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방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다보니 읽고 쓰는 일이 여의치 않네요. 유일하게 오롯이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아이들 아침잠 깨기 전과 아이들 잠든 후이기에 짬을 내어서 이렇게 제 할일을 이어가 봅니다. 육아를 하면서 육아에 매진하게 되는 시간은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양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노선이 다르니 몸과 마음이 더 분주하고 무언가 재촉하는 양 조급해지기 일쑤입니다. 그런 때가 방학이고 말입니다. 특히나 겨울방학은 1월초에 시작해서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2일에나 종료되니 엄마들의 노고는 이루말할 수 없답니다. 지금도 저는 노트북을 하면서 입으로는 빨리 자라고 재촉하고 있답니다.
여행이 어떤 의미이신가요? 저에게 여행은 일상의 일탈입니다. 분 단위로 시간을 아껴가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여행은 시간이 무의미의 경계로 던져지는 경험이기에 여행은 곧 멈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물론 부작용은 멈춤의 시간이 여행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짹깍짹깍 귓전을 울려대긴 하지만 말입니다. 잠깐 멈취진 제 일상의 시간은 마치 건전지를 갈아 끼운양 제 시간대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여행은 멈춰진 저에게 에너지를 채워주는 보약과도 같습니다. 물론 제일 좋은 건 집안일을 안해도 된다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작년부터 북클럽 덕에 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일상의 축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경험이었고 그 일상의 축뿐 아닌 인간의 희노애락을 고스란히 담아낸 문장 덕에 감정에 대한 배움도 많이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는 삶에 대한 유연함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혼자만의 삶은 스스로 유연함을 길러낼 수 없습니다. 유연함이라는 것은 유연하지 못한 최초의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유연하지 못한 것에서 출발하여 비로소 유연함에 다닿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삶이자 곧 문학에 서술된 희노애락이고 말입니다. 문학은 삶에 대한 유연함 뿐 아닌 인간에 대한 수용도 넓혀줍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소설 속 인물도 읽고나면 이해의 한 축이 생기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깝고 슬픈 인물은 <아몬드>의 철사였습니다. 아몬드의 많은 주인공 중에 저에게 가장 강한 이끌림은 철사였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구원받지 못한 채 구원되는 것도 포기한 채 구원이라는 소망을 스스로 거둬드린 철사가 아몬드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장 애처로운 인물이었답니다.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채 마지막까지 날카로운 철사처럼 자신을 찌르듯 타인을 찌르는 잔인한 인물이었지만 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금요일 같은 피로감에 괜시리 한숨이 스며 들기도 하지만 이내 진짜 금요일이 돌아왔을 때 오히려 가뿐한 금요일의 기운을 느낄 듯 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이곳에 덜어내었기 때문이겠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