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과 복닥이는 주말을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면 세상 제일 가벼운 마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린다. 물론 아이셋 등교전 전쟁은 필수이고 말이다. 전쟁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만의 평화상태로 돌입하니 잠깐의 전쟁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3호 등교 시키고 집으로 가는 길보통은 일주일간 계획을 세우는 편인데 이번주는 그 다음주에 있을 대장정을 위해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이것이 불청객을 예고한 것일까?
3호 등교시키고 집으로 걸어가며 평소대로 나만의 루틴을 따를 것인지 일탈을 할 것인지 정처없이 떠도는 마음을 부여잡고 제정신을 차려보고 싶은데 오늘따라 마음이 잡히질 않는다. 역시나 이 마음이 불청객을 불러드렸나보다.
불현듯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아 지역카페에 책 몇권 소개하는 글을 올리며 아침 먹을 준비를 하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이 시간에 초인종이 울리는 건 뻔하기에 모른척 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가 이어진다. 뭐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나? 싶은데... 친정엄마다.
막내 픽업을 가끔 도와주시기에 엄마는 우리집 번호키를 알고 계신다. 하지만 연락도 없이 이리 당당하게 번호키를 누르고 오실 줄이야. 그것도 내가 있는데 말이다. 차라리 내가 집에 없었으면 이런 당혹감은 면했을텐데...
안그래도 마음이 잡히질 않는데 친정엄마의 갑작스런 방문에 심히 불쾌해진다. 워낙 내 틀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라 사람이든 환경이든 그 어떤 것이든 불청객처럼 당도하는 것을 극히 꺼리는 편이고 굉장히 불편하게 여긴다.
순간 머릿속에서 약속있다고 나가야 한다고 할까? 뻔한 수가 떠오르지만 엄마는 이미 내가 그럴거라는 걸 알고 계신듯 하다. 나는 친정엄마의 전화를 가려 받기도 하고 불편한 부탁은 거의 내색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엄마는 내가 전화를 받지 않을걸 알고 그냥 들이닥치신거다.
온갖 떠오르는 불편함을 가만 마주하고 차려놓은 아침을 먹는다. 엄마는 사골국을 끓이셨다며 주방에서 사골국을 덜어내고 언제나처럼 설거지부터 하신다. 평상시 엄마가 오는 날이면 설거지를 미리 다 해둔다. 엄마가 할걸 알기 때문이다. 엄마 설거지 하러 왔어? 라는 말이 멤돌지만 그냥 삼킨다.
커피 한잔 타 드리고 엄마와 앉아 서로 시선은 피한채 일상 이야기를 건낸다. 항상 비슷하고 항상 똑같이 별 시답잖은 소리이거나 뻔한 아빠이야기다.
그러다 엄마 머리스타일 이야기가 나와서 이왕 불청객인데 잘 맞아보자 싶어 엄마 머리 드라이를 해준다. 눈에 거슬린다고 잔소리 할 바에 그냥 마음에 안들고 성에 안차는 거 직접 하면 그만이다.
엄마는 꾸밀 줄 모르신다. 꾸밀 여력도 없이 사셨고 말이다. 의류업을 하는 동생덕에 옷은 많이 갖추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옷과 머리 스타일이 전혀 일치를 하질 못하니 아무리 좋은 옷도 사실 엄마에게는 티가 안난다. 짧은 머리카락이 한 몫하려나?
언젠가부터 엄마에게 짧은 머리를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차라리 파마를 하거나 중고등생이 말고 다니는 헤어롤이라도 하라고 말이다. 허나 그런게 집에 있을리도 없도 있다한들 어찌할지 모른다며 안할 분이다. 그저 나 있을 때 엄마 머리라도 매만져주며 내 아쉬운 마음 달랠뿐이다. 약속 있다고 1시간 머물다 나간 엄마 뒷모습에 머리만 보인다.
불청객덕이었나? 불편한 마음은 더 갈피를 못잡고 이도저도 안되니 짜증이 스며온다. 하필 노트북까지 말썽이라 입에서 불만덩어리가 자꾸만 튀어나온다.
아 오늘 하루 망쳤다는 기분에 사로잡히니 보이는 거 마다 맘에 안들어찬다. 가끔 아주 가끔 이럴때가 있다. 이럴땐 차라리 아무것도 안하면 될텐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내 마음은 더 요동치기 마련이고 어느새 기분은 태도가 되어 버린다. 차라리 지금 이 순간 혼자인게 다행이다.
불현듯 인생에 불청객같은 일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어쩌면 그 불청객을 맞아드리기도 전에 칼같이 잘라내는 성격답게 큰 탈없이 크게 마음 상하지 않게 나를 지켜내온 세월이다.
어제는 불현듯 내 안에 이름없는 온갖 오류에 치이며 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름없는 오류에 바친 세월이 많구나 싶으니 괜란 연민에도 빠졌다.
차라리 그 이름없는 오류와 불청객이 만났다면 뭐라고 이름지어진 삶이 아니었을까 싶으니 또 후회가 밀려온다. 그덕에 후회없는 인생이 가장 낫겠구나 싶은 마음까지도 들고 말이다.
오늘 이름없는 오류에 사무쳐 자기연민에 빠졌을 나를 구해준건 어쩌면 불청객같은 엄마의 방문이 아니었나 싶다. 불청객은 나를 더 선명하게 보이게 해주니 말이다. 그리고 이름없는 오류라기 보다는 이름지어진 오류로 나를 옭아맬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그토록 회피한건 아닌지 말이다.
오류는 오류가 아니었다. 오류라고 생각하며 회피한 내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