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도발

by 진주

시어머니가 하반신 마비로 2년째 시누네에서 투병중이시다. 작년 이맘때쯤 시누이의 남편이 많지도 않은 재산을 들먹이며 고생은 누나가 다하고 재산은 니(남편)가 가져가는 거 아니냐며 이 집안에서 제일 만만한 남편에게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딱 1년 뒤 시어머니를 뵈러 시누네로 가는 남편을 고모부가 미리 불러내어 또 한번의 엄포를 놓았다. 더 이상 못 모시니 니가 모셔가라며 말이다.


시누이와 남편은 둘도 없는 사이이며 소문난 효자효녀다. 어머니의 투병으로 인해 그들의 효심은 널리 전파되었다. 반면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며느리인 나와 고모부는 그 효심의 직격탄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다. 그 직격탄에 대한 엄포는 고무부가 놓고 말이다. 난 그저 효도는 셀프라 여기니 남편이 시댁에 하는 모든 것을 그저 그려려니 할뿐이다.


그려려니 하지만 그게 그려려니일까? 그저 가족일이니 참고 이해하려고 하는거지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나에게도 직겨탄이 날라왔다. 고모부를 만난 후 감정을 절제 못한 남편이 전혀 상황을 알지 못하는 나에게 어머니를 모셔야겠으니 이혼하잔다. 그 한마디를 남긴 후 그는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난 수육을 삶고 있었다. 귀하디 귀한 내 새끼들 먹이려고 수육을 삶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어지러웠지만 상황 파악부터 해본다. 바로 시누에게 전화를 건다. 시누는 남편이 아직 오지도 않았다며 차가 막힌다고만 했다고 한다. 그렇다. 시누이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성격상 당장 모든 것이 눈에 보여야 하고 통제를 해야만 평정심을 찾지만 남편과 살면서 단련된 부분이라면 남편으로 인해 평정심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는가 싶더니 밤 12시가 넘어 남편은 집으로 왔고 마주할 자신이 없어 자는 척을 했다. 남편은 분명 들어왔는데 안방으로 들어가지도 않은채 거실불이 꺼진다. 그냥 내버려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남편은 쇼파에 망부석처럼 앉아있다. 남편에게도 고모부의 엄포가 직격탄이었나보다. 아이들을 우선 보낸 뒤 남편과 이야기를 한다.


시누네로 내려가는 길에 고모부가 만나자고 했고 그 뒤로 얇디얇은 멘탈의 소유자인 남편은 완전 넉이 나간 것이다. 이성적인 고모부가 전혀 이성적이지 못한 감정형의 남편에게 별말 안했어도 별말로 받아드릴 남편이다. 유약한 멘탈의 소유자인걸 알기에 아이셋 두고 어머니 모시게 이혼하자는 남편의 도발에 가까운 말은 그저 자신의 유약함을 감당못하고 내뱉은 쓰레기같은 말에 불과하다.


그렇게 난 남편의 감정쓰레기통이다. 남편의 유약한 멘탈과 정신으로 인한 한마디가 나에게 쏟아질때마다 그말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악다구니를 그동안 많이도 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였다. 그저 그 사람이 날린 감정쓰레기를 갖다 버리면 그만이었다. 생각하고 말한 것이 아닌 그저 자기 감정대로 지껄인 말에 나는 너무도 진실했던 것이다.


그렇게 남편으로 인해 남편에 대한 감정은 점점 메마른 사막이 되어간다. 그 말같지도 않은 말에 대꾸할 필요성도 없이 그저 내 마음이 그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정점을 찍은 것 뿐이다. 그 사람의 한마디는 더 이상 나에게 슬픔의 길이 되지 못한다. 이제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시어머니는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걸로 해결이 났다. 드디어 모든이가 제자리를 찾는 것일까?


나는 이번일로 시댁과는 거리두기에 성공했다. 이미 어머니 투병으로 인해 마음의 거리가 멀어졌지만 이젠 물리적인 거리도 두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시댁 식구의 탓이 아니다. 원가족에게서 독립되어지지 못한 찌질이 같은 남편 탓이다.


오히려 더 이상 기대할 기대치가 없구나 싶으니 남편을 바라보는 것이 진짜 무감각해진다. 토라진 마누라 눈치보느라 주말내 알아서 집안일 하는 꼴에 더 이상 내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병주고 약주는 양 하는 그 사람의 행태가 이제야 눈에 그려진거다.


어제밤 기도를 하는데 남편기도를 하면서 말문이 막혔다. 기도할 건덕지도 이젠 안되나보다. 아니 이젠 진짜 답이 안나오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어야 한다는 신의 계시가 내 마음에 차가운 빗줄기로 내리 꽂힌다.


내가 아는 세상에서 딱 두명의 유약한 인간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남편이다. 그의 유약함은 나의 강함을 더 단련시키는 매개체가 되었고 손쓸 수 없는 그 유약함에 정신이 혼미할땐 그저 신을 붙들고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신이 원하는 건 이걸까?


신의 계시는 어찌되었던 두고보면 알 것이고 난 더 이상 남편의 감정쓰레기통이 아니다. 본인 기분에 따라 내뱉은 한마디에 맞받아쳐준 나는 이제야 쓰레기처리에 달인이 되었을 뿐이다. 그동안 그 쓰레기를 떠안고 악취를 풍기던 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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