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매일 읽고 쓰기>는 책들의 부엌이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알게 된 배경은 미라클모닝을 하며 연을 맺게 된 지인께서 이 소설을 보며 제 생각이 많이 났다고 하시며 추천을 해주시더라구요. 제목부터 책이 들어가고 제가 요리를 좋아하니 부엌과도 연관이 되어 자연스레 떠올랐을까요? 저를 닮은 책이라 하시니 안 읽어볼 수 없어서 예약을 걸고 퇴근길에 부리나케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기분 좋은 설렘 한가득으로 책을 받아들었습니다.
사실 요즘 고민이 많았습니다. 답이 없는 고민인데 답을 찾거나 혹은 답은 정해져 있는데 그 답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였을까요? 저 혼자만의 해결로는 답이 안나는 일이어서 골머리를 앓았는데 드디어 결론은 났습니다. 다만 이상하게 제가 원하는 대로 결론이 났고 그 결론을 내기 위해 투쟁아닌 투쟁을 한 것인데 뒷끝이 영 씁쓸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책들의 부엌
때가 되면 될 일인데 너무 마음이 앞섰을까요? 마치 문장속 매화처럼 말입니다. 내 때이구나 싶어 화들짝 피어내니 꽃샘추위가 들이닥쳐 피어나는 아름다운 자태의 꽃이 아닌 '거 봐라 설레발을 치더니 꼴 좋다' 하는 처량함을 내보이니 말입니다.
매화로서는 봄의 기척을 느껴서 피어냈을 뿐인데 말이지요. 갑자기 매화꽃이 아련하게 느껴지며 매화를 더 사랑해야지 하는 마음마저도 들었습니다. 벚꽃은 우리가 목이 빠지게 기다리지만 매화는 기대라는 것 없이 피어나면 어? 이제 봄인가? 무슨꽃인지? 하며 존재마저도 희미하니 말입니다. 어쩌면 벚꽃을 빛내 줄 조연이 매화라고나 할까요? 매화는 봄의 예고편이고 벚꽃은 봄의 절정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나니 기개있는 꽃이 맞으며 어쩌면 가장 스스로 빛나는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봄에는 매화꽃을 찾아보렵니다.
책들의 부엌
<책들의 부엌>에서는 다양한 인물이 나옵니다. 저마다 사연이 있고 저마다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열심히 잘 살아내는 인물들이지요. 하지만 그 인물들은 저마다 2프로 부족한 그 무엇때문에 자신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고 이렇게 살아야지만 된다는 누가 정의 내린 것인지도 모를 국률을 따라 그저 열심히 살아냈고 그에 걸맞은 결과도 이루어내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고 행복보다는 그 국률에 따를수록 쓸쓸해지는 건 도대체 무엇때문일까요?
그럴때 가장 절실한 것이 자신의 것을 떠나보내고 진정 자신의 것이라 여겨지는 것에 대한 항해이지 싶습니다. 그 항해를 떠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두려움을 벗어버린 용기이고 말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살아갈수록 그 항해에 대한 두려움조차 생기지 않는구나 여겨지니 굉장히 슬펐습니다. 항해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안전하게 정박을 하고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한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눈물이 났습니다. 꿈을 가지고 있지만 그 꿈의 항해를 위한 꿈이 아닌 그저 정박한 그 곳에서 나도 언젠가 항해할 수 있다는 꿈, 항해를 꿈꾸지만 정박이 안전한 꿈 말입니다.
예전에 이러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하고 싶은 일은 일이 있으며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사람이 말입니다. 물론 리스크가 적은 일은 여전히 불도저처럼 밀고 나갑니다. 하지만 저와 관련해서 저만의 것을 위해서는 더 이상 그럴 힘이 생기지 않더라구요.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닌 생겨도 스스로 잠재우는 것이겠지만요. 그래서 씁쓸하고 슬펐습니다.
책들의 부엌
어쩌면 인생 일정표대로 선택하는 것이 날 위한 선택이라기 보다는 모두를 위한 선택이겠지요. 가족이 있는 저는 말입니다. 엄마이자 아내이자 누군가의 자녀인 저는 말입니다. 인생 일정표에 있었어도 계속 수정 또 수정하며 모두의 일정표로 말들 수밖에 없었을테고 말입니다.
책들의 부엌
그렇기에 더 무언가 갈구하거나 무언가 저 뒷편에 있을지도 모를 희망을 가지고 현실의 구질함을 견디어 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흔 중반을 앞 둔 지금 그 무언가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이 제 마음에 스미고 있습니다. 내가 갈구하는 것도 그 무엇이 있을거라 여기는 것이 내가 만들어낸 환타지일 뿐이라는 것이 비로소 보인다고 할까요? 그래서 씁쓸하고 슬픈 요즘입니다.
어쩌면 진짜 인생을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일까요? 인생에 무엇가 내가 모르는 신비가 있을거라는 희망은 그저 인생을 살아갈 여지를 주기 위한 마법의 가루일뿐 그 마법의 가루는 정작 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일까요?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면서 얻게 되는 일상이 모여 내 미래가 되는 것일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걸까요? 마법의 가루는 내가 살아낸 최선의 매일일 뿐임을...
책들의 부엌
꿈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닌 그저 나를 근사하게 만들어줄 그 무언가를 쫓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무언가를 쫓아 그토록 애를 쓰며 살았을까요? 나를 근사하게 만들어줄 그 무엇이 미치도록 가지고 싶었던걸까요?
책들의 부엌
삶에서 완벽을 꿈꾸는 건 그 완벽에 대한 자기 의지이자 자기 기만일 뿐입니다. 삶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저 완전해지고자 스스로를 혹독하게 몰아세울 뿐이죠. 제가 그렇습니다. 완벽한 삶 혹은 완전한 삶을 매일 꿈꾸며 기도합니다. 오늘도 만족할 만한 삶이 되게 하소서 하고 말입니다. 그 기도 자체가 허구일 뿐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완전함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제 의지이자 자기 존재감에 대한 오만이었습니다.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삶에 대해서 말입니다. 수요일 북클럽에서 긴긴밤이라는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분이 그러더군요. '다들 의미를 찾으시네요? 꼭 의미를 찾아야 하고 의미가 있어야 하나요?' 저에게 굉징히 낯설고 굉장히 불편하게 다가온 한마디이지만 제 마음을 관통했습니다. 왜 자꾸만 의미를 찾으려 할까요? 왜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까? 과연 그 의미는 삶에 독일까 약일까? 하고 말입니다. 이것 역시 의미를 찾아내려는 저의 수작이네요. 저는 이런 사람인걸까요? 이렇게 살게되어진 걸까요?
우연히 비긴어게인을 보고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가사 한마디한마디가 제 마음을 파고 들었습니다. 제가 고민하는 바를 딱 잘 표현해준 이 가사를 끝으로 오늘 매일 읽고 쓰기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