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누군지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그 사람 내부에 있다고 합니다
라는 문장은 쉬운듯 가장 어려운 명제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알기 위해 자신의 안을 탐색하기 보다는 주어진 환경이나 보이는 그 누군가을 빚대어 자신을 설명하거나 갖추거나 채우려고 하니 말입니다. 대나무가 아무리 하늘 높이 솟아도 그 안은 아무 것도 채워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까요? 겉의 치장은 공허함의 넓이만 채울 뿐입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교육이라 불리는 배움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한 듯 합니다.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에 어릴때부터 치중하다보니 자연스러운 현장이겠지요? 교육은 학교를 다닐때만 하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대학입시를 위해 필요의 의한 교육만 자행하다보니 자기 자신을 위한 배움의 인식이 굉장히 부족한 것이 우리나라에서 초중고대를 나온 사람들 대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행히 코로나 이후로 자기계발이라는 명목하에 배움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 교보문고 판매부수 앞자리를 기록한 것이 자기계발서라고 하니 코로나라는 난제가 개인의 영략을 키울 시발점이 되기도 한듯 합니다.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밖으로 향하는 에너지가 갈 곳을 잃으니 자연히 안으로 에너지를 모으게 되면서 책과 더 깊이 대화하고 그 대화의 연장으로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세상에 볼거 많고 우리의 눈과 입,귀를 즐겁게 하는 것들이 넘치다 보니 자연히 우리의 마음은 내적보다 외적인 것에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정작 잠깐의 즐거움은 쉬워도 깊고 넓은 사유의 즐거움은 망각하게 되고 말입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럴때 일수록 책이 절대적인 해답이 되기도 하고 말입니다.
책이 해답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책 속에 자신만의 진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의 진리를 가진 사람은 결코 현혹되거나 흔들리지 않는 심지를 가지게 됩니다.
책이라는 매개체로 자신의 삶을 사유하지 않고는 타인에 대한 질문과 타인에 대한 답만을 가지게 됩니다. 그 질문과 답을 자신에게 향하도록 책을 통해 자신에게로 방향을 돌려야 하는데 사유할 요소가 오로지 보는 것과 듣는 것에 집중되니 그 방향이 타인에게로만 향하면서 판단 사고만 키워낼 뿐입니다. 그 판단 사고는 오류를 불러일으킬 뿐이고 말입니다.
판단의 오류를 줄이는 것은 자신에 대한 질문과 답을 많이 얻어내는 것입니다. 얻기 위해서 읽고 사유하고 쓰는 행위를 통해 오류를 줄여가고 말입니다.
책과의 만남은 곧 자신과의 대면이자 자신의 거울을 바라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관계 속에서는 자신보다는 타인을 대면하게 되고 자신을 거울삼아 타인을 바라보기 때문에 스스로를 살피기 보다는 타인을 살피고 타인을 판단하고 타인을 저울질 하는 꼴 밖에 되지 않습니다.
내 꼴이 내 꼴 다울 수 있기 위해서는 책에서 내 꼴에 대한 특징을 알아내야 합니다. 내 꼴이 갖춰진다면 굳이 남의 꼴을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꼴이더 이상 내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테니 말입니다.
오늘 어떠한 생각을 하며 그 생각속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십니까? 그 생각 속에 자신이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빠진 그 무엇입니까? 생각하는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읽었으면 써야 한다
는 한마디가 제가 매일 읽고 쓰는 것에 대한 확신을 내려주는 듯 해서 응원이 되었습니다. 매일 읽고 쓰는 과정을 통해서 저는 저만의 문장 빅테이터을 쌓아 올릴 것이고 저만의 문장력을 통해 진주 스타일의 문장을 완성할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