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만렙언니가 들려주는 육아이야기 1화
텅빈 콘칩 봉투에 담긴 모성
삼일전 남편이 초4 둘째 딸 간식으로 사왔다며 큰 콘칩 한봉지를 전리품마냥 의기양양 들고 왔어. 순간 뜨아했지만 딸을 위한다는 아빠의 마음을 무자비하게 밟을순 없으니 다같이 나눠먹으라고 한쪽을 치워뒀지. 알다시피 둘째가 과체중이잖아. 그래서 남편이 간식으로 과자를 사다나르는게 영 못미더워. 그래도 초딩 아이들에게 과자는 생명수나 다름없으니 아예 못먹게 하지는 않지만 둘째같은 경우는 절제를 못하고 한봉지를 다 먹어치워버리니 요즘 걱정스러워.
그러나 오늘 사달이 났지. 어제 다같이 조금 나눠먹고 오늘 저녁에 집정리하며 보니 글쎄 콘칩이 텅 비어있는거야. 범인은 당연히 둘째이니 둘째한테 물어보니 오늘 다 먹은게 아니라는 핑계뿐, 이미 콘칩은 둘째 뱃속으로 다 들어가 있는걸. 그런줄도 모르고 오늘 둘째를 위한 불금을 보내게 해준다고 치킨까지 시켜먹었다는 사실. 오 마이 갓! 순간 콘칩을 다 먹은 아이보다 사다놓은 남편에게 온갖 화살이 돌아갔지.
도대체 아이들 미래를 생각하기는 하는지, 아이들 걱정은 하나도 되지 않은지 최대한 감정 빼고 전화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제발 과자 사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니 그럼 자기것만 몰래 먹게 사오겠대. 역시 그인간 다운 대답아니니?
갑자기 콘칩 하나로 아이의 미래 운운하며 멀리까지 걱정과 불안이 앞서는 엄마로서의 모습이 보였어. 내 모습이 말이야. 엄마들 대부분이 엄마가 느끼는 감정에 따라 아이의 미래를 저울질 한다는 걸 알지만 살문제는 나도 겪어본 일이라 걱정만 한다고 되는게 아니라는게 느껴져서 아이들을 불러모아서 이야기를 나눴어.
요즘 엄마로서 나의 고민이 첫째는 핸드폰이고 둘째는 살, 그리고 막내는 7살인데 한글을 모른다는 것. 사실 막내일은 크게 걱정되지는 않아. 셋째라 그런지 한글은 언제 알아도 알게 된다는 걸 큰아이들 경험을 통해서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건 아니깐. 다만 셋째가 요즘 유치원에서 받아쓰기를 하는데 맨날 자기만 선생님한테 칭찬을 못받는게 속상한가봐. 칭찬받으려면 한글을 알아야하니 한글 공부 좀 더 시켜야지 싶은데 오늘 기껏 쓴 말이 '엄마,고마워. 엄마, 사랑해'네. 귀여운 것! 이러니 한글을 몰라도 그저 이쁘기만 하지.
암튼 각자 문제에 대해서 제시하고 그 문제로 인해서 불거질 결과를 나누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아이들과 나누니 첫째는 알아서 핸드폰 시간 줄이겠다며 내 핸드폰 가져가서 조정하더라구. 사실 초6인데 매일 1시간반이면 많은건 아닌거 같은데 왜 내눈엔 핸드폰 하는거만 보이는지 말이야.
특히나 일을 하면서 아이들이 생활규칙이 망가지는 거 같아서 걸리기도 해. 전일제로 일하는 워킹맘은 오죽할까 싶은데 난 몇시간만 나가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온전히 24시간 아이들 케어하다 못하니 아이들이 넘 흐트러지는게 눈에 보이는 건 어쩔수가 없어. 그렇다고 모든 걸 학원으로 외주(?)를 주자니 금전적인 것도 무시 못하고 말이지.
이래저래 아이문제는 엄마로 인해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면 한도끝도 없이 나락으로 빠지는 거 같아. 나도 괜히 일하면서 엄마 빈자리가 티가나나 싶은게 괜시리 내 처지 비관하면서 환경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더라고.
