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과 평강공주

by 진주

내 생일을 앞두고 남편이 안하던 카톡을 보낸다.(카톡으로 서로 이야기할 사적관계로서는 어색하고 무거운 부부) 엄밀히 따지자면 문자로 보내다 어느새 남편이 카톡으로 갈아탄거지만 말이다. 생일 케이크로 무얼 먹고 싶은지 묻는다. 그러면서 떡 케이크? 아이스크림 케이크? 보자마자 당황스럽고 어의없는 실소가 입가에 새어들며 "내가 그걸 좋아한다고 생각해?" 한마디로 종결시켜 버린다. 아니 그렇고 싶었다.


그 순간 나는 피로한 상태였고 굳이 해도 되지 않을 이야기를 하는게 달갑지 않았다. 문자의 시작이 있기 전 지하철에서 남편에서 전화가 왔었고 역시나 피로감에 어떠한 말도 섞고 싶지 않았기에 지하철이라 전화가 잘 안들린다는 궁색한 이유로 대화를 차단시킨 것인데 당장 마누라 생일에 마누라가 어떤 케이크를 먹고 싶은지 어떠 케이크를 준비할지가 급한 남편은 전혀 내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다.


물론 피로함을 전달하지 않았지만 내 음색에서 내비쳤을 심드렁함을 그는 여전히 간파하지 못한다. 당장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종류의 케이크를 살 것인지만 가득 들어차 있으니 말이다. 남편은 항상 이런식이다. 그래서 그와의 대화나 통화는 쉼이 아닌 노동이자 고역에 가깝다. 자신이 해결해야 할 사명에 가득차 그 이상을 보지 못하고 그 이상을 보지 못하는 이에게 난 그저 영혼없는 응답을 전할 뿐이다.


사실 먹고 싶은 케이크도 없었고 난 내 생일에 그저 자유만을 원할 뿐이었다. 그냥 혼자있고 싶고 아무런 사적책임없이 없이 그저 나로 온전히 평안하게 거하고 싶을 뿐이다. 이건 내가 아이셋을 키우며 바래마지않은 염원같은 것이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야 이뤄질 염원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이는 가족이라는 테두리안에 있으면서도 자유하지만 주말부부로 아이셋을 온전히 건사해야 하는 나로서는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나에게 족쇄이자 엄마라는 내 존재에 대한 무기징역스런 책임일 뿐이다.


얼마전 남편과 긴 대화를 통해 부부관계의 새로운 서막이 열기는 계기가 되긴 했다.(이전 글 이해와 연민 참고) 우리 부부에게 할당된 대화의 분량 그 이상으로 대화가 이어지고 내가 아닌 남편 입에서 자신이 현재 겪는 어려움에 대한 실토를 통해 남편이 가지고 있는 가장이라는 무게감을 실감하기도 했다. 물론 그 무게감은 그만의 방식이고 그만의 방식을 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그이가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의 방식이기에 이성적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유약한 사람이고 불안도 높은 사람이기에 실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불안에 잠식되어 버리는 마흔넷 아이셋 아빠. 책임을 지지만 자신의 불안도에 따라 그 책임을 언제든 1순위로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이 준비되어진 자. 설령 그 마음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지만 얼마든지 심적으로 가족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두번 목도하며 나는 그 사람의 불안의 실체를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됐다.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그 뒤로 가정에 대해 마누라인 나에 대해 애정을 더 쏟고는 있지만 말이다. 자신의 불안이 내비쳐진것에 대한 사죄일까?


부부가 한몸이라는 태초적 사실이 얼마나 올가미 같은지 말이다. 결혼 생활 15년간 터득한 것은 부부는 절대적으로 한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떨어지지 못한 관계로 여겨지지만 그래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에 의한 부담이고 저마다 다른 부부의 개성을 깡그리 무시한채 부부에 대한 의무만을 상정한 태도의 말일 뿐이라는 것이 전혀 그 의무에 해당사항이 없는 남편과 살고보니 그렇다.


나 역시 그 프레임에 묶여 남편을 그 사람 존재 자체로 이해하고 수용하기 보다는 남편이라면 이래야지 아빠라면 이래야지 라는 사회적 통념에 그를 묶어 둔 것이다. 그토록 자유스러운 영혼을 말이다. 진심으로 내 벌이가 남편보다 앞서면 너를 자유로이 놓아주겠노라는 자비마저도 베풀 준비가 되어있다.


자유를 꿈꾸지만 책임에 대한 사명으로 살아가는 나와 자유를 꿈꾸는지도 모른채 자신의 심정을 옥죄는 불안이 엄습하면 정신못차리고 그 불안에 잠식되어 혼자만 발 빼려는 마음만 품느라 그 이상의 연민을 품지 못하는 자와의 합치는 그저 내가 품고 있는 책임이라는 무게감만을 더할 뿐이다.


이걸 깨닫게 되니 되려 우리 부부사이의 거리감으로 인해 한결 심적인 자유함이 얻어진 것은 사실이다. 서로를 옥죄고 있는 각자의 사정에 대한 토로때문일까? 아니면 그동안 마주하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가족으로써의 불일치를 인정했기 때문일까?


난 더 이상의 케이크 이야기는 가만 씹고 생일날 강화도 가자는 한마디만 마지막으로 카톡에 남겼다. 어제는 아무 대답이 없더니 오늘 아침에 전화가 와서 "강화도 가고 싶어?"라며 강화도 가자라는 말을 한다.


돌고 돌아 서로의 요구에 대한 어떠한 토도 달지 않고 감정을 실지 않은 채 각자가 품고 있는 기대가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것을 수용하는 단계에 이른 것일까? 비로소 말이다.


오늘 처음으로 더 이상 남편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르렀다. 도저히 이해될 수 없어 글로 이해를 삼아야했던 내가 남편과의 직접적 대화를 통한 이해의 경지에 도달 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비로소 그와의 감정적 거리두기 내지 감정적 독립을 이룬 것일까? 남편으로부터 진정 자유할 수 있는 건 이혼라는 제도가 아닌 심정적 독립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때마침 이루게 되었기 때문일까?


내 남편도 아니고 내 아이들 아빠도 아닌 그 한사람으로 보자면 연민이 스밀 수밖에 없는 유약한 남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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