐이죠. 그런데 금요일 저녁에 퇴근한 아빠를 보자마자 큰아이가 "엄마, 아파요." 해 준 덕에 남편의 마음만 큰 배려로 (행동은 작고 마음만 큰)비교적 평안하게 보낸 주말이었답니다.


토요일 오후 집에서 쉬고 있는데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오네요. 친정엄마가 주말에 전화하시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 '심심하셔서'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막 놀아드리거나 하지는 못하고 대부분 엄마가 아쉬워 하며 끊는 일이 다반사죠.


내일 모레 칠순인 엄마와 내일 모레 구순인 외할머니

오늘 엄마의 용건은 저희 아파트 뒷편이 장미원이라 매년 이맘때 장미원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장미원에 꽃 많이 폈지?' 하십니다. 집에서 푹 쉬고 싶었지만 엄마의 요청에 기꺼이 응해봅니다. 그렇게 엄마는 외할머니를 모시고 저희집 근처 장미원으로 오셨어요. 혼자 보기 아까우셨는지 근처에 사는 교회친구분도 불러서 같이 사진을 찍었답니다.


야외에 나왔으니 음료타임 해줘야지요. 장미원에 유일한 카페인 '응봉감성'에서 취향껏 음료를 테이크아웃 합니다. 엄마는 굳이 음료를 뭐하러 먹으면서 돈을 쓰냐고 하시지만 돈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거죠. 젊은 감성 느껴보시라고 음료 모아서 사진도 찍어봅니다.







엄마도 할머니도 여자라서 그럴까요? 꽃을 보면 항상 좋아하십니다. 엄마는 그런 내색 안하신건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저희집 오실때마다 '넌 꽃도 사니?'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전 워낙 꽃을 좋아해서 가끔 저를 위해 사기도 하고 남편이 꽃시장 가서 사오기도 하거든요. 엄마의 그 한마디가 마음에 참 오래도록 남아서 그 뒤로 꽃을 한단씩 사서 드려요.


길가에 피는 꽃조차 볼 여유가 평생 없으셨고 그렇기에 꽃을 산다는 건 더더욱 생각을 못하고 사시다 딸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모로 자극을 받으신 저희엄마에요. 마음에서 느끼는 대로 저에게 표현도 하시기에 저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계기도 됐구요.



어느날엔가 길가에 핀 꽃 사진을 찍어서 제 카톡으로 보내신 적이 있는데 그때 참 마음이 많이 아렸답니다. 여러 감정이 교차했던 거 같아요. 열심히만 살아오셨던 세월인데 열심히만 살았지 요령은 없으셔서 놓치신게 참 많으신 저희 부모님이에요. 그 아쉬움이 노년이 되어 갈수록 짙은 후회로 부모님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더라구요. 그래서인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저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아서 바로 옆동네 친정임에도 거리두기를 한답니다.


워낙 강인한 성격의 엄마였는데 치매인 할머니를 모시고 또 인생의 여러가지 후회로 뒤늦게 회한의 찬 나날을 보내고 계시는 아빠까지 엄마는 넘치고 넘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어찌 하지 못해 마음 둘 곳이 없으니 저에게 어느날부터 터놓기 시작하시더라구요. 저는 엄마의 넋두리에 대한 책임을 져주고 싶은 마음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는데 어느날 깨달았어요. 그건 엄마가 해결할 엄마 스스로에게 주어진 질문이라는 걸요. 그리고나서는 한결 제 마음은 편해졌답니다. 어쩌면 엄마의 행복하지 못한 시절에 대한 보상을 제가 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엄마와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던 거죠. 여러 공부를 통해 그 과정을 스스로 풀어내며 비로소 엄마와 정신적인 분리를 이루었어요.


제가 자주 꾸는 꿈 중에 하나가 친정엄마에게 악다구니를 쓰는 꿈이에요. 현실에서는 전혀 할 수 없는 한풀이를 꿈에서 했던거죠. 특히나 친정에 대한 무거운 마음에 눌릴 때, 제가 처한 현실의 짐이 무거울 때 주로 꾸는 꿈인데 어제 꿈의 양상이 완전 달라졌어요. 드디어 제가 엄마와의 관계에서 분리가 되었구나를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꿈이었죠.


엄마와 딸 사이이기에 딸은 엄마와의 심리적인 거리두기에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독립된 인격체로서 서로가 연합할 수 있는 최소의 조건이 각자 스스로 독립이 되어야 한다는 거에요. 엄마의 인생이 안타깝고 그 인생에 대한 보상을 딸인 내가 짊어지고 싶더라도 엄마를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는 그 마음의 짐을 내려놔야 했던거에요. 그래야지만 각자 짊어진 인생의 질문을 스스로 마주하고 비로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을 때 비로소 서로 하나로 연합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는 거지요.


저희 엄마는 참 강하시고 책임감으로 평생 살아오신 분이에요. 아직도 그 책임감을 내려놓지 못한채 자신의 인생을 어쩌면 그 책임의 굴레에 저당잡힌채 살아가고 계시지만 딸인 저는 엄마 이전에 한여자로서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답니다. 엄마를 진정으로 이해해야지만 엄마 인생의 안녕을 빌어줄 수 있으니깐요.



KakaoTalk_20220522_232341414.jpg?type=w1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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