오늘도 콘칩 봉투를 보자마자 아이에게 쏟아낸 말이 이렇게 먹고 살찌면 살찌는 건 둘째치고 건강을 해친다, 그래놓고 나중에 엄마탓 할거 아니냐고, 너가 먹었으니 엄마 탓 하지 말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고.
나는 항상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 그런거 같아. 내 말을 듣지 않거나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꼴을 보면 나중에 누굴 탓하려고 하는 생각이 툭 튀어나오면서 굉장히 불편해져. 아마 내 책임감에 대한 방어기제겠지? 난 최선을 다했으나 너희들이 듣지 않은거니 내 탓은 하지 말라! 이렇게 말이야.
이 부분은 고민을 좀 해봐야겠어. 내 책임감에 대한 방어기제인지 아니면 내가 우리 부모님에 대한 자녀에 대한 책임이 부족하거나 모자라서 부족하다 여기는 부분인지 말이야.
사실 이런 마음이 더 불거지는게 남편의 요즘 태도때문에 그러기도 해. 주말이면 쇼파와 한몸이 되어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아이들과 주말내 게임만 하거든. 우리 아이들도 어느새 주말엔 게임하는 날이 되어 버리고 특히 주말에 내가 일이 생겨서 외출을 하면 진짜 먹고 마시고 게임하고 그들만의 잔치가 되는거지. 집에 돌아와보면 여기저기 널린 잔치의 잔해만이 날 기다리고 말이지.
오늘 남편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했아. 지금 당장의 편함과 즐거움만을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의 미래를 좀 생각하라고 말이지. 지금 당장의 편함이 나중의 편함을 보장해주는게 결코 아니잖아. 현재를 즐길 수 있는건 그만큼 현재에 대한 최선을 다했을 때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거고.
사실 요즘 일부러 아이들에게 그런점을 상기시켜 주려 불금을 즐기게 해주기도 했어. 평일내내 학교, 학원 다니며 애쓰고 숙제하느라 고생했으니 불금의 맛을 느끼라고 원하는 것도 배달시켜주고 말이지. 불금의 맛이 짜릿한건 그만큼 월화수목금 애쓰며 살아왔다는거니깐.
어쩌면 모든 아빠들이 그럴지도 모르지. 당장 아이들이 좋아하고 즐거운 거만 보이고 보고싶고 반면 엄마는 현재만이 아닌 그 현재를 통해 미래까지도 그려지니 불안이 엄습하는 건 모성의 한 부분이라고 해야할까? 텅빈 콘칩을 보자마자 빈 봉지만큼 허무하고 허전함에 무너질듯 했는데 그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 애들을 불러모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마무리를 지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 다만 현실적인 적용은 엄마의 몫으로 여전히 남지만 말이야.
괜히 내가 스스로 떠안은 불안에 대한 죄책감을 슬쩍 아빠인 남편탓으로 양도하고 싶은 마음에 바로 전화해서 잔소리는 늘어놓았지만 애는 엄마만의 몫은 아니니 남편에게도 넌지시 불안의 몫을 건낸건 잘한거 같아. 뭐 그렇다고 우리 남편이 갑자기 아이들 미래를 걱정하게 되서 정신을 차리는 일은 없을테지만.
모성이라는 것이 어쩌면
엄마를 스스로 옭아매게 하는 치명타이기도 한거 같아.
모든걸 내탓이오 하기 쉬운게 모성이니 말이야.
그런면에서 내가 더 모성에 대한 책임에 혹여나 스크레치가 날까 싶어 아이들의 잘못된 부분에 더 탓 운운하며 날이 서는지도 모르지.
생각해보니 모성을 탓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엄마 혼자 떠안지 않는거 같아. 남편에게 나누고 또 아이들에게 전달하면서 그 모성을 채워나가는 거지. 모성이라는 거 자체가 엄마가 주체가 되기는 하지만 객체가 있어야지 완성되는 개념일테니 말이야. 이렇게 쓰고 보니 한결 편해진다. 너도 너무 혼자서만 애 태우지 말고 모성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남편과 아이에게 슬쩍 떠넘겨버려,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