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아픈 엄마와 딸

by 진주

엄마와 딸은 여전히 아프고 아프다.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은 딸 스스로 치유의 작업을 통해 이제는 마주보는 것에 막이 겹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엄마는 딸을 바라보는 시선에 겹겹이 막이 둘려있다. 그 막을 둘러 쌓는 것은 엄마 자신이고 또 엄마의 사는 모양일거고 행복하다 느끼지 못하고 욕심만큼 살아내지 못한 회한의 막들일 것이다.


딸이 사는 집 모양새를 보아하니 영 성에 차지 않는다. 다섯 식구 좁은 집도 그렇지만 여기저기 어룩해진 바닥이 그렇게 마음에 걸린다. 차라리 보지 않으면 속이라도 편할텐데, 손주 봐주러 일주일에 세번씩 마주해야 하니 그 얼룩이 자꾸만 딸과 겹친다. 영 그 꼴이 보기 싫은 모양이다. 괜히 볼멘소리처럼 엄마는 한마디 해보지만 딸은 그저 그럴듯한 엄마를 위한 변명만 늘어놓을 뿐이다. 딸은 안다. 엄마의 마음을 그리고 그 얼룩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그저 엄마를 위한 변명을 몇마디 전할 뿐이다.


이상하다. 하필 딸이 넓고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엄마가 찾아오는 꿈을 꾼다. 딸은 새집에 적응이 안된 모양으로 인터폰이 울리고 엄마가 문을 열라고 하는데 문을 여는 버튼이 무언지 모른다. 그리고 뒤이어진 장면은 아파트내에 있는 숲같은 정원에서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강아지가 산책을 하고 있다. 강아지 줄을 가져가지 않아 '아 줄 가져와야지' 하며 꿈이 깬 딸은 전혀 꿈 속같지 않게 멀쩡히 두눈을 뜨고 멍해진다. 뭐지? 이건 무슨 꿈이야?


욕심답게 살아내지 못했던 엄마는 엄마의 욕심과는 전혀 다른 욕심을 부리며 사는 딸이 영 미덥다. 남들보다 못사는 거 같고 남들보다 항상 부족하다 느끼는 자신의 꼴이 자꾸만 딸과 오버랩이 되면서 딸을 보면 그저 한심스럽고 걱정스러울 뿐이다. 딸은 그저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껏 살아내지 못한 회한으로 노년을 먹구름인채로 담고만 있는 엄마가 안타까울 뿐이다.


딸은 그저 소박하고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 여기는 엄마의 남편인 아빠의 성정을 그대로 닮았다. 엄마와는 사뭇 다른 딸은 어쩌면 엄마의 남편처럼 천하태평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세상이 흔히 말하는 그 욕심이란 건 무언가를 채우고자 하는 욕망이고 없는 것을 채우려는 결핍일 텐데, 하필 엄마의 남편은 오직 자기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범접할 수 없는 자존심으로 세상 부러울 것이 별로 없다. 그레서 욕심도 내지 않는다. 그저 있는 것에 족하며 살 줄 아는 태생일 뿐인 것이다. 그런 엄마의 남편을 딸이 꼭 닮은 것이고 말이다. 그 뿐인거다. 세상 부족한거 투성인 엄마 눈에 보기에 못살아 내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이지 엄마의 남편이나 그 남편을 꼭 닮은 딸은 그저 지금의 삶이 평화롭기만 하다. 언제나 평화롭길 바라고 말이다.


그런 딸에게 욕심이 생겼다. 딸의 욕심이 아닌 욕심껏 살아내지 못한 엄마의 욕심을 채워줄 그 무엇을 말이다. 내 욕심대로 사는 건 엄마를 계속 속상하게 할 뿐이고 엄마의 회한은 거두어 지지 않을테니 그 회한의 먹구름 한자락 딸이 거둬내고 싶은 욕심 말이다. 꼭 한번은 엄마가 딸에게 '잘 살아줘서 고맙다, 엄마는 이제 걱정없다.'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