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감각만으로 살아가는 사람(결혼하지말아야하는유형)

by 진주

남편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추가되었다. 오로지 자기 감각에만 충실하게 살아가는 오로지 자기만 아는 사람이라는 것.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만 생각했지 그것이 자기 감각에만 충실하다는 것은 책에서 어제 본 구절 덕분이다


대체는 생각하는 것이고 소체는 감각적인 것
소체,즉 감각에 휩쓸리면 소인이 되고
대체,즉 생각과 반성에 이끌려 살면 대인이 된다는 것
-마침내, 고유한 나를 만나다/김석-


남편의 모든 행동과 말은 처음과 끝이 오로지 자기 감각에 의해서만 이뤄진다. 특히나 조금만 아프기라도 하면 온 우주가 자기의 아픔에 집중하는 듯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의 아픔이 나에게 걱정이나 염려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저 자기만의 감각에 빠져 있는 그 꼴을 봐야 하는 것에 신물이 올라오는 나 스스로를 다독여야 할 뿐이다.


남편의 아픔은 대단한 그 무엇인양 소란을 떨지만 결국에는 자기 감각에 대한 요란일 뿐이다.


어제 새벽 남편이 배가 아프다며 죽는 소리를 하며 방문을 연다. 아이들과 자고 있던 나는 눈사리이 찌푸려지며 사태에 대한 판단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졌고 119를 불러 달라는 그의 요구에 응답을 해야한다는 것을 내 감각이 일깨워준다. 119를 부르고 아이셋이 자고 있었기에 우선은 남편만 태워서 보낸다. 그리고 고민이 깊어진다. 그의 병세(?)가 아닌 가봐야 하는지 안가도 되는지를 말이다. 성격대로라면 가고 싶지 않지만 이럴때 부부는 어떠해야 하는지 대답이 듣고 싶어 새벽녁에 지역카페에 질문을 남겨본다. 다행히 세분이 댓글을 남겨주셨고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대답을 듣는다. (응급실에 갔을때 남편은 아이들한테 가라는 소리는 했다. 다행이다.)


다행히 한번 잠들면 깨지 않는 아이들이기에 카카오택시를 잡는다. 요즘 택시잡기가 쉽지 않다더니 명절 연휴에 새벽 2시가 되어가니 택시는 보기가 힘들다. 기다리다 결국 40분을 걸어서 관내 대학병원으로 뛰듯이 걸어간다.


걸어가면서 나는 내 감정을 삭힐 필요가 있었다. 이해되지 않은 상황과 한편으로 진짜 큰병이면 어쩔까 싶은 생각까지 말이다. 사실 이 생각은 그리 깊지 않다.진짜 아픈 사람은 엄살을 부리지 않는다. 그저 자기 감각에 요란하게 응하는 그에 대한 지리멸렬함에 대한 나의 치를 달래고 설득시켜야만 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보니 남편은 진정이 되어 있었고 여러가지 검사를 한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1시간이 지나서 담당의가 오더니 남편에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다시 묻는다. 그저 자기 감각에 충실하기만 할뿐 근원을 찾지 않는 그는 그저 이런저런 소리만 할뿐이다. 담당의 말로는 검사에서 별다른게 없다며 위염이나 장염으로 염증 수치가 조금 올라와 있을 뿐이라 한다. 2주전에 위염으로 약을 먹었던 참이다. 그리고 명절 연휴 직전에 감기가 와서 감기약까지 먹으며 속이 부대끼고 컨디션이 떨어지면서 속이 더 불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속이 불편해도 먹는 것에 전혀 개이치 않고 본인의 감각대로 먹고 싶은걸 먹는 사람이다. 심지어 어제 새벽에 응급실 다녀오고 죽만 먹으라고 일부러 죽까지 끓여줬건만 사과를 먹은 흔적까지 있다. 답이 없다. 답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의 아픔에 난 전혀 자비를 베풀 여지를 느끼지 못한다.


스스로에게 긍휼하지 마지 않은 자에게 다른이의 긍휼은 사치다. 긍휼이라는 것은 내가 타인에게 베푼 긍휼이 나에게로 돌아오는 자비와 같은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오로지 자신에 대한 긍휼과 자비만이 자기에게 허락될 뿐이다.


응급실에서 냉정하리만치한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도 해보았다. 기질다운 감정이었을까 싶지만 그냥 그저 그에게만 작동하는 냉정함일 뿐이었다.


남편에게 냉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감각에 동요되지 않음이고 그 동요에 동의할 수 없다는 내 무의식의 의지이자 작동이다. 그럴만 하고 그것에 대해 전혀 죄스러운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나 스스로 위로해 본다.


차라리 이렇게 남편에 대한 냉철한 분석은 남편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게 하고 남편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결코 결혼을 했어는 안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내가 그런 유형의 사람과 결혼을 선택한 것에 대해 씁쓸함을 삼킬 뿐이다.


자기와 관련한 모든 어떠한 것에는 감각이 날 선 자이지만 역시나 자기와 관련 있지만 자기 감각밖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하지도 알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유형이다. 심지어 자기 자식에게도 말이다. 자식에게 행하는 것도 순전히 자기 감각안에서 자기 감각에 충실한 행위만 할 뿐이다.


이런 사람은 혼자서 살아야 한다. 오로지 혼자만 자기 감각에 도취되어 혼자만 위하며 살면 되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을 내가 구제한 것이 아닌 불구덩이에 나 스스로를 던진 것이다.


남편과 살수록 남편과 살 이유보다는 같이 살지 않아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해 지는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난 휴혼을 꿈꾸고 졸혼의 때